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은 헌법과 그 외의 법령으로 의무교육을 규정하고 있다. 의무교육의 의무를 갖는 주체는 국가이며 국민은 취학의무를 갖는다. 더불어 국민은 교육의 권리를 갖는다. 대한민국 헌법 제31조 ①항은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누가 제정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충분히 열린 사고로 쓰여진 문구라고 생각한다. 다만 능력에 따라서 균등한 교육이 무엇인지에 대한 해석과 고민은 시대와 사회변화에 따라서 달라져야 한다. 교육학자로서의 나의 생각은 이 시대에 균등한 교육이란 모두 같은 내용, 같은 방식의 교육이 아니다. 자신의 속도대로 자신의 관심에 집중하여 최대한 타고난 능력을 기를 수 있는 교육이 균등한 교육이다. 교육의 내용, 교육의 비용, 교육의 방법이 모두 같은 것은 평등하고 균등한 것이 아니다. 교육의 제공이 개인에 따라서 차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오히려 정의로운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31조 ①항에 이어서 ②항은 적어도 초등교육과 법률이 정하는 교육을 받게 할 의무를 진다고 했다. 능력에 따라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된다는 전제로 교육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나는 해석한다. 초ㆍ중등교육법 시행령 제28조 ①항은 취학의무의 면제 또는 유예를 신청할 수 있음을 명시하였고, ④항은 취학 의무의 면제 또는 유예는 질병이나 그 밖의 부득이한 사유가 있을 때 할 수 있다고 명시하였다. 나는 이 부득이한 사정이 헌법에 보장된 능력에 따라 균등한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법령들을 정리해 보면 국민은 무상으로 의무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으며 국가는 의무를 다해야 한다. 국민은 취학을 시켜야 하는 의무가 있는데 부득이한 사정이 있을 때는 입학대상 학교의 의무교육관리위원회의결을 거쳐서 유예 혹은 면제를 받을 수 있다. 이는 대안학교로 등록된 곳을 다니건 가정에서 교육을 하건 같은 절차를 준용한다. 그러니 결국 대안학교로 등록을 해도 학교로서 인정을 하지 않는 것이며, 법에서 제시하는 부모의 부득이한 사정이 무엇인지가 가장 중요한 논점이다. 이는 부모의 확고한 신념이 바탕이 되어 부득이하게 취학의무 면제를 신청하면 받아 주는 것이 마땅하다.
공교육이 붕괴되고 있는 상황은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며 어쩔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다. 교육복지 선진국이라고 생각했던 덴마크와 같은 나라도 공교육 이탈률이 30%에 육박한다. 덴마크는 유연하게 대처하여 원하는 교육에 지원을 하는 것이 대한민국과 다른 점이다. 누구나 같은 내용, 같은 속도를 요구하는 교육체제가 이 시대에는 더 이상 효용성이 없어졌다. IB교육이 내세우는 가치도 자신을 바로 보기, 인류애를 갖기, 자신의 뿌리알기, 자신을 표현하기, 세상을 읽는 시각 갖기 등의 목표를 가지고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을 익히는 것이다. 엘빈 토플러가 “대한민국 학생은 학교와 학원에서 미래에 필요하지 않은 지식과 존재하지도 않을 직업을 위해서 15시간을 낭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공교육의 교육과정은 고정된 국가수준 교육과정과 의도되지 않았지만 학습과정에서 습득하게 되는 잠재적 교육과정이 있는데 이 두 가지 모두 공교육을 이탈하고 싶은 부득이한 상황이 되었다. 첫째, 같은 교실에서는 모두 같은 내용을 배워야 하는 국가수준 교육과정으로 묶여있어서 개인의 희생은 불가피하다. 학습자 개인이 잘 할 수 있는 것은 밀어주고, 또 조금 천천히 이해하는 분야는 천천히 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차분히 독서를 하면서 문해력과 사고력을 키워야 하는데 교과서나 선행학습에 급급한 상황은 개인의 건강한 발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렇게 같은 내용을 강요하는 것은 경쟁을 해야하기 때문이며 이는 개인의 행복과 발전에는 악영향이다. 경쟁적인 학습환경은 신체적으로 건강한 발달도 방해하고 있다. 146개국 청소년들의 신체활동 실천율은 평균 19.0%인 반면, 우리나라 청소년은 5.8%에 불과해서 꼴찌를 기록했다(한겨레, 손지민, 2025.03.27.)는 기사는 단순한 신체활동지수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교육과정이 국가와 개인의 건강한 경쟁력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학생은 하루 2시간은 움직여야 한다.
둘째, 잠재적 교육과정의 부정적 영향이다. 학교는 학원에서 배워온 지식을 점검받고 서열화해서 졸업장 받는 곳이라는 자조적인 말로 대변되는 공교육이 형식적인 교육이 되었다. 학교만 믿고 있을 수 없어서 학원을 오가는 과중한 학습노동을 해야 하는 것은 사회가 만들어낸 비극이다. 이미 산업을 장악하고 있는 사교육시장은 없어질 수도 없다는 분석도 있으니 이런 상황이 쉽게 종식되지 않을 것 같다. 의도되지 않은 잠재적 교육과정 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는 스마트기기에 모두 함께 노출되고 과시적인 가상환경과 상업화된 미디어 환경이다. 만화나 유행하는 드라마를 보여주고 싶지 않지만 친구들과 대화를 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환경까지 잠재적 교육과정이다.
셋째, 무상이라는 이유로 냉동식품, 가공식품을 당연하게 생각하며 사용하는 급식의 공장 음식을 먹이고 싶지 않다. 성장기의 섭식은 평생의 입맛을 만들고 평생의 건강을 좌우하는 중요한 교육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급식의 질이 저하되는데 무상이니 참아야 한다면 거부하고 싶다. 물론 공교육은 지난 100년간 이 사회가 산업화되는 과정에 기여했고 앞으로도 기대되는 몫이 있다. 의무교육의 순기능에 충실하면서 대한민국 헌법에 명시된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를 지킬 수 있기를 바란다. 나와 같이 부득이한 상황이라고 생각하여 면제를 신청하는 국민의 교육권이 안전하게 보장되는 것도 선진화, 국제화의 길이다.
교육학박사 임은정의 2025. 04. 03. 교육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