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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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첫눈이 왔다. 어린이들이 눈을 뭉치고 놀 수 있을 만큼 많이 와주어서 다행이었다. 몇 년간 겨울답게 눈이 오지 않아서 눈썰매와 얼음썰매를 탈 수 없었고, 작년에는 눈을 만지고 놀 수도 없을 만큼 적은 양의 눈이 와서 안타까웠다. 교통은 걱정스럽지만 소담스럽게 내려준 눈이 고마웠다. 오늘 준비된 숲 놀이는 전면 중단되고 눈으로 신나게 놀이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그러고 생각해보니 봄 반 유아들은 눈을 가지고 놀아본 경험이 거의 없을 것 같아서 관찰일지를 더 주의 깊게 보았다.

A : 선생님 눈이 진짜 예뻐요. 하얗고 차가워요. 아침에 눈이 와서 그런가 봐요.

이거 어떻게 해요? (눈을 만지면서)

유아들이 아뜰리에에 만들어둔 눈사람을 B가 발견한다.

B : 선생님, 이건 누가 만든 거예요?

교사 : 다른 반 친구들이 만들었어요.

B : 그럼 우리 반도 만들어요!

C가 눈을 더 붙여서 더 크게 눈덩이를 만든다.

C : 와하하!! 눈이 진짜 커졌어!! 와! 선생님! 이거 보세요!

눈덩이가 C의 머리 2배 정도가 되어있다.

교사 : 순식간에 정말 커졌어요!!

위에 예시를 들은 A,B,C는 모두 봄반의 사례이다. 이 관찰기록에서 놀이의 형성요소를 몇 가지 들여다 볼 수 있다. 첫째, 놀이는 자신이 관심을 기울일 수 있는 대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A가 눈이 내린 산의 모습을 보면서 감탄을 하는 것처럼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늘 눈 내린 산처럼 감동스러운 장면만 있을 수는 없기 때문에 유아들이 관심을 기울일 수 있도록 가까이 발견할 수 있는 주제와 핵심어가 필요하다. 둘째, 놀이의 시작은 용기가 필요하고, 적절한 자극과 도움이 있을 때 빠르게 발전된다. A가 감동을 했지만 어떻게 놀아야 할지 모르는 장면과 B가 다른 반 눈덩이를 흉내 내려는 장면에서 놀이의 창조와 창의성도 안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놀이를 더 풍성하게 하기 위해서 교사들이 이런저런 활동을 함께하고 발전하도록 돕는 것이 필요한 이유이다. 셋째, 놀이는 자신이 직접 해야 한다는 것이다. 누군가 많은 부분을 대신 해주거나, 도와주거나, 준비해주는 놀이는 놀이로서의 가치가 없어진다. 오히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생각으로 자존감이 낮아질 수 있다. 눈덩이가 커지는 모습에 스스로 신나하는 C를 누군가 도와주거나 간섭했다면 신나는 놀이가 아니었을 것이다.

평소 비가 오거나, 기상이 좋지 않은 날을 선호하지 않으며 옷이 더러워지는 것을 싫어하는 어린이였으나, 금일 눈이 오는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즐겁게 참여하는 모습을 보였다.

위의 사례는 여름반의 기록이다. 눈이 오는 날 잘 놀았다니 다행스럽지만 평소에는 자유롭게 놀지 못한다는 교사의 기록을 보면서 여름학년에 입학을 하는 유아들의 많은 경우가 그렇다는 사실을 다시 상기하게 되었다. 그 원인이 무엇인지 고민을 했었다. 1년의 차이인데 왜 그리 발달 성향이 달라지는 것인지 근거를 찾아보았다. 36개월에 그 비밀이 있었다. 36개월 전후해서 발달의 성향이 많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주입식교육, 경쟁하는 교육(예쁜 물건을 자랑하려는 마음도 경쟁심을 자극하는 것임)에 노출되었던 유아들이 건강한 발달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던 것이다.

본격적인 학습과 놀이성의 발현은 36개월 전후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ISCED (International Standard Classification of Education : UNESCO)를 비롯한 각 국가의 교육 분류가 36개월을 기점으로 하고 있다. 대한민국도 유치원 입학연령이 36개월을 기준으로 한 것은 세계적인 추세와 이론에 근거한 것이다. 너무 어린 것 같아서, 혹은 적응을 못 할까봐, 아직은 숲에서 노는 것이 어려울까봐 봄반에 입학을 하지 않고 여름반에 입학을 하는 유아들의 발달에서 안타까운 점들이 눈에 보인다. 그래도 자유로운 놀이성을 키우고 학습동기를 고취해가는 경험을 전혀 하지 못하는 유아들보다는 다행스럽다. 위의 여름반 유아처럼 조금 돌아 가야하고 시간은 더 걸리지만 유아들의 건강한 특성을 되찾아 갈 수 있다면 건강한 교육권리를 찾는 것이다.

교육학박사 임은정의 2022. 12. 06 교육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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