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에 유아들은 ‘놀잇감은 없는 교실’을 시행했다. 교사와 함께하는 활동 외에는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고 놀이를 하는 것이다. 교육선진국(이성, 과학, 휴머니즘의 교육적용이 빠른 나라)중에서 이 활동을 3개월 이상 지속하는 나라들이 생겨나고 있다. 결핍된 상황에서 더 많은 창의성과 사회성이 발현된다는 연구 결과를 반영한 교육이다. 자연에서 놀이를 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유아들이 정해진 자료 없이 친구들과 놀이를 만들어내는 상황을 구현하는 것이다. 유아들에게 놀잇감은 놀이를 위한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매개체가 되어준다. 그래서 놀잇감 없이 처음부터 만들어내는 놀이는 생각보다 쉽지 않은 과제이다.
작년부터 유아들에게 많은 결핍이 느껴졌기 때문에 유아들이 제대로 ‘놀잇감 없는 교실’을 실천할 수 있을지 걱정을 했다. 다행스럽게도 코로나로 인한 발달결핍이 조금씩 해소되어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아직 연구를 한 것은 아니지만 관찰 결과 연령이 어릴수록 팬데믹으로 인한 결핍이 더 크지만 적정한 환경이 주어지면 회복속도도 더 빠르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즉, 가을반보다 여름반이, 여름반보다 봄반이 회복 속도가 빠르다는 것을 체감한다. 지금처럼 교육의 공백이 클 때 일수록 최신의 연구 결과가 제대로 반영된 과학적 교수법이 적용되어야 한다. 과학적 교수법이 정해진 한 가지 방법을 말하는 것은 아니며 이전의 방법을 고수하지 않고 새로운 연구 결과에 근거하여 교수법도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교수법을 연구하는 학문이 교육공학이다. 교육공학이라는 과목을 처음 접한 시기가 대학원 석사과정이었다. 공학적인 요소 혹은 컴퓨터와 관련된 과목이라고 생각했었다. 물론 그런 내용도 포함되지만 주된 내용은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학습할 수 있을지 연구하는 비교적 신생 교과였다. 그 때까지만 해도 이후 나의 주된 관심분야가 교수-학습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그 교과를 접하면서 교사의 교수법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느끼게 되었고 그 동안 왜 똑같은 방법으로 학습을 강요받았는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사는 설명하고 학생은 암기하고 같은 내용을 얼마나 기억했는지 평가받는 것이 나를 포함한 학생들의 학습 과정이었고, 학습을 하는 목표는 시험을 잘 보는 것이었다. 학생 개개인을 위한 교육이 무엇인지는 아무도 고민하지 않았다.
얼마 전 스티븐 핑거(Steven Pinker)교수의 저서를 소개 하면서 이 세상을 바꾸어 가고 진보해 가는 힘은 이성, 과학, 인간중심(Reason, Science, Humanism)이라는 내용을 소개한 적이 있다. 교육의 발전도 이 주장이 적용된다. 예전에는 지금보다 더 아동의 인권에 관심이 없었으므로 학습자로서 아동의 입장에 관심이 없었다. 기성세대는 지식을 주입하는 것이 목표였고, 잘 암기하는 학생만 살아남으면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산업발달로 기업이익을 위해서 효과적인 교수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효과적으로 자사직원을 교육하거나 제품소개를 위한 교수방법이 연구되기 시작했다. 성인대상의 교육이 계기가 되어 심리학, 교육학 등의 발전과 만나면서 교육방법(교육공학)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학생과 유아로 학습자의 범위를 넓혀서 아동인권을 고려한 교수법 적용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좋은 교수법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학습자의 자발성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도록 하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도록 하는 것이 개인에게 가장 의미 있는 교수법이다. 결국 학습자를 존중하는 휴머니즘의 관점에 이성과 과학을 적용하여 교육발전을 이끈 것이다.
차츰 자연과학, 사회과학 이론을 반영한 이성적인 연구들이 유아교육의 질과 경제발전의 관계를 밝혀내면서 유아교육의 교수법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유아들은 놀이가 가장 효과적인 교수법이라는 것까지 밝혀냈다. 나는 이 이론에 매우 동의하며 임상적으로 느끼고 있다. 그런데 아무 계획도 없고 새로운 자극도 없는 놀이는 교육적 놀이가 아니다. 최근 우리나라도 놀이중심이 강조되기 시작하면서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교사, 장학사, 연수하는 강사들조차 놀이중심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사례가 많다. 놀이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자발성’이라는 고전적인 이론에만 매몰된 것이 문제이다. 자발성이 놀이의 중요한 요소인 것은 맞지만 자발성을 갖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려운 난제이기 때문에 이를 해결하지 못하면 급기야 ‘놀이로 교육이 불가능하다.’로 귀결될 것이다.
유아기의 교육적 놀이로서 자발성은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니다. 유행하는 영상이나 캐릭터를 그대로 허용하면서 유치원에서 자발적 놀이를 하라고 하면 유아들은 캐릭터를 흉내 내는 칼싸움을 하거나, 예쁜 여자 캐릭터처럼 외모 가꾸기 경쟁을 하는 것으로 하루를 보낼 것이다. 이것이 바네 교수가 말한 ‘학교 밖 놀이의 위험성’이다. 이런 놀이는 오히려 독이 된다. 적절한 환경과 기회를 제공하고 사고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준 후에 자발적인 놀이의 즐거움을 찾도록 해야 한다.
교육학박사 임은정의 2021. 12. 17. 교육이야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