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에게 “나에게 배움이란?”이라는 질문을 했다. 그 대답은 아래와 같았다. 학생들의 대답을 보기 전,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스스로 답을 찾아본 후에 읽어보면 좋겠다.
“내가 공부한 내용을 친구들에게 나누는 것.”
“질문을 만들고 토론하는 것.”
“궁금한 것을 해결하는 것.”
“전문 용어로 바꾸어 보기도 하고, 쉬운 말로 다시 설명해보는 것.”
“듣는 사람이 이해하도록 설명하는 것.”
“발표로 내가 아는 것을 표현하는 것.”
“설명하다 보면 더 잘 정리되고 머릿속이 또렷해지는 것.”
“배운 내용을 상황에 맞게 적용해 보는 것.”
“처음엔 ‘이걸 어떻게 하지?’였는데, 나중에는 ‘내가 이걸 어떻게 해냈지?’하고 놀라게 되는 것.”
교사로서, 그리고 어른으로서 ‘배움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했다. 그 대답을 내 학생들은 이미 자기 언어로 온전히 드러내고 있었다. 유아기부터 체화된 경험이 드러나는 이 학생들이 나의 공부에 대한 평가를 보여주고 있다. 물론 가정에서 도와주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일이지만, 선행연구자들의 이론을 반영한 나의 교육실천이 옳았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학생들과 우스갯소리로 대단한 학자인 존듀이(John Dewey)가 실패한 교수학습을 나는 성공했다며 대화를 했었다. 이 또한 듀이의 실패 원인을 내가 알 수 있게 연구자들의 기록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존 듀이의 실험학교는, 교육의 중심을 학생에게 온전히 돌리고자 한 대담한 시도였다. 듀이는 학생들이 실제 삶에서 마주하는 문제를 탐구하고 스스로 해결하는 과정에서 배움이 일어난다고 보았다. 그래서 교실은 작은 사회였고, 수업은 실제 문제를 다루는 활동으로 혁신적인 시도였다. 그러나 실험학교는 이어지지 못하고 문을 닫았으며 ‘경험 중심 교육이 실제로 작동하기 위한 조건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남겼다. 실제 현장에서는 몇 가지 구조적 한계가 드러났다. 첫째, 연계성과 누적성이 부족했다. 매일의 활동은 흥미로웠지만, 그 경험들이 배움으로 축적되는 경로가 보이지 않았다. 둘째, 경험 중심 수업은 의미가 있었지만, 사회와 학부모가 요구하는 ‘보이는 성취’로 전환하기에는 평가 방법이 충분하지 않았다. 셋째, 교사마다 수업 이해도와 실행 방식이 달라 일관된 기준을 세우기 어려웠다. 듀이의 철학을 깊이 이해한 교사는 가능성을 실현했지만, 준비되지 않은 교사에게는 그 철학을 실천할 교육과 훈련이 제공되지 않았다. 그 결과, 같은 철학 아래에서도 수업의 질과 방향은 교사마다 다르게 나타났다. 이러한 한계들이 드러나자 많은 연구자는 중요한 결론을 남겼다. “경험은 강력하지만, 설계되지 않은 경험은 충분한 학습을 보장하지 않는다.”
이 말은 경험 중심 교육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학생의 자유로운 탐구를 보장할수록, 그 탐구를 지탱하는 교육적 설계는 더 치밀해야 한다. 경험이 지식으로 정제되고 확장되기 위해서는, 교사의 사전 설계와 세심한 방향 제시가 필수적이다. 듀이의 실험학교는 성공과 실패가 공존한 사례였지만, 미래 교육을 논의할 때 우리는 다시 묻게 된다. 학생의 경험을 존중하면서도 그 경험이 학습으로 이어지도록 구조를 설계하는 일은, 결국 우리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였다.
나의 학생들은 스스로 발표하고 성찰하면서 선배에서 후배로 배움이 이어진다. 누적성과 연계성이 구성원 간에 그리고 개인 내부에서 이어지도록 스스로 알게 된 내용을 정리하며 발전해 감으로써 누적성의 한계와 평가의 한계를 극복한다. 부모의 합의와 검정고시라는 관문으로 평가와 인정의 한계를 극복한다. 교사들과 내가 끊임없이 연구하고 소통함으로써 교사의 자질을 균질하게 맞추어 가고 있다. 이렇게 보면 나의 교육실천은 듀이를 발판으로 발전하고 있다,
교육학박사 임은정의 2025. 12. 3. 교육이야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