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자녀가 학생이 되었을 때 혹은 성년이 되었을 때 자신의 일을 자기 주도적으로 하기 바라시나요?”라고 부모님들에게 묻는다면 “예, 자기 주도적인 학습을 하고 자기 주도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라고 대부분 대답할 것이다. “아니요. 내 아이가 언제까지나 나의 품 안에서 내가 시키는 대로 움직이고, 나의 도움을 원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하는 부모님은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이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 그렇다는 것이고, 실제 부모님들의 교육 방법이나 전략을 보면 전혀 다르게 보일 때가 있다. 오히려 부모님의 태도 혹은 행동이 자녀의 자존감과 주도성 성장을 방해하고 있음을 모르는 듯하다.
이렇게 유치원에서의 활동을 스스로 되뇌고 다시 하는 것은 유치원에서의 교육이 자발적이고 자기 주도적인 형태일 때 가능하다. 더불어 가정에서도 유아가 알게 된 새로운 사실을 존중하는 태도로 경청해 주어야 가능하다. 강제적이고 관심도 없는 방식으로 지식을 강요했다면 스스로 생각하고 다시 하고 싶은 욕구가 일지 않는다. 자기 주도적인 태도를 촉진하는 환경은 적어도 생후 8년간 성인, 또래와 일상을 공유하면서 배울 수 있는 환경이다. 일상의 규칙을 알고 교사, 친구, 가족들 속에서 매 순간 배움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일상’이다. 형식적인 시간표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하루를 지내며 새로운 지식을 접하고 비형식적인 과정에서 삶을 살 듯이 배움이 일어나야 한다. 일상을 공유하며 인성, 규칙, 사회성, 논리를 교사와 친구에게 듣고 경험하면서 아래의 대화처럼 봄반 유아들도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해졌다.
봄반의 오전 간식 이후, 봉이가 책을 가지고 자리에 앉는다.
수경: 우리 같이 보자. / 봉이: 아니, 이건 나 혼자 볼 건데?
수경: 그런데 이건 유치원 책인데? (봉이가 가만히 수경이를 보고 있다.)
수경: 친구야, 우리 사이좋게 지내자! 자! 약속!
봉이: 그래. 이건 우리 함께 사용하고 함께 보는 거잖아. 그치?
수경: 맞아. 유치원 책은 모두 함께 볼 수 있어.
반대로 자기 주도적인 태도와 자존감을 생후 8년 안에 일찍 제거할 수도 있다. “이 정도는 알아야 하니까, 해야 해.” “전에 배웠지? 대답해 봐. 이 문제 풀어봐.” 등 성인 주도적으로 무엇인가를 가르치고 끊임없이 확인하려 드는 것이다. 아래의 내용은 한글에 흥미가 생긴 철이의 관찰기록이다. 우리 유아들이 유치원에 와서 처음 가장 관심을 갖는 대상은 친구이다. 그래서 친구들 이름으로 한글에 친근해지도록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아래의 사례처럼 ‘박’과 ‘반’의 생김에 대한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고 기뻐한다. 만약 누군가 ‘이렇게 쓰는 것이 박이다’라고 가르치고 확인했다면 글자를 알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자기 주도적으로 발견하고 스스로를 대견하게 생각하는 경험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유아들은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
오후 자유놀이 시간, 철이가 이면지 바구니에서 종이를 꺼낸다. 종이에 적힌 글씨를 보고 있다가 교사에게 이야기 한다. 종이에는 ‘기본생활습관: 반갑게 인사한다.’가 적혀있다.
철이: 선생님! 이것 보세요! / 교사: 반갑게 인사한다?
철이: 이 글자(반) 박00의 박이에요! / 교사: 박00의 박과 닮았지요?
철이: 어! 맞아요. (받침을 가리키며) 이걸 돌리면 박00의 박이에요.
“오늘 재밌었어? 뭐 했는데? 뭐가 제일 재밌었어? 친구가 때리지는 않았어?”등의 질문을 먼저 쏟아 내는 것은 다른 형식의 테스트를 하는 것이다. 자존감과 자발성이 넘치는 사람으로 자라는 환경은 스스로 하고 싶을 때까지 기다리고 스스로 다가올 때 상호작용해 주어야 한다. 친구나 상사를 대할 때 시시각각 테스트하고 확인하려 하지는 않는다. 친구나 상사를 대하는 마음으로 자녀의 입장을 이해하고 존중한다면 자존감이 넘치는 사람으로 성장할 것이다.
교육학박사 임은정의 2022. 07. 13 교육이야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