요즘 학생들과 생활 철학 이야기 나누기를 진행하고 있다. AI 시대, 인간이 공부해야 하는 본질적 이유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고자 했다.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AI조차 이기기 힘든 시대에 우리는 왜 공부를 해야 할까요?” 사실 인간은 이미 지식의 양과 속도 면에서 AI를 압도하기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지식인이 되기는 쉽지 않다. “선생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생님은 벌써 30년 가까이 교육학만 연구했는데 아무리 공부를 한다고 해도 교육학 모든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권위자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 이제 공부를 하지 말아야 하는 걸까요?”
왜 공부를 하는 것인지 며칠간 생각하고 다시 이야기하기로 했다. 그 사이 학생들의 고민을 조금씩 자극하면서 좀 더 깊게 생각하기를 바랐다. 그런데 어린 학생들은 대개 비슷한 대답을 내놓았다. “나중에 직업을 가지려면 해야 해요.”, “속지 않으려면 필요해요.”, “잘 살아야 하니까요.”
틀린 말은 아니다. 공부는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수적이다. 읽고 쓰고 이해하며 스스로 판단할 수 있어야 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생들의 공부 목적이 ‘생존’의 영역으로만 좁아져 있다는 것이 좀 실망스러웠다. 나는 단 한 번도 이런 식의 의식을 갖지도 않았고, 학생들에게도 미래의 대비를 강조한 적이 없는데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안타까웠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서, 자신의 입신양명을 위해서 석차를 올려야 한다는 구세대의 의식이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는 것 같아서 속상했다.
예전에(지금도 그럴지도 모르지만) 조금만 참으면 배우자의 얼굴이 달라진다. 대학 가면 얼마든지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교사와 부모의 거짓말이 아직도 전설처럼 대물림 되는 것인가? 나는 철저히 공부 신봉론자이다. 타인을 이겨야 하는 석차를 신봉하지 않는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급변의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부 자체가 무의미한 것은 결코 아니다. 공부할 때 인간은 비로소 자신의 사고가 살아 있음을 느낀다. 어제와 같은 생각에 고여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 조금 더 넓게 세상을 조망하고 새로운 물결에 빠르게 적응하는 것. 나의 지성이 어제와 다른 오늘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그 감각에 공부의 본질적 의미가 있다. 그래야 이런 급변하는 시대에 스스로 살아남을 수 있다. 내가 성장하고 있다는 희열, 배움의 희열을 느껴야 꾸준히 발전한다. 내 학생들은 그래야 한다. 난 그렇게 지도하는 방법을 찾은 것 같다. 아직 단정 짓지 못하는 것은 그 사례가 양적 연구로 보기에는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적어도 나와 함께 하는 학생들에게서 질적으로는 검증이 된다. 나와 함께 오랜 시간 공부한 학생들은 “알아가는 과정의 행복감과 만족감”, “배움의 즐거움”이라고 공부의 이유를 말해주었다.
교육학박사 임은정의 2026.05. 13. 교육이야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