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쯤 한 유아의 아버지가 “산에 데리고 다니면서 노는 것은 내가 해 줄 수 있는데 뭐 하러 비싼 교육비 내고 유치원을 보내는가? 내가 일주일에 한번 산에 데리고 갈 테니 이것저것 많이 가르쳐 주고 교육비도 저렴한 00이나 보내라.”고 했다며 어머니가 슬퍼 보이는 표정으로 자퇴 원서를 쓰러 오셨다. 난 어머니께서 “솔직하게 말씀해주시고 석성숲유치원 교육을 이해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나는 그 아버지의 말씀과 어머니의 안타까움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유아기 교육에 대한 인식이 바뀔 수 있도록 돕지 못한 내 책임이라는 생각에 더 안타까웠다. 아마 교육이야기를 쓰기 시작한 것이 그즈음이었던 것 같다.
이 아버지는 산에 다니는 것이 정신적, 육체적 건강에 좋다는 것을 중요한 목적이라고 생각하셨을 것이다. 이런 시각은 놀이의 의학적 해석이라고 볼 수 있다. ‘놀이’가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각자의 전문분야에 따라서 놀이를 바라보는 시각이 각각 다르다. 프로이드의 계보를 잇는 정신의학에서는 긴장을 완화하고 감정을 다스리기 위해서 놀이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는 유아나 어른이나 모두 해당하기 때문에 많은 성인은 유아들의 놀이를 이런 차원에서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놀이를 바라보는 정신건강의학적 관점은 중요한 사실이지만 유아의 놀이를 정신적•감정적 스트레스를 다스리는 목적으로만 믿는 신념이 많은 부작용을 낳고 있다.
유아들에게 맞지 않는 지식을 강요하면서 정신적 스트레스는 놀이로 해소하면 되리라 생각하고 거래로 원하는 놀이를 허용한다. 이럴 때 대부분 발달에 적합하지 못한 놀이를 하게 된다. 10년 전부터는 스마트기기를 가지고 놀이하는 것이 부모님들은 편하고 유아들은 가장 좋아하는 놀이가 된 듯하다. 만약 발달에 부적합한 지식을 주입하려고 스마트폰을 쥐여 주는 거래를 하였다면 최악의 양육환경일 것이다. 지식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자리 잡을 것이고, 스마트폰은 늘 갈망하는 대상이 될 것이다. 얼마 전 초등생이 스마트폰 사용에 대해서 잔소리가 심하다고 어머니를 상해하여 기소되었다는 기사를 접했다. 모든 행동은 유전과 환경이 영향을 미치는 것이지만 이 행동은 거의 100% 환경과의 상호작용으로 형성된 행동으로 보인다.
청소년, 성인들의 행동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지난 시간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어느 날 갑자기 참을성이 생기고, 어느 날 갑자기 배움을 좋아하게 되는 성향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유아기, 아동기에 쌓아온 행동과 생각의 결과물이다.
유아들에게 놀이는 정신건강의학적 관점만 강조되어서는 안 되며 그 자체가 발달이며 학습이라는 사실이 어른들의 놀이와 다르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그중에서 사회•문화적인 관점으로 놀이는 인류의 문화가 전승되도록 한다. 유아들의 역할놀이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역할놀이 장면을 보면 유아들의 가정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교육학자들은 가장 늦게 놀이의 가치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나 역시 작은 힘이나마 우리나라 유아교육 발전에 일조한다는 생각으로 놀이에 대해 연구도 하고 논문도 썼지만 사회•문화적 인식을 바꾸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나와 인연을 맺은 유아들만이라도 행복하고 바르게 살아가는 기반을 다져주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유아들의 교육을 결정하는 부모님들께 논문 같은 딱딱한 형식은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가능한 쉽게 공감하는 이야기를 써서 조금씩 생각을 공유하고자 시작한 글쓰기가 벌써 5년이 되었다. 상상하기 어려울만큼 공학과 과학이 발전한 것처럼 유아교육도 20여 년 사이에 과학기술의 힘을 빌려서 비약적인 발전을 했다. 그러면서 놀이의 가치가 더 부각되었다.
앞서 말한 그 유아는 5학년쯤 되었을 것이다. 그때 많은 과목을 가르치는 주입식 교육이 아직까지 도움이 되는지 궁금해진다. 아빠와 산에 다녔다면 정말 좋은 추억을 얻고, 정서적 교감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교사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방법, 친구를 배려하는 경험, 친구들과 한 가지의 주제에 집중하여 관찰하고, 또래와 공통의 과제로 대화하는 경험,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즐거움을 느꼈는지 궁금하다. 인간이 학령기, 성인기를 살아가면서 필요한 전략을 유치원에서 배워야하기 때문에 위에서 서술한 경청, 배려, 관찰, 집중, 앎의 기쁨을 경험하는 것이 유아기의 가장 중요한 과제이다. 학문적으로 성공하고 싶다면 학습에 대한 즐거운 이미지를 갖는 것이 우선이고, 사회적으로 행복하려면 대인관계기술을 익혀야 한다. 이런 성향을 배우는 학습지, 책, 학원은 없다. 유아들의 놀이에 있다. 그러나 그 놀이 과정은 촘촘한 계획을 구성하여야 좋은 놀이가 될 수 있다. 다음 글에 ‘좋은 놀이’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 보려 한다,
교육학박사 임은정의 2021. 06. 02. 교육이야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