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기를 잘 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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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령기에 공부 잘하는 자녀로 만들고 싶으면 유아기에 이렇게 하세요.”라고 간단 명료하게 설명하는 것이 부모님들 입장에서는 더 쉽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고 2주에 걸쳐서 좀 더 원칙적인 이야기로 접근한 것은 부모님들이 이해하고 상황에 맞게 적용하는 힘이 생기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부모님들에게도 원리를 이해하는 학습 원칙을 지킨 것이다.

학령기에 학습을 방해하는 최대의 적을 꼽는다면 스마트기기이다. 자극적이고 뇌를 사용할 필요가 없는 놀잇감에 익숙해지면 심심하고 잔잔한 공부를 할 수 없게 된다. 유아기에 발달해야 하는 수많은 영역에 고르게 관심을 기울일 수 없고 스마트기기에 집착하게 된다. 어떤 어버님은 “어차피 이런 시대에 사는 애들이니 스마트기기를 주어도 괜찮다. 오히려 이런 흐름을 몰라서 뒤처지게 되면 어떻게 하냐”고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다. 스마트기기가 무엇인지도 모르던 이 시대 어른들도 모두 적응한 것처럼 유아기에 창의력과 적응력을 키운다면 시대가 어떻게 변화해도 적응할 수 있다. 오히려 유아기에 달성해야 하는 발달을 못하면 학습능력의 미분화로 인해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학령기에 학습을 방해하는 또 다른 주범은 주입식 교육이다. 유아기에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행동하는 경험이 쌓이지 않으면 자기주도학습도 불가능해진다. 자기주도학습의 시작은 스스로 밥 먹기, 스스로 옷 입기라고 강조한 것은 과장이 아니다. 단순해 보이지만 자신의 일상에 중요한 일을 스스로 함으로써 자존감과 독립심이 생긴다. 단순한 일상은 부모님이 다 해주고 ‘일찍 가르치면 뛰어나게 될 것이다.’ 라는 막연한 기대로 주입식 교육을 시킨다면 자신은 이해하지 못하는 일을 따라가면서 자존감을 잃게 된다. 배움의 기쁨을 알려면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스스로 해본 활동만이 메타인지를 발달시킬 수 있다.

학령기 이후 성인기, 노년기까지 적응하고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한 유아기의 교육 전략을 몇 가지 이야기해보려 한다. 무엇이든 스스로 하도록 하자. 자신이 스스로 해보아야 자신의 한계를 정확하게 판단하는 능력도 생긴다. 자신의 일을 스스로 하는 것에 대한 자긍심을 느끼면서 자라야 공부도 스스로 하게 된다. 자신의 한계를 안다는 것은 정확하게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구분하여 능률적으로 공부하게 될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이다.

무조건 책을 많이 읽는 환경을 만들자. 책꽂이에 꽂혀있는 전집은 책을 읽고 싶게 만드는 환경이 아니다. 늘 보아왔던 장식품처럼 느껴질 수 있다. 책 속의 내용이 재미있다는 것을 느끼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재밌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들려주어야 한다. 유아기에는 글자를 읽을 수 있더라도 이야기를 이어가며 문해력을 키울 수 있도록 성인이 읽어주어야 한다. 긴 글을 단번에 이해하는 능력은 오래 걸리는 과정이므로 유아기부터 꾸준히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을 키워가지 않으면 모든 학습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책 읽기를 방해하는 요인을 생각해 보자. 안정되고 심심한 시간이 있어야 책 읽는 습관이 생길 수 있다. 유아들이 심심한 시간이 생길 수 있도록 여유를 주어야 한다. 늘 바쁘게 뭔가를 시키는 것도 문제지만 심심할 틈 없이 단순한 영상이나 스마트기기가 손쉽게 열려있는 것도 문제이다. 머리 쓰고, 몸 쓰는 활동을 즐기면서 놀아야 하는 유아기에 가만히 앉아서 기계를 쳐다보는 것은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뇌가 움직이지 않는 시간이다. 이렇게 편한 시간을 보내면 책 뿐만 아니라 다른 놀이에 대한 의욕과 동기가 줄게 된다.

아들이 심심하다고 하거나 심심해 보일 때 대책을 세워주려고 성인들이 노심초사할 필요가 없다. 자신의 시간을 스스로 계획하고 활용하는 연습도 스스로 해야 하기 때문에 오히려 이런 경험이 좋은 기회가 된다. 이런 시간에 성인들이 책을 읽고 있다면 자연스럽게 책 읽는 습관을 기르게 된다. 책을 읽어 달라고 한다면 스스로 책을 골라오도록 기회를 주는 것이 좋다. 읽어주는 것이 힘들다면 가족들이 모두 도울 수 있으면 좋겠다. 지금 유아들을 교육하고 있는 가정은 매우 힘든 상황이다. 대가족 시절처럼 유아들의 특징을 알려주는 가족도 없고, 유아들을 함께 돌봐 주는 가족도 없으니 무엇이 잘못되고 있어도 알기가 어렵다. 아무리 잘하려고 해도 버겁고 힘들 수밖에 없다. 가까이서 관찰하고 조언을 할 수 있는 가족이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스스로 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기준을 세울 수 있어야 한다. 교육기관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유아들을 위해서 교육적으로 적합한 교육기관을 선택하는 것도 양육자의 큰 책무이다. 유아들을 양육하는 시기는 길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결정적으로 중요한 시기는 짧다. 태어나서 만 8년 어렵다면 만 3년에서 6년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최선을 다하는 교육기여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교육학박사 임은정의 2022. 08. 26 교육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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