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은 누가 책임져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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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용인소재 한 초등학교의 학교폭력기사를 접했다. 최근 들어서 기사의 사실과 거짓을 판별하여 생각하는 매우 복잡한 습관이 생겼다. 2012년 학교폭력에 대한 연구용역을 한 이후로 관심이 가는 분야가 되었지만 같은 지역이고 최근 뉴스라서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된다. 국민일보 : 2018-12-16자 이고 “초등생 장애 아들이 ~”로 검색이 가능하니 그대로 옮기지는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진실은 이렇다.

학생 4명이 뇌병변 장애 3급으로 신체 기능 장애가 있는 A군을 몇 달간 매일, 쉬는 시간마다 계단과 복도, 운동장에서 강제로 달리기를 시키고 쫓아가서 넘어뜨린 후 발로 밟고, 침을 뱉고, 부모 욕을 포함한 도가 넘는 언어폭력을 했으며 키가 140㎝도 되지 않아서 덩치가 큰 학생들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했다는 것이 A군 어머니의 주장이다. 지난달 13일쯤 A군이 괴롭힘을 당하는 장면을 목격한 다른 반 학생 B군이 A군의 담임선생님에게 알려서 관련 학생 상담을 진행했다. 가해 학생도 사과를 했다는 것이 학교 측의 주장이다. A군이 같은 반에서 늘 보아야 하는 학생들의 협박과 부모님께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은 마음에 피해 사실을 숨겨왔는데 담임도 부모에게 기절한 사실을 며칠이 지나고 알렸다는 것이다.

기사에는 가해학생, 피해학생이라고 명명했지만 난 이를 지켜보았을 다른 학생들까지 모두가 피해학생이라고 생각한다. 일단 친구를 힘들게 한 4명을 키워낸 것은 사회, 학교, 가정이다.

학교는 A군과 4명의 나쁜 행동을 한 학생들을 빠르게 노출했어야 했다. 지켜보는 눈이 많아져야 한다. 그리고 떨어질 수 있도록 빠르게 알고, 대응했어야 한다. 그렇게 1년 가까이 방치된 것이 사실이라면 교육자로서 담임 이상의 모두가 책임을 져야 한다. 담임이 바뀌었다고 하는데 현행법은 책임이 불분명하게 잘 만들어져 있지만 이전 담임도 책임을 지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A군의 가정은 A군이 자존감을 가지고 살 수 있도록 가르쳐 주어야 했다. 학교가 무엇이라고 부모님이 걱정할까봐 협박을 견디도록 한다는 말인가? 부모님은 늘 씩씩하고 상처받지 않는 사람이며, A군의 편이라는 것을 아기 때부터 확실하게 인지시켜주었어야 한다.

나쁜 행동을 한 학생의 가정은 그동안 가장 가치를 두었던 교육이 무엇인지 되짚어 보고 이기적인 교육은 버려야 한다. 자신의 앞가림은 못해도 생명을 존중하는 교육을 최우선 가치로 삼아야 한다. 그렇게 바뀔 각오가 없다면 이 가정들이 사회와 격리되는 것이 맞다.

사회가 가장 책임이 크다. 인성이 먼저 확립되고 지식을 담아도 늦지 않은데 모두 인성교육이 중요하다고 말 하지만 사회분위기는 전혀 아니다. 유치원에서도 특기 강사가 수업하는 것을 좋아하고 묵인하는 것이 현실이다. 유아들의 뇌와 시간은 생각보다 한정적이다. 이것도 시키고 저것도 하면서 인성이 함께 키워질 것이라는 기대는 오산이다. 교육부도 앞장서서 파행 교육을 묵인해 놓고 엉뚱한 곳에 초점을 맞추니 모두 둔감해지고 있다. 빨리 사회가 과학에 입각한 교육에 힘을 쏟아야 한다. 이 기사를 보면서 2년 전 관찰기록이 생각나서 옮겨본다.

교사: 이 사진의 친구들은 모두 같은 친구인가요?

친구1: 아니오.

교사: 00이는 왜 아니라고 생각해요?

친구1: 팔이 없고 다리가 없으니까.

종국: 야. 아니야. 같은 사람이야.

친구1: 아니야.

종국: 팔이랑 다리가 없어도 사람은 사람이야. 그냥 우리 도움이 필요한 거야.

친구: 아니야. 그런거.

친구2: 맞아. 다 같은 친구야.

친구3: 맞아. 몸은 불편해도 다 같은 친구야.

환류: 사진보고 토론하기가 팽팽하게 진행되었네요. 유아들 스스로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겠어요. 그런데 친구1의 생각은 달라졌나요? 전학을 오긴 했지만 좀 놀랍네요.

2016.12.13.(화) 장애인식 이야기 나누기. 담임교사 관찰기록, 연구자 환류

그 당시 만 5세에 전학 온 친구1의 반응이 많이 놀라웠던 기억이 있다. 이전에 매우 평범하게 유치원을 다니고 사교육을 하는 그런 유아였다. 인지도 늦지 않았고, 체격은 큰 편이었던 유아였다. 이런 채로 학교를 갔으면 어떻게 되었을지 대화를 했었다. 이런 유아들이 같은 학급의 사람을 괴롭게 하는 사람으로 성장했을지도 모르겠다.

유아기는 그래서 중요하다. 사고의 모양과 크기를 만들어 주는 시기이다. 바른 모양의 큰 그릇이 만들어져야 이후에 그 모양대로 많은 양의 지식과 지혜를 담을 수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 이후에는 그릇의 모양과 크기가 달라지기 어렵다는 것이 이론이다. 그런데 경험적으로도 그렇다. 유치원에 오기를 힘들어하거나 성격이 좀 까다로운 유아들은 기질보다는 24개월까지 양육태도가 현재의 상태에 미친 영향이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지금 당장의 환경과 양육태도가 앞으로의 삶을 달라지게 한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그래서 학자들은 ‘발달과업’이라고 표현한다. 유아기의 발달과업은 사고와 이해의 틀을 만드는 것이다.

교육학박사 임은정의 2018. 12. 18. 교육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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