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라고 말할 수 있는 몇 가지 조건이 있다. 가장 중요한 요소는 ‘자발성’이다. 이는 성인도 유아도 마찬가지이다. 즐겁게 하던 놀이에 의무감이나 강제성이 주어지는 순간 이미 놀이의 가치를 잃는다. 놀이는 결과에 대한 부담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 특징 중 하나인데 타의에 의해서 하게 되는 모든 행위는 결과에 대해 크고 작은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다. 유아의 학습은 놀이여야 한다. 따라서 가시적인 결과를 확인할 방법은 놀이가 아니므로 유아들의 학습방법이 아니다. 교재나 교사 혼자 진행하는 수업은 유아들에게 부적합한 학습방법이다. 아주 재미있는 교재가 있다. 찢든 그리든 가지고 놀면 즐거운 학습이다. 그런데 선생님이나 엄마가 해야 한다는 신호를 보냈다면 놀이가 아니다. 근사한 교구가 있다. 마음대로 분해해보거나 다른 장난감과 섞어서 놀이하면 학습이 된다. 그러나 내 마음대로 할 수도 없고 이제 싫증이 났는데 비싸고 견고한 것이라고 부모님이 아낀다면 놀이가 아니다.
유아들은 부모님의 마음을 모두 읽고 있다. 내가 어떻게 하면 부모님이 기뻐하는지 알기 때문에 재미있는 척 자신을 감출 수도 있다. 공감능력이 지나치게 발달한 유아들은 자발성에 더 취약한 경향을 보인다. ‘말 잘 듣는 착한’ 유아들 중에서 자발성이 약해지는 경우가 있다. 물론 사회규범을 따르고 지시를 따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인간의 행동이다. 하지만 지시를 따르는 과정에서도 자발적인 지시 따르기와 사고가 연습 되어야 한다, 유아들이 놀이를 통해서 터득하는 가장 큰 가치는 자발성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유아기에는 놀이를 통해서 자발성을 익힌다. 자발성은 철학에서도 강조되는 가치이다. 스스로 내면에서 자신의 동기를 얻어내는 힘이 자발성이다. 유아들이 현재부터 미래까지 무엇을 하든지 모든 것이 자발적으로 이루어질 때 높은 성과를 거둔다는 것을 우리 모두 경험을 통해서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매사에 자발적인 참여를 하면서 높은 성과를 보이고, 어떤 사람은 그렇지 못하다. 이 모든 책임을 개인의 성실함이나 성향으로 생각할 뿐 그런 성향을 갖도록 하는 환경에 대해 고민을 하지 않는 것이 안타깝다. 이런 성향이 유아기 놀이를 통해서 얻어지고 자발성과 함께 자존감도 생긴다. 다음에 소개하는 일화를 분석해 보면 놀이가 학습이 되는 과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동화 활동 시간, 똘이가 동화 ‘도토리 마을의 유치원’이야기를 듣고 있다. 도토리 유치원 친구들이 모래를 가지고 가게 놀이를 한다.
똘이: 우리처럼 가게 놀이를 하네!
길동: 저 낙엽들은 우리 유치원에도 많은데!
똘이: 우리도 저렇게 만들어서 가게 놀이를 해볼까?
길동: 어어!! 그러자!!!
똘이는 가게 놀이에 흥미를 가지고 스스로 놀이를 확장시키는 상상을 했다. 가게 놀이 상황극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이다.
위에서 교사는 동화를 읽어주었을 뿐 동화처럼 가게 놀이를 하라고 지시하지 않았다. 유아들이 지금 유치원에서 주제로 정하여 진행하고 있는 가게 놀이 주제와 맞추어서 생각하고 친구끼리 놀이를 제안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동화처럼 놀이하는 것이 아니라 동화의 주인공들이 “우리처럼 가게 놀이를 하네.”라며 자신들을 중심으로 사고한다. 조망수용능력이 생기지 않은 유아라면 자기중심성으로 인해서 생기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 유아들은 이미 사회적 조망수용능력이 생긴 유아들이기 때문에 자신들의 놀이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자존감으로 해석할 수 있다.
우리 유치원에서 ‘주제’와 이보다 더 집중할 수 있는 ‘핵심어’로 수업을 진행하는 이유를 이 대화에서 알 수 있다. 유아들의 관심이 같아야 함께 할 놀이와 대화의 깊이가 깊어진다. 관심의 주제도 유아들이 알아야 하는 많은 영역에 걸쳐있어야 한다. 유치원 내에서 만화나 유행하는 영상 등에 대한 대화를 삼가도록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유아들이 유치원의 활동에 집중하지 못하고 다른 대화를 하면 교육의 효과가 반감되고 친구처럼 영상에 관심을 두게 되기 때문이다.
‘가게 놀이’라는 핵심어로 수업이 진행되면서 이와 관련된 동화도 보고, 화폐도 만들고, 화폐 계산도 연습하였기 때문에 유아들 스스로 하는 놀이가 확장되고 새로운 놀이를 개발해서 놀게 된다. 그래서 놀이가 깊이 있게 이어질 수 있는 적당한 자극과 경험을 구성해 주어야 한다. 유아기에 많은 경험이 필요하지만, 단편적이고 이어서 놀이할 수 없는 경험은 발달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단편적인 여행보다 유치원에 다녀와서 하는 지속적인 선생님 놀이가 발달에 훨씬 좋은 경험이다.
교육학박사 임은정의 2021. 06. 10. 교육이야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