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난 재능과 기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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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팬데믹의 후유증은 교육계에 숙제를 남겼다. 학교가 없던 시절에도 인류는 존재했지만, 현재의 인류에게 학교와 학습 능력은 삶의 질을 결정짓는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코로나19로 인한 학습결손을 긴장의 눈으로 볼 수밖에 없다. 독일의 2022년 STEP(Studie über die Entwicklung, Probleme und Interventionen zum Thema Handschreiben) 설문조사의 결과 교사의 70% 이상이 팬데믹 기간에 원격수업이 이루어진 후 학생들의 글쓰기 구조, 가독성, 쓰기 속도에 문제가 확연히 많아졌다고 보고하였다(2022.5.31.). 특히 학생들의 손글씨 쓰기가 경미 하게 혹은 심각하게 악화되었다고 교사의 4명 중 3명이 지적하였다. 응답 교사의 56%가 이전에 이미 손글씨 쓰기에 어려움을 겪던 학생들의 문제가 더 심각해졌음을 확인하였고, 25%는 이전에 손글씨 쓰기에 문제가 없던 학생들조차도 부정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확인하였다.

교원 위원 디아즈 메이어(Diaz Meyer)는 “빠르고 일정한 속도로 손글씨를 쓸 수 없는 학생은 수업을 제대로 따라가기 힘들고 학업 성과가 뒤처지는 경우가 많다.”라고 하였고 베크만은 “이러한 문제를 겪는 학생들을 지원해야 한다. 손으로 글씨를 쓰는 것은 학습의 전 과정에 영향을 끼친다. 디지털 미디어의 사용이 늘고 있지만, 교사들은 학습 과정에서 손으로 글씨를 쓰는 펜과 종이의 장점을 미디어 기술이 대체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여전히 펜과 종이는 초, 중등 교사의 98%가 선호하는 학습 매체이다.”라고 설명하였다.

나는 이 소식을 접하고 독일의 교사들이 많은 학습결손 중 손으로 글쓰기가 현저히 저하된 것을 특히 우려한 이유가 무엇인지 함께 생각해 보려 한다. 손으로 글 쓰는 것이 걱정해야 할 만큼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부모님들도 있을 것이다. 이제는 영어사전이나 국어사전을 사용하기보다 간단하게 검색을 하는 것이 빨라진 시대이다. 하지만 뇌의 기능이 성장과 발전을 하고 있는 시기의 어린이들에게는 사전이 오히려 빠르고 효과적인 학습방법이다. 더 느리고 복잡하게 순서까지 생각하면서 사전을 찾는 것은 완전 학습을 하는 기회를 준다. 내가 필요한 단어를 찾아가면서 사고하는 기회를 갖는다. 공부는 빠른 것이 효율적인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사고와 지식에 도움이 되는 과정으로, 당장은 느려보여도 오히려 깊이 있게 생각하고 지식을 자신의 것으로 체화하는 효율적인 공부법이다. 같은 맥락으로 자신의 생각을 손으로 써서 표현하는 과정이 사고의 흐름을 익히기에 유리하다. 더불어 공부를 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필기를 해야 할 일이 많이 생기는데, 쓰는 것이 자유롭지 않고 부담이 되면 학습과정에 방해 요인이 된다. 이렇게 기초적인 것이 중요한 이유를 독일 교사들의 걱정을 통해서 함께 공감하고 느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우리나라는 엘리트 스포츠로 일찍부터 학업을 등한시하고 운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한 사람의 행복과 발전을 방해하는 것이라는 학계의 연구와 사회적 지적이 꾸준히 나오고 있지만, 여전히 하나에 집중하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관습이다. 그러나 지속가능한 한 사람으로 성장하려면 성장과 발달이 멈추기 전까지는 기본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어린 시기부터 한 분야에 뛰어난 역량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정보의 공유가 제한적일 때에는 매우 한정적으로 신동 혹은 천재를 볼 수 있었지만, 지금은 공유되는 정보로 인해서 무엇인가를 잘하는 사람들을 더 많이 접하게 된다. 나에게만 뛰어난 소질이 없고 뒤처지는 듯이 느끼게 되는 경우도 많아진 듯하다. 자녀의 성공적인 미래를 위해서 하나의 기능을 일찍 시작할수록 효과적이라고 생각하는 부모들이 많은 것도 우리나라와 근접한 3국의 독특한 문화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연구 결과나 사례를 정확하게 들여다보면 무언가를 일찍 시작하는 것이 성공과 연결되지 않는다. 하나의 직업이나 하나의 재능으로 인생의 끝자락까지 살아갈 수 있을지도 불분명한 이 시대에 개인도 지속 가능한 역량을 기르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정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튀어나오게 된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과연 세계 인구에 몇 %나 될 것인지 생각해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걸어가야 할 목표가 보인다. 기초를 다져야 하는 어린이들에게 전문적인 기술을 가르치는 부모님의 논리는 “그래도 이것저것 시켜봐야 그중에 잘하는 것을 찾을 수 있지요.” 언뜻 들으면 그럴싸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역량을 키워야 하는 소중한 시간을 얕은 기술 익히기에 사용하면 기초가 흔들리게 되므로 지속가능한 사람으로 키워질 수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가진 역량을 최대로 발휘할 수 있도록 기초를 튼튼하게 다진 후, 각자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에 시간과 힘을 쏟아야 한다. 유아기와 아동기는 신체의 능력을 골고루 키우는 것에 집중하여 운동능력을 만들고, 손에 힘을 길러서 펜 잡기에 익숙해지며, 뇌 사용하기를 즐기는 성향을 기르는 등 몸도 마음도 기초체력 기르기에 집중해야 하는 시기이다.

이번 주에 상담을 하신 부모님들을 통해서 ‘잘해줘야 하는데, 내가 놀아줘야 하는데, 무엇을 해주어야 할까?’라는 강한 의무감은 오히려 유아들의 발달을 방해하고 있음을 느꼈다. 자녀에게 바람직한 일이라면 지키도록 요구해야 한다. 부모님이 당당하고 당연하게 요구할 때 훨씬 받아들이기 쉬워진다. 그리고 부모님이 먼저 다 챙겨주지 않아야 스스로 놀이도 계획하고, 유치원 늦을까 봐 걱정도 하고, 실수하는 경험도 하면서 발달이 촉진되고 자존감을 가질 수 있다. 오늘 이야기는 봄, 여름, 가을반에 모두 적용되는 내용이다.

교육학박사 임은정의 2022. 06. 16 교육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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