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육아정책연구소의 연구보고서에 기반하여 내 생각을 정리한 것이다. 유아들의 사교육은 지속적으로 증가한다는 연구결과에 공감한다. 부모의 소득이 높을수록, 학력이 높을수록 더 많이, 더 고비용의 사교육을 한다는 것도 현상적으로 보인다. 현상을 보는 눈은 정확하지만, 제언은 눈앞의 문제만 건드렸다. 국가 수준 교육과정과 진도 중심의 획일화된 구조,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문제의 본질이다.
초등학교 저학년은 배우는 내용이 ‘공부는 그냥 노는 것’이라는 인식만 심어줄 뿐, 지적 도전의 즐거움은 찾아보기 어렵다. 정책은 착각하고 있다. 교육과정을 쉽게 만들어서 학생들의 부담을 경감 하고자 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럴수록 사교육은 더 하게 된다. 배우는 것도 없으니 따로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그렇다고 교육과정을 무턱대고 어렵게 만들자는 건 아니다. 학생마다 도전의 크기와 방향은 다르다. 학년별로 줄 세우고 진도에 맞추는 게 아니라, 자기가 하고 싶은 만큼 해나가며 만족감을 느끼는 구조라면, 굳이 사교육이 필요하지 않으며 예측할 수 없기에 사교육을 할 수도 없다.
여기서 중요한 건 ‘공교육의 의미’에 대한 재정의다. 공교육은 ‘모든 학생이 같은 교육을 받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교육의 비용과 안전을 책임지는 것’ 이어야 한다. 그렇게 사고를 전환하면 지금의 국가 재원으로도 충분히 다양한 교육을 제공할 수 있다. 문제는 구조이고, 그 구조에 반발하여 공교육을 벗어나려는 학부모들도 많아지고 있다. 덴마크처럼 공교육 체계가 안정된 나라에서도 30% 가정이 자발적으로 공교육을 이탈하고 있는데 이들의 교육도 국가가 지원한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큰 시사점을 준다. IB 교육에 도전한 석성숲유치원은 이 나라의 한계를 또 느꼈다.
IB 교육은 자기 문화를 사랑하고, 다른 문화를 수용할 줄 아는 사람을 키우자는 것이 학습자 상에 제시되어 있다. 정작 이 나라에서 처음 PYP 유치원을 하는 석성숲유치원은 모든 자료를 영어로 바꾸어서 제출하도록 요구받았다. “일본은 모국어로 운영하는데, 우리는 왜 안되는가? 다양성을 존중한다고 하면서 한국의 다양성은 받아들이지 않는 태도는 문화수용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된다”고 항의하였다. 대한민국은 처음이라서 그렇다고 답변이 왔다. 전제주의의 표본이며 우리 교육의 기틀을 만든 일본보다 더 교육의 다양성이 뒤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달라도 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그리고 그 다양한 교육이 국가의 책임 아래 안전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체계를 바꾸는 것. 그렇게만 된다면, 공교육이냐 사교육이냐를 묻는 질문 자체가 사라질 것이다. 육아정책연구소의 제언은 정말 한계를 느끼게 된다. 영유아 중심 프로그램 개발, 흥미·적성 기반의 공공 프로그램 제공, 지역 격차 완화, 부모 대상 교육 등 다양한 항목들이 나열되어 있다. 유아교육에서 주입식 방식은 우리나라만 하는 나쁜 관행이라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가정에서 부담하는 사교육을 공교육에서 지원하자는 식의 사교육 찬양 일색이다.
‘흥미·적성 중심 프로그램 개발’. 이는 오히려 유아들이 특기 교육을 하는 것이 좋은 것처럼 느끼도록 만들어서 사교육을 부추기는 제언이다. 이런 생각을 정책이라고 내세우면, “내 아이는 더 비싼 거 시켜야겠다”라는 의지만 키우지 않겠는가? 부모의 마음은 무리해서라도 더 좋은 것을 주고 싶은 것 아닌가? 같은 맥락으로 ‘농어촌과 지방 중소도시에 공교육 인프라 확대’, ‘질 높은 방과 후 활동’ 등은 교육인프라가 없어서 사교육을 못 하는 것이 큰 문제라는 인식을 각인시킨다. 유아들에게 이런 주입식 방식 교육이 해롭다는 이론적 제시가 있어야 하는데, 오히려 국민과 사회에 끌려다닌다.
‘부모 불안을 완화하기 위한 컨설팅과 가이드’가 필요하다고 했다. 부모들은 불안해서 사교육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 수준 교육과정이 정해져 있으니 앞으로 할 공부가 뻔히 보이기 때문에 남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선행의 의지를 불태우는 것이다. 주변의 흐름, 입시 결과, 학원 상담사 말에 따라 움직이는데 유아기부터 욱여넣는다고 해서 입시 결과가 좋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국민의 비위 맞추기와 사교육 시장 활성화가 아니라, 무엇이 진짜 교육인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과학적 정보를 제공하겠다고 한다. 사교육의 효과와 한계를 분석한 데이터를 보여준다고 해서, 부모들이 사교육을 멈출까? 교육은 숫자나 통계가 아니라, 학습자의 하루하루 성장의 결과이다. 지금 학습자가 성장하고 있다는 실감이 들지 않기에, 부모들은 사교육에 눈을 돌린다. ‘지속적이고 현실적인 소통’을 제언했다. 그러나 교육 정책은 말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교육이 변해야 하고, 교사가 변해야 하며, 교육과정이 없어져야 한다. 지금처럼 쉬운 내용만 반복하며, 모든 학습자가 같은 내용을 같은 길에서 경쟁하는 시스템은 사교육을 절대로 사라지지 말라고 부추긴다.
결국, 사교육은 부모의 불안이 만든 것이 아니라, 시대 흐름에 맞지 않는 교육과정과 교과서가 만들어낸 결과다. ‘사교육 줄이기’를 외치기 전에, 각각의 다양한 학습자 배움의 장을 국가가 인정하고 지원해야 한다. 국가가 책임지는 교육은 ‘같은 교육’이 아니라, 각자의 배움이 가능한 교육이어야 한다. 그 전환 없이, 사교육은 줄지 않는다. 지금도 느끼는 것처럼, 우리는 이 사회가 곧 한계에 부딪힐 것임을 알고 있다.
교육학박사 임은정의 2025. 05. 21. 교육이야기
참고문헌
김은영, 구자연, 김지원, 김혜진, 조숙인, 김재철, 김종근, & 이화여자대학교 산학협력단. (2024). 영유아기 사교육 경험과 발달에 관한 연구 (육아정책연구소 연구보고서 MR2406). 육아정책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