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발달 활동 전 어린이들이 지칠 때까지 오래달리기를 해보았다. 수찬이는 마지막까지 달리며 성실하게 지구력을 보여주었다. 한번 지쳐서 앉으면 끝나는 규칙인데, 000, ***, $$$, &&&이 교사의 눈치를 보며 쉬었다 뛰기를 반복하려 하여 주의를 주었다.
전에 소개했던 이 일화 속에 내 자녀가 있다면 누구이기를 바라는가?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속담에 모두 동의하는가? 수찬이는 거의 모든 영역에 끈기가 있고, 규칙 지키기가 잘 되는 어린이다. 그렇다면 규칙 지키기가 잘 되지 않는 몇몇 유아들은 앞으로도 계속 그런 성향으로 자라는 것일까? 기질을 모두 극복할 수 있다는 교만한 생각은 이제 설득력이 없다. 유전자에 대한 과학적 근거들이 증명되어서 유전자를 무시할 수 없다. 그렇다고 타고난 유전자대로 살아야 한다면 교육, 환경 등은 무용지물이 된다.
이 대화를 통해서 가정에서도 유아들의 자발성과 메타인지를 높일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전략을 생각해 보면 좋겠다. 인정이는 처음 자신이 노래에 맞추어서 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고 어떻게 도전해야 할지 스스로 정했다. “선생님 저는 잘 못해서 숫자로 해주세요.” 이 제안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를 인지하고 단계별로 도전하는 메타인지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못하니까 안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부터 차근차근 시작하도록 용기 내는 모습이다. 이런 자세는 여유 있는 환경과 기다림이 있어야 가능하다. 만약 같은 능력을 요구하고 같은 목표를 달성하도록 한다면 이런 계획이나 도전은 불가능하다. 같은 교과서, 같은 시험에 노출되지 않은 여유로운 환경이 이어져야 발전 가능성이 커지는 이유이다. 교사가 “인정아, 그럼 처음에는 숫자로 세다가 어느 정도 넘으면 선생님이 노래로 바꿔서 불러줄까요?” 할 수 있는 것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이다. 성공의 기쁨을 알게 된 후 인정이는 재도전하고 흥미를 갖게 되었다.
나무의 떡잎을 잘 가꾸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라는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큰 나무에 떡잎 시절이 있었다는 것은 너무 오래전 일이어서 기억조차 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큰 나무도 떡잎에서 시작했다. 유아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이시기에 적절한 대처를 해주면 훨씬 좋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위의 몇몇 어린이들이 규칙 지키기가 안 된다는 것을 알았으니 규칙의 중요성을 깨닫고 지킬 수 있는 습관을 기르도록 도와야 한다. 만족지연능력을 기르기 위해서 끈기 있게 수행하고 뿌듯함을 느끼는 경험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 는 속담이 기질을 강조한 것이라면 ‘세 살 버릇 여든 간다.’ 는 속담은 환경과 습관의 중요성을 강조한 속담이다. 유아기의 중요성을 선조들도 경험적으로 안 것이다.
창의성은 무조건 자유분방하고 혼란스러움 속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이제까지의 연구와 사례를 보면 안정된 상황에서 사고할 기회가 많을 때 창의성이 발휘된다. 발도로프교육의 창시자인 루돌프 슈타이너는 시간의 질서와 공간의 질서를 강조했다. 필자는 슈타이너의 생각에 무조건 공감하는 것은 아니지만, 시간과 공간의 질서는 내가 가장 공감하는 주장이다. 불안하고 흔들리는 환경에서는 창의성이 생기기 어렵다. 슈타이너도 이것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발도로프 교육은 물건을 제자리에 두는 공간의 질서, 시간의 흐름을 지키는 시간의 질서를 강조한다. 갑자기 좋은 생각이 나서 무엇인가 하고자 할 때 바로 찾을 수 있는 곳에 사용하고자 하는 도구가 없다면 금방 흥미를 잃게 된다고 설명한다. 시간의 질서는 일상이 일정한 시간의 흐름에 맞추어질 때 안정감이 있다는 것이다.
될성부른 나무의 떡잎을 더 튼튼하게 만들어 주는 방법은 시공간의 질서와 안정감을 주는 것이다. 그리고 작은 습관이 큰 힘을 가질 수 있도록 규칙적인 습관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큰 힘을 발휘하게 되는 규칙적인 습관은 일정한 시간에 책을 읽는 것, 일정한 시간에 잠을 자는 것, 일정한 시간에 일어나는 것, 적당한 양을 일정한 시간에 먹는 것, 건강에 도움이 될 음식을 먹는 것,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스스로 정하고 실행하는 것이다. 이런 기본적인 질서가 잡힌 이후에 더 보완할 것을 찾아내고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다. 규칙 지키기와 만족지연이 되어야 이 모든 것이 가능하다.
지금의 작은 습관이 나중에 열매로 맺어진다는 믿음으로 큰 나무가 될 때까지 일관된 환경을 제공해 주어야 한다. 반면 부정적인 습관이 쌓이면 더 크게 틀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편식을 계속 허용 한다면 친구들이나 부모님과 같이 식사를 하는 시기는 점점 늦어진다. 언젠가는 그렇게 된다고 해도 이미 발달단계가 식습관으로 인해서 늦어지는 것이다. 친구나 성인들과의 식사에서 열외 되면 전체적으로 소속감이 저하된다. 발달단계에 맞는 자아정체성에 혼란이 오고 자타 모두 어리게 평가하게 된다. 식습관이 편향되면서 다른 발달들도 편향되어 협력과 이해가 어려워질 수 있다.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던 나쁜 습관 하나가 큰 나무의 방해요인이 되지 않도록 유아들을 지켜주어야 한다. 작지만 좋은 습관이 열매를 맺도록 자라나는 떡잎들에게 가장 가까운 성인들이 건강한 환경을 제공하는 숲이 되어야 한다.
교육학박사 임은정의 2022. 09. 16 교육이야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