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숲 학생들의 생활과 학습 과정을 지켜보면서 유아들에게 필요한 교육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고 연구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우리나라 대다수의 부모님들이 가지고 있는 오 개념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 학부모들의 안타까운 오 개념 중 유아기와 학령초기에 대한 몇 가지 불합리함을 생각해 보려한다.
“①저학년 때 예체능과 영어를 시켜야 해. ②수영이 필수 과목이니 저학년에 시켜야해. ③코딩도 교과목에 있으니 미리 시켜야 해. ④수학은 계산을 빨리하게 반복 연습을 시켜야 해. ⑤학교에서 제일 큰 문제는 공부 못 따라가는 거야.”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내가 모르는 과학적 근거가 있을까 싶어서 왜 그래야 하냐고 진심으로 물어보곤 한다. 어떤 근거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시원하게 답해주는 사람을 만나지는 못했다. 대부분 “그렇다던데~~”라고 말꼬리를 흐린다. 어떤 논리도 없이 동네 아주머니나 학습지, 학원에서 만들어낸 말을 믿는 것이다. 혹은 공부 혹은 특기를 일찍 주입해서 성공했다거나 일찍 시키지 않아서 못 한 것이라고 자신의 양육경험을 일반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양육의 결과는 일찍 시켜서 성공할 확률은 희박하며 다른 요인이 작용했을 확률이 더 높다.
위의 오 개념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시키다’는 가장 비과학적이다. 학습자의 능동성과 의욕이 성공여부에 가장 큰 변인인데 ‘시키면’일찌감치 수동적이고, 의욕 없는 사람을 만드는 것이다. 의욕이 저하된 유아의 부모님들에게 물어보면 대부분 무엇인가 시키기 시작한 것이 틀림없다. 혹은 “별로 시키는 것은 없고 저녁에 저랑 공부 좀 해요.”라고 한다. “00이가 혼자 하는 것인가요? 아니면 부모님이 먼저 하자고 하나요?”라고 질문을 하면 “제가 먼저 하자고 하지만 곧 잘하고 재밌어 해요.”라고 한다. 이미 주도권은 부모님이 쥐고 시키는 것이다. 주도적인 성향을 키울 기회를 주지 않고 막상 학령기에 수동적이고 의욕이 없는 모습을 보이면 “왜 자기주도 학습을 못 하냐”고 아이의 책임인양 다그치게 될 것이다.
다음 오류는 ‘저학년에 미리’이다. 미리 한다는 것은 스스로 의욕이 생겨서 하는 것이 아니라 끌어가야하기 때문에 주입식 방법을 쓸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막상 시작해야 하는 시기에 이미 지치고 포기하는 교육이 되는 것이다. “그러다 끝까지 관심이 없으면 어쩌죠?”라고 반문할 것이다. 기다리는데 안하는 분야를 미리 시켰다면 성공적이었을까? 놀라운 재능을 누구나 갖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이 끈기 있게 할 수 있는 정도로 좋아하면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일찍부터 시키면 수동적으로 따라오다가 한계에 부딪히고 그 분야 외의 다른 좋은 기회마저 잃을 수도 있다.
이제 보통교육의 과목 때문에 일어나는 오 개념을 따져보자. 수영이 교과서에 등장하고 붐이 일었다. 세월호 이후 생존을 위해 협동하여 떠 있기를 교과에 넣은 부작용인데 유아기에 물에 대한 두려움이 생기지 않도록 놀 수 있는 재밌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수영기술에 급급하면 수영은 놀이 시간을 방해하는 노동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 유아들에게 가장 많이 시키는 운동은 수영, 축구, 태권도인 것 같다. 대부분 “아이가 좋아해서 시키는 거예요.”라고 한다. 그나마 운동이니 덜 힘들어 할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선택하고 놀이하는 것 보다 시키는 일을 좋아한다면 이미 수동적인 태도를 가졌다는 증거이다. 코딩이 초등교과서에 조금 나오자 붐이 일었다. 프로그래머로 만들기 위해서 코딩교육을 하는 것이 아니고 논리적 사고가 중요하기 때문에 유아기나 학령 초기에 자신의 놀이를 스스로 기획하면서 실패와 성공을 경험하는 것이 효과적인 코딩교육이다.
수학의 최종목표가 큰 수의 연산을 빠르게 하는 것이라면 빨리 계산하기가 중요하지만 고등수학이 목표하면 빠른 계산은 중요하지 않다. 우리나라는 시대에 역행해서 수학연산에 집중하는데 오히려 수학을 포기하는 연령(초등 3학년부터)은 빨라진다. 한 문제를 ‘빠르게’가 아니라 여러 가지 논리로 생각하고 풀 수 있어야 수학을 잘 할 수 있다. 여러 번 이야기한 적이 있지만, 학령기에 적응한다는 것은 의욕과 절제의 조화이다. 공부가 문제라면 그 근본 원인은 의욕이 없거나 규칙을 못 지키기 때문이니 공부보다 의욕과 절제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내 아이가 시키는 것을 좋아한다면 오히려 “시키지”는 않아야 하며,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참고 지켜보아야 발전한다. 정상발달 유아와 아동은 이론과 논리에 근거한 확실한 이유가 있는 교육방향을 찾아야 한다. 발달의 속도는 빠르다가 느려질 수도 있고 느리다 빨라질 수도 있지만 순서는 정해져 있다. 교육의 주체인 학습자가 발달단계를 순서대로 차근차근 찾아가면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누군가가 밖에서 조정하면 안 되고 스스로 하도록 제시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지금까지의 이성, 과학, 휴머니즘의 발전이 반영된 학습자 중심의 사고이다. 부디 부모님의 이성, 과학, 아동중심의 사상이 늘 깨어있기를 바란다.
교육학박사 임은정의 2021. 12. 08. 교육이야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