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입식 교육으로 이른 시간에 많은 성과를 내려고 하는 학부모들의 교육선택이 개인의 무지함과 비과학적 태도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았다. 개인의 선택도 사회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것을 고려하면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하였을 것이다. 주입식 교육열풍은 우리나라 교육과정의 모순이 한몫을 담당한다. 만 5세까지의 국가수준 교육과정은 누리과정이다. 사실 나는 국가수준 교육과정을 좋아하지 않지만, 누리과정이라는 터무니없는 이름을 공모해서 붙인 것은 더 싫다. 어쨌든 어린이집에서도 이해하도록 하겠다고 2013년 희한한 과정이 탄생했고 2019년에 놀이중심이라고 개정했다. 교육과정은 영역끼리, 단계별로 끊임없이 이어져야 한다. 누리과정에서는 수를 세어 수량을 안다. 문자에 관심만 두도록 한다. 다음 단계인 초등 1학년 국어는 글씨를 반복해서 쓰고 익히도록 하고 있다. 몇 십 년 전 낙후된 교수방법이 문제이긴 하지만 교육과정 연계로 생각하면 괜찮아 보인다.
그러나 수학은 한글이 가득한 교과서가 주어진다. 수학을 몰라서가 아니라 글자를 읽더라도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해서 풀기가 어렵다. 교과간의 연계에서 이미 실패이다. 이런 교육과정의 모순 때문에 부모들은 따로 시켜야 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시작된 공교육 불신은 주입식 상업교육에 의존하는 학습의 시작으로 이어진다. 교과서에서도 반복해서 쓰기, 주입교육을 하고 있으니 교육방법의 발전에 대한 고민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교육기관은 인지적으로 의미가 없어지고 경쟁과 졸업장을 위한 장소가 된다.
국가수준 교육과정은 학생 개개인의 발달차를 인정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으므로 개인의 발달이 아니라 교과서, 담임의 기준에 모두 맞추어야 한다. 초등학교는 시험을 보지 않아야 하지만 담임교사는 수준을 알아보겠다는 핑계로 시험을 보게 된다. 실제로 코로나 상황에서 가끔 등교하는 날은 시험만 보았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이렇게 같은 수준을 요구하는 교육과정은 어마어마한 부작용을 낳는다. 단계별로 준비된 자료를 하는 것이 아니므로 한번 기준에 미달하면 회복할 기회가 없다. 따라가지 못할까 봐 부모는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으며 이렇게 주입교육이 시작되면 이후에는 선행학습을 하게 된다. 그래야 경쟁에서 이긴다고 부추기기 때문이다.
선행학습을 부추겨서 이득을 얻는 집단은 학생이 아니다. 대충 진도 나가면 되는 상업기관, 앞서서 하고 있으니까 잘할 것이라고 막연하게 믿고 싶은 부모가 수혜자이다. 정작 학생들은 대중교육기관과 마찬가지로 나와 상관없이 비교당하며 따라가야 한다. 그러다 보면 알지 못하면서 알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는 늪에 빠지기 쉽다. 학습을 예측하는 최고의 지표는 메타인지와 만족지연인데 선행학습과 주입식 학습은 메타인지와 만족지연을 없애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주입식 교육으로 잃는 것이 많은데 계속하게 되는 이유 중 다른 하나는 경험의 부재 때문이다. 이 사실은 잊고 있다가 얼마 전 문득 교사들과 교육과정 회의를 하면서 상기하게 되었다. 우리 유치원에서 새로운 교수학습방법을 많이 시도해본 교사들은 새로운 교수학습방법을 쉽게 적용하고 이론에 비추어 교육방법의 장단점과 개선점을 빠르게 찾아낸다. 교사들의 수업평가 자료를 보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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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뭇가지를 이용하여 낙엽을 꽂는 꽂이 놀이를 하니까 어린이들이 그냥 수를 세어서 자연물을 가져올 때보다 더 정확하게 가져오는 모습을 보였다.
- 후식을 가져갈 때 (14-11= ?)라는 기호를 모니터에 써주고 ‘?’만큼 가져가도록 했다. 어린이들이 도미노를 이용하여 계산해보고 먹었다. 간단하게 수 계산을 하여 받아가는 전이활동이 점차 정착되고 있다. 후식이 놀이가 되니 싫어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내려고 하는 모습을 보였다.
- 오늘 가을00반 친구들과 과학 활동을 했는데, 어린이들이 너무 즐거워했다. 항상 과학 활동할 때에는 몰입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집에서 해보고 싶다고 표현하는 것을 보니 이제는 자연스럽게 과학적 호기심이 자발적으로 이어지는 모습이다. 예전보다 좀 더 과학 원리를 사용하여 이야기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생각을 좀 더 하려는 모습도 관찰 할 수 있었다.
이처럼 놀이를 통해 유아들이 각각의 역량만큼 성장한다는 것을 경험하면 교사는 놀이 속에 유아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더 노력하게 된다. 유아들은 하루 종일 놀지만 많은 지식을 뇌의 여러 영역에 넣어서 연결하는 능력을 키우게 된다. 새로운 이론을 적용해보고 장단점이 무엇이고 어떻게 수정해 나가야 하는지 고민해본다면 굳이 학생들에게 득이 없는 고루한 교수법을 주장하지 않을 것이다. 부모님들도 교사처럼 많은 경험을 직접 한다면 교수법의 중요성을 알겠지만 이런 경험이 없으니 예전에 배웠던 방식을 고수하는 수구적인 태도를 갖게 되는 것이다. 석성숲유치원 부모님들은 놀이의 가치를 모두 느꼈다고 믿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교육이야기를 함께 공유하고 유치원교육에 적극적으로 동참한 분들만 정확하게 느끼시는 듯하다.
교육학박사 임은정의 2021. 11. 22. 교육이야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