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해와 글씨 (오 개념 돌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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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유아들에게 타인이 정한 교육과정이나 교재를 사용하는 것은 노동이라는 설명을 하였었다. 유아는 자신과 가장 가까운 것에서 흥미를 느끼고 자신의 발달에 맞추어 학습해야 한다. 발달학적으로 유아의 기준은 생후 8년 전후이므로 초등 2학년 전후이다. 따라서 초등 2학년까지의 문해교육(글자읽기가 아니라 이해하기까지)도 그들이 관심을 끌 수 있는 소재와 주제여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음 A, B 두 가지 방법 중 유아들에게 효과적인 글자 익히기는 무엇일지 잠시 생각하고 다음을 읽어 내려가면 좋겠다.

A: “가방”, “나비”와 같이 체계적으로 보이는 가나다순의 글자 익히기.

B: 부모님, 교사, 친구들의 이름 맞추고 같은 글자 찾아보기.

36개월 이전에는 단체생활을 하더라도 또래보다는 성인의 영향을 많이 받으며 그것이 발달에 더 도움이 된다. 하지만 36개월이 지나 봄 반에 입학하면 교사와 더불어 친구들을 좋아하는 발달단계를 맺는다. 그래서 석성숲유치원은 처음에 친구들의 이름으로 글자와 도형의 관계, 글자의 의미를 익힌다. 그래서 입학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석성숲유치원 이름표에는 사진이 없어진다. 위치로 익히든 글씨를 그림처럼 익히든 친구들의 이름을 익히면서 글자의 필요성과 의미를 느낀다. 그 이후에는 대부분 하루에 1~2분씩 하는 핵심어와 관련된(유아들과 교사가 함께 가장 관심을 가지고 대화를 하는) 문해 활동으로 한글을 알게 된다.

언어는 유아기뿐만 아니라 그 이후에도 맥락에 따라서 익혀야 한다. 이는 교육학, 철학, 심리학, 언어학 등의 분야에서 수없이 많은 연구들이 증명했다. 더불어 작년에 뇌 과학 분야에서 자연과학 사이언스에 ‘언어는 기계음을 통해서 배우는 것은 한계가 있으며, 맥락과 상호작용이 있을 때 제대로 발달한다.’는 연구가 발표되었다. 이 연구결과에 따르면 결국 외국어나 글을 알게 하려고 영상을 틀어주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려준다. 가끔 그렇게 해서 외국어를 익혔다고 나오는 사례는 그 외의 어떤 환경이 작용을 했거나 천부적인 언어능력을 가진 극히 일부이다. 그래서 절대 일반화하여 따라 하면 안 된다. 그런 사례가 소개되는 것은 논리적이지 못한 부모를 가진 유아들을 힘들게 만들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이므로 방송사의 책임감도 요구된다. 알면서도 전문가를 내세워서 극히 소수의 상황을 일반화하여 수익을 올리는 방송사인데 그런 기대를 하는 것도 무리지만.

올해 가와시마 도호쿠대 교수는 ‘커뮤니케이션 바이올로지’(2021년 4월 30일)에 가정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언어능력 발달에 매우 밀접한 관계를 보이며 어릴수록 더 크게 작용함”을 발표했다. 이 연구결과들은 앞서 말한 내용처럼 언어능력이 발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양육자의 중요성을 다시 확인시켰다. 유아기는 언어 뿐만아니라 거의 모든 발달이 가정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큰 영향을 받는다. 교육기관의 선택, 교육방법의 선택도 부모의 역량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학문적으로나 경험적으로 명확한 근거를 모두 거부하고 자녀의 미래에 도움이 되지 않는 노동을 시키는 것도 부모의 역량이다. 앞서 제시한 A 사례를 선택하였다면 상업화된 책자가 체계적이며 효과적일 것이라는 착각과 낙후된 교수방법에서 벗어나지 못한 확증편향이다.

석성숲유치원 유아들이 또박또박 읽고 싶은 동기를 일으킬만한 소재가 무엇일지 고민하다가 식단 방송을 선택했다. 그러면서 봄 반부터 ‘나도 가을반이 되면 방송해야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실제로 그런 놀이를 한다. 글자도 도형이므로 도형 변별력이 생겨야 한다. 문해활동에 전혀 관심이 없거나 글자를 거부하는 유아들이 한두 명 있는데 백발백중 어릴 때 학습지를 했거나 글자 암기를 강요받는 경우이다. 이렇게 강요하거나 학습지를 시키지 않던 부모님들도 유아들이 글자에 관심을 두기 시작하면 종종 실수를 한다. 학습지가 아니더라도 가방, 나비가 쓰여 있는 책을 들이밀거나 책을 스스로 읽으라고 해서 흥미를 떨어뜨리기도 한다.

글자를 궁금해 하기 시작하면 관심 있는 글자를 스스로 찾도록 하고 함께 관심을 기울여 주면 도움이 된다. 간판 등에서 친구 이름에 들어있는 글자 찾기, 아는 글자 찾기 등을 하거나, 우리 집에서 보이는 글자 중에 아는 글자 찾기를 할 수 있다. 책을 육성으로 많이 읽어주면서 함께 책의 내용에 빠져보는 것이 글자 읽기와 함께 문해력을 키우는 방법이다. 석성숲유치원 졸업생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 결석이 많지 않으면 대부분 졸업전에 글자와 함께 뜻까지 이해하는 문해력을 갖도록 하는 것이 목표이다. 앵무새처럼 글자를 읽지만, 어휘력이 없어서 전체적인 문맥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언어발달이나 학습발달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메타인지를 방해하는 글자암기일 뿐이다.

교육학박사 임은정의 2021. 11. 09. 교육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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