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 눈이 천천히 많이 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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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이 왔던 날에 썼던 글이 생각나서 찾아보았다. 2022년 12월 6일이었다. 눈이 예쁘다고 느끼지만 어떻게 놀아야 할지 몰라서 물었던 유아도 있었다.

A : 선생님 눈이 진짜 예뻐요. 하얗고 차가워요. 아침에 눈이 와서 그런가 봐요.

이거 어떻게 해요? (눈을 만지면서)

C : 와하하!! 눈이 진짜 커졌어!! 와! 선생님! 이거 보세요!

2022년 12월 6일 교육이야기

그런데 이 유아들이 이번에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불과 2달도 안 되었지만 유아들이 달라졌다. 이 사례를 읽으며 유아들은 역시 몸으로 익혀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아침 인사 시간에 길동이가 창밖에 내리는 눈을 본다.

길동이: 선생님! 밖에 눈이 천천히 많이 내려요!

교사: 그러네요. 숲에 눈이 많이 쌓였겠네요.

길동이: 빨리 밖에 나가서 눈놀이 하고 싶어요!

교사: 밖에 나가서 재밌게 놀아요!

길동이: 네! 눈사람도 만들고 눈싸움도 하고 놀 거예요!

2023년 1월 26일 교육이야기

몸을 움직인 경험이 축적되었기에 놀고 싶다는 생각도 할 수 있고 계획도 하게 된 것이다. 눈이 오는 날 유치원의 산은 정말 아름답다. 창밖으로 보이는 눈 내리는 산을 보면서 빨리 나가고 싶어 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반응이다. 건강하고 원만한 발달을 하는 유아들은 점점 기발한 방법을 생각해내고 재밌게 놀이한다. 그러면서 차근차근 활동의 폭을 넓혀가기 때문에 다치지 않고 놀이할 수도 있다.

“절대 다치지 않고 놀이하기,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놀이하기, 선생님이 보이는 곳에서 놀이하기” 이것이 우리 유아들의 숲 놀이 구호이다. 어찌 보면 말도 안 되는 구호일 수도 있다. 다치고 싶어서 다치는 사람은 없을 텐데 다치지 않고 놀이하자는 것은 이상하고 비논리적이다. 그러나 다치지 않기 위해선 그 뒤의 두 가지 약속을 잘 지키면 된다. 친구가 한다고 무작정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신체 능력을 알고 무리하게 도전하지 않아야 한다. 교사의 시선 안에 있어야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그래서 매일 구호를 외치는 것이다. 이 놀이 규칙에도 발달에 대한 지극히 당연하지만, 실천이 어려운 철학이 담겨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과 경쟁하는 것은 불필요한 일임을 강조하고 있다. 과시하거나 자랑하고 싶어서 과한 도전을 하는 것은 신체적 안전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안정에도 부작용만 남길 뿐이다. 그리고 아동 권리는 성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고 받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게 해주고 싶다.

아가들이 걸음마를 할 때 넘어져도 다치지 않는 것은 그때의 체중으로 걸음마를 배워야 하는 적기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하나씩 경험이 쌓이면서 유아들은 성장해간다. 어떤 단계도 그냥 뛰어넘을 수 있는 발달은 없다. 급한 마음에 빠르게 뛰어넘으려고 하면 아무것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 “우리 애는 기지도 않고 걸었어요.” 혹은 “우리 애는 걷지 않으려 해서 유모차를 태워서 다녀요.”라는 경우라면 성장 후 반드시 결손이 생긴다. 가능한 한 빨리 몸으로 모든 단계를 거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코로나 팬데믹은 여러 분야에 연구 거리를 남겼지만 유아 연구는 신체 발달이 눈에 띄게 늘었다. 유아기 신체 발달은 모든 발달의 기초라는 것이 필자를 비롯한 많은 연구자의 원칙이기 때문이다. 성인들은 신체 발달이 사회성이나 인지발달을 이끈다는 사실에 공감하기 힘들다. 성인들은 유전과 환경적 영향으로 이미 결정된 성향을 보이고 있으며 신체 능력과 인지, 사회성은 이미 분화되어 있다. 성인은 유아기의 기억이 거의 없고, 있다 하더라도 강하게 각인된 단편적인 기억일 뿐이다. 유아기의 발달이 지금의 나를 형성했다고 생각하는 성인이 있다면 분명 자신에 대한 성찰, 혹은 유아기에 대한 지식이 있는 경우 일 것이다. 유아에게 성인이 학습하듯이 지식을 주입하면 인지가 올라가고, 부모들이 친구까지 만들어 주어야 한다는 조기교육에 대한 오 개념이 생기는 것은 부모들이 유아기 특성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름답게 눈 내리는 창밖을 감상하며 몸을 움직여 놀이하는 계획을 하는 유아가 건강한 유아이며, 이런 유아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유전자를 최대한 발휘하여 인지발달을 할 것이다. 사회관계, 언어, 인지발달 모두 세포가 세분되는 성장의 과정이다. 성장 발달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신체 발달이 원만하지 않다면 전인적인 발달을 기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눈 내리는 산속에서 유아들이 노는 모습을 통해서 신체 발달의 중요성을 생각했고 많은 성인에게 알리고 싶었다.

교육학박사 임은정의 2023. 01. 28 교육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