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정 중심 수업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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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칼럼

12살 내외의 학생들이 소화계, 순환계, 호흡계 등 인체의 주요 기관에 관해 스스로 공부하고, 동생들에게 5분 이내로 설명하는 활동을 했다. 설명을 듣는 학생들에게는 생소한 단어들이지만, 꼭 이해하지 않더라도 그 단어와 개념에 자연스럽게 익숙해지는 그 과정 자체가 중요하다. 설명하는 학생은 자신이 공부한 내용을 정리하고 재구성하며,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스스로 판단하는 경험을 한다. 실제로, 지식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누군가에게 설명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설명자야말로 이 활동에서 가장 큰 배움을 얻는다.

학생들은 스스로 주제를 정하고, 4~5명씩 모둠을 이루어 함께 공부한다. 각자 수업 준비를 해오고 공책에 내용을 정리한 뒤, 나와 함께 내용을 살펴본다. 발표준비는 각자 다 했지만, 그날 발표할 한 사람을 내가 지목하고 곧바로 설명에 나선다. 이런 형식의 활동을 진행할 때 교사와 학생 모두에게 중요한 개념은 “모두 같은 수준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강박을 버리는 것이다. 어렵고 낯선 개념이라도 충분한 시간과 다양한 접근이 주어진다면 누구나 지식에 다가갈 수 있다. 학생들은 반복적으로 학습하면서 자신만의 속도로 내용을 익힌다. 나는 학교에 다니면서 늘 시간 안에 이해하고, 암기하고, 시험을 치르고, 그 시험의 성적으로 나 자신이 평가받는 구조 속에 있었다. 따라가는 것이 벅찬 친구도 있고, 아예 따라갈 수 없는 친구도 있었다. 이 과정에서 독서, 환경, 유전자의 영향으로 쉽게 이해하는 친구들은 괜찮은 학생이 되는 구조이다. 나는 이제 그런 교육 틀의 문제를 연구하는 학자로서, 적용하는 교사로서 지금에 서 있다.

지식이 잠시 잊혀도 괜찮다. 대신 다시 찾아볼 수 있는 경로와 원칙을 체득하는 것이 진짜 배움이다. 학생들에게 소화계, 순환계, 호흡계를 숲에서 직접 만들어보는 활동을 제안했다. 찰흙, 빨대, 재활용품 등 다양한 재료를 활용해 각자의 방식으로 인체를 표현하게 했다. 이 활동의 핵심은 완성된 결과물이 아니라, 만드는 과정에서 나누는 대화와 사고의 흐름이다. “소장은 더 길어야 해.” “이자는 작아야 해.” 숲에서 학생들이 몰입하여 의견을 주고받는 모습은 교육이 지향해야 할 본질을 그대로 보여준다. 손을 움직이며 생각을 표현하는 활동은 지식의 구성과 뇌 발달에 깊은 영향을 준다. 유아든 고등학생이든 충분한 시간과 마음의 여유만 있다면 누구나 이런 방식의 교육적 접근이 가능하다.

우리는 학생들에게 조금 어렵고 도전적인 활동을 제공해야 한다. 의미 없는 쉬운 활동을 늘어놓는 것보다, 듣고, 표현하고, 탐색하는 과정이 훨씬 더 깊은 배움을 만든다. 나는 지금도 학생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해치지 않으면서 학습 효율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계속 고민하고 있다. 지금 좋다고 믿는 방식이라도 언제든 수정할 수 있고, 학생들과 함께 새로운 길을 발견할 수 있다.

“오늘은 이 책의 10쪽 할 차례야. 친구들과 똑같이 여기를 해.” “3쪽에서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하면 돼.” 이런 식의 제한된 학습지를 아무렇지 않게 내미는 세계의 드문 한국 유아교육 현실을 보며, 나는 개탄한다. 무지함과 욕심으로 그릇된 사랑을 표현하는 부모와 그를 이용하는 장사치의 결탁이다. 교과서보다 더 형편없는 유아 학대이다. 그에 맞서는 방법은 결국 교육 성과를 느끼는 교육방법을 제시할 수 있는 철학뿐이다. 종이비행기 하나를 하루종일 접으며 “왜 잘 안 나는가”를 스스로 탐색하는 활동이야말로 훨씬 깊은 배움이다. “학습자가 스스로 흥미를 느끼고 귀를 기울이는 교육과 사탕과 초콜릿으로 유인하며 억지로 끌고 가는 교육중 옳은 교육은 무엇인가?” 자극적인 영상과 주입식 학습에 익숙해진 학생에게 무엇인가를 주입하기 위해 사탕으로 유인하는 것은 결코 교육이 아니다. 그런 방식은 사고의 흐름과 지식의 구조로 이어지지 않는다.

‘스스로 공부하며 앎을 즐기는 사람’은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들은 유아기부터 스스로 할 일을 찾는 습관을 천천히 길러왔다. 교육은 하루아침에 결과를 내는 일이 아니다. 이 사실을 모든 교육자가 다시 각성해야 한다. 이번 활동에서도 신체 기관 만들기에 참여하지 못하고 주변만 맴도는 학생이 두 명 있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반복된 결석과 지각으로 몰입 경험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다른 친구들과 나눌 수 있는 대화가 없는 것이다.

며칠 결석해도 괜찮은 학교, 한 달 빠져도 별다른 차이를 느낄 수 없는 학교가 과연 가치 있는 교육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그 점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된다. 학생이 자리를 비우더라도 수업 흐름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고, 배움의 과정에서도 공백이 생기지 않는다면, 그 교육은 학습자가 소외된 교육이다. 교사의 입장에서도 보람을 느끼기 힘들 것이며, 교사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이다. 학생들에게 전혀 도전적이지 않고, 지적 자극도 없는 교육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단 하루 조퇴하거나 잠깐 지각했을 뿐인데도 눈에 띄는 결손이 생기고, 수업의 맥락을 따라가기 어려워지는 교육은 매일매일 지적인 자극과 탐구의 과제가 살아 있는 교육이다. 이런 수업은 단지 교사의 전달만으로 채워지는 시간이 아니라, 학생들이 스스로 참여하고 사고하며, 그날의 학습에 깊이 몰입하는 진짜 배움의 현장이라 할 수 있다. 이런 교육은 하루의 부재가 아쉽고, 한순간의 지각조차 놓치고 싶지 않은 것이 된다. 그것은 학습자가 느끼는 내면의 동기와 학습의 즐거움, 그리고 지적 흐름을 따라가고자 하는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몰입은 결코 스트레스가 아니다. 그것은 지적인 즐거움이며, 교육이 추구해야 할 가장 자연스러운 에너지이다.

교육학박사 임은정의 2025. 05. 28. 교육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