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의 이야기이다. 봄 반에 새로 입학한 철이가 아버지와 함께 등원했다. 3월이었으니 철이는 당연히 행동이 굼뜨고 느렸으며, 아버지와 인사를 더 오래 하고 싶어 했다. 그런데 빨리 들어가라는 아버지의 단호함이 눈빛에서 느껴졌고 이내 돌아서 가시던 장면이 기억에 남았다. 매년 4월 부모님과 담임교사의 정기 상담이 있다. 교사들은 유아들의 발달상황 관찰된 행동에 대해 나와 상의 후 상담할 내용을 결정한다. 철이의 담임교사는 철이가 소극적이고 주눅 든 모습이 자주 관찰된다 하였고 나는 담임에게 철이 부모님의 양육태도에 대해 여쭤보고 함께 원인을 찾아보자고 했다.
상담 후 담임에게 보고를 받았다. 어머니는 지나치게 철이를 아기처럼 대하고, ‘아기’라고 호칭을 하신다고 했다. 반면 아버지는 철이를 엄하게 대하셔서 어머니와 상반된 양육태도를 가지셨다는 것이다. 철이는 일관되지 않은 부모님의 태도로 인해서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어머니보다 아버지가 철이를 돌보는 날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철이의 부모님은 “오늘 미세먼지 있으니 나가지 말아 달라.” 등의 동의하신 내용에 반하는 항의로 담임을 당혹하게 만들기도 했다. 교사에게 항의하거나 부탁을 하는 것이 철이에 대한 관심과 존중이라고 잘 못 이해하고 계신 것 같았다.
철이의 아버지는 유치원 상담을 통해 너그러워지셨다. 덕분에 철이는 많이 밝아졌는데, 그다음이 문제였다. 가을반이 되어서 친구들은 스스로 하는 활동이 점점 늘어났는데 철이는 만 3세의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부모님이 가을반인 철이를 여전히 만 3세를 대하듯 하셨고, 교사도 3세처럼 철이를 챙겨주길 바랐다. 이제는 철이 스스로 해야 한다고 말씀드렸지만 이해하지 못하시고 늘 서운해하셨다. 철이의 사회성과 자발성의 발달이 우려스러웠다. 그 이후에 몰래 시킨 학습지로 인해 인지적 발달까지 방해받게 되었다. 꾸준히 말씀드렸으나, 발달단계에 맞는 양육태도가 적용이 되지 않아서 발달 불균형 상태에 이르렀다. 발달 균형이 한 번 깨지면 정상적인 발달단계까지 갈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고, 정상궤도에 오르려면 본인과 부모님의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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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 아버지가 재택근무를 하므로 결석함. 가족과 놀러 가야 해서 조퇴함.
- 오늘은 쉬고 싶다고 해서 결석.
- 같은 행동에 대해서 어머니가 기분이 좋을 때는 용서하는 등 비 일관적인 환경.
- 어머니가 바쁜 것이 미안해서 스마트폰을 주었다고 함.
- 서툴고 천천히 하니까 답답해서 대신해주거나 밥도 먹여주신다고 함.
- 집에서는 좋아하는 것만 먹으려 해서 주로 맞추어서 해줌. 편식이 심함.
위의 사례들은 교사들의 자료에 종종 등장하는 내용이다. 위의 사례에서는 1번은 유아의 사회생활을 가볍게 생각하고 존중하지 않는 환경이다. 유치원은 규칙적인 생활의 시작이므로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면 결석을 하지 않도록 배려해야 한다. 특히 석성숲유치원처럼 공통의 관심사로 놀이를 찾아가는 정상적인 유아교육에서는 더 그렇다. 유아들이 결석으로 인해 친구들과의 공통 학습주제에 몰입하지 못하면 유아들은 학습의 즐거움을 느낄 기회가 줄어든다. 유치원 시간을 배려하여 가정행사를 계획하는 부모님의 대화를 듣는다면 존중받고 있음을 느낄 뿐만 아니라 책임감도 배울 것이다. 유아들이 학습의 즐거움을 느끼면 결석하고 싶다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
유치원에서는 교사와 유아들이 갈등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 해도 되는 행동과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미리 정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규칙 속에서 자유로움을 보장하려면 3번, 4번의 사례와 같이 비 일관된 양육태도가 아니라 결과를 예측할 수 있는 일관된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 부모님이 바쁜 것은 미안한 일이 아니므로 당당하게 그 시간 옆에서 혼자 놀도록 해야 한다. 혼자 노는 것은 유아들에게 좋은 학습기회이다. 스마트폰이나 다른 것으로 보상을 하려는 비 일관된 행동이 오히려 유아를 혼란스럽게 하고 발달에도 부정적인 결과를 낳는다.
존중하는 양육태도는 유아들에게 좋은 습관형성 기회를 주는 것이다. 식사시간은 자기효능감과 자율성을 연습하는 효과적이고 반복적인 상황이다. 음식을 먹을 때도 어른과 주위 사람이 먼저 수저를 드신 후에 식사하는 환경을 조성해 주어야 한다. 숟가락, 젓가락질이 서툴고 흘리더라도 기다려주어야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차츰 늘어나고 자존감이 높아진다. 무엇이든 연습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완벽하게 발달하지 않는다. 결과뿐만 아니라 연습하는 도전적인 과정은 유아들의 뇌와 운동능력을 자극하는 기회이므로 매우 중요하다. 서툰 행동을 기다려 주고 스스로 하는 것을 독려하는 성인의 배려가 유아들이 성장하도록 한다. 유아들의 발달에 맞는 교육으로 부모와 자녀 간에 진정한 존중의 관계를 만들어 가길 바란다.
교육학박사 임은정의 2021. 09. 29. 교육이야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