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을 멀리하고, 불편함을 배움으로 바꾸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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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인터넷 환경을 가진 나라이다. 그런데 이 편리함이 어린이들을 책에서 멀어지게 하고 사고력과 상상력을 제한하는 부작용을 낳는다. 그래서 한국은 반드시 디지털 리터러시를 최우선으로 삼아야 하는 나라가 아니다. 더 중요한 건 디지털을 멀리하고 자연을 가까이 두는 교육이다.

석성숲유치원은 교사가 스마트 칠판이나 스마트 TV를 수업 보조용으로만 쓰고, 유아에게는 개별 디지털 기기를 주지 않는다. 대신 숲과 들판, 바람과 흙이 교실이 된다. 어린이들은 나뭇가지 하나, 풀잎 하나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우고, 계절이 바뀌는 흐름을 온몸으로 겪으며 언어와 과학, 예술을 통합적으로 경험한다. 준비물도 일부러 조금 모자라게 마련한다. 풀을 사용할 때 모든 어린이가 하나씩 가져다가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나누고 공용물품도 아낄 수 있는 마음을 기르는 것이다. 풍족 대신, 차례를 기다리고 함께 나누는 과정이 생긴다. 그 과정에서 유아들은 양보하고 협력하며 갈등을 해결한다. 불편함과 부족함이 오히려 창의성과 관계 맺기의 자극제가 된다. 수업 방식이 유아들이 자연 속에서 배우고 서로 소통하며 성장하는 경험은 IB 학습자상이 지향하는 모습과도 맞닿아 있다. 배려하는 사람(Caring), 의사소통하는 사람(Communicators), 그리고 사고하는 사람(Thinkers)과 같은 가치가 바로 이러한 과정 속에서 길러지는 것이다. 다시 말해, 교사와 유아가 함께 만들어가는 일상의 수업 경험이 곧 학습자상을 형성하는 중요한 기반이 된다.

편리함이 줄어들면 관찰과 상상이 늘어나고, 도구가 줄어들면 협상과 대화가 커진다. 자연을 가까이하고 불편함을 견디며 서로를 배려하는 경험이 쌓일수록 어린이의 집중력과 주도성이 자란다. 교육의 본질은 화려한 기술이 아니라 실제 세상에 대한 밀도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선생님들도 정해진 교육과정과 교과서에 맞춰 배우고 암기하는 교육을 받아왔기 때문에, 유아들의 수업 역시 교사가 미리 준비하고 보여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는 데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자연을 세심하게 관찰하면서, 오늘 만난 자연의 사물을 어떻게 활용해 수업할 수 있을지 알게 되면 교사의 생각도 달라진다. 유아들이 훨씬 즐겁게 참여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수업 준비도 점점 자연스러워진다. 이 과정에서 교사들의 수업관은 ‘자연과 함께, 일상과 함께’라는 유아 중심적 발상으로 바뀌고, 그렇게 했을 때 유아들이 더 많이 배우고 성장한다는 확신을 얻게 된다. 그때부터는 교사들도 자신감을 가지고 더욱 정교하고 즐거운 수업을 펼칠 수 있게 된다.

교육학박사 임은정의 2025. 09. 04. 교육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