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유치원이 알려지기 시작했을 때 학회에 나가면 “요즘 왜들 숲 얘기만 하는 건지, 뭐 확인된 것들이 얼마나 된다고.”라는 반응을 보이는 연구자들도 다수 있었다. 내가 숲유치원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것은 박사를 마치고 지도 교수님의 연구에 동참하면서였다. 나의 지도 교수님은 숲유치원이라는 개념을 우리나라에 알리기 시작하신 분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독일 유학을 마치고 돌아오신 또 한 분도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많은 연구가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고, 독일의 숲유치원 교사들도 연구를 진행할 수 있는 정도의 학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솔직히 믿음이 가지 않았다.
나는 이때까지 과학적으로 증명된 가치만이 옳은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었다. 이때까지의 나의 연구들이 모두 양적 연구였던 것도 이런 생각과 관련이 있다. 눈에 보이는 통계가 가장 많은 진실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숲유치원의 가치에 대해서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상황 중 하나는 강의나 연구를 위해서 숲유치원에 대해 인터뷰를 하면 교수, 원장, 연구자, 수강생들은 하나같이 “우리가 어릴 때 자연에서 놀아봐서, 얼마나 좋은지 알고 있잖아.”라고 이야기해 주었기 때문이다. 숲유치원의 필요성을 감성적으로만 설명할 뿐 나를 설득할 만한 근거를 말해주지 못했다. 숲유치원에 대한 연구를 하는 교수님 두 분 조차도 하루일과, 활동의 내용 등을 소개하는 수준이었다. 나는 의혹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숲유치원에 대해서 관심을 놓을 수는 없었다. 지도교수님의 관심 분야였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였고, 내가 경험해 보지 않은 교육에 대한 관심이었다.
“임 교수는 자연에서 놀아보지 못했지? 그런데 말이야 지금 자기 일을 훌륭하게 해내고 지도자가 되어있는 많은 사람이 어릴 때부터 틀에 갇힌 공부를 하고 학원에 다녔을까? 나부터도 어릴 때 공부를 해본 적이 없어, 그냥 들로 산으로 놀러 다녔지. 그러다가 어느 순간 필요에 의해서 4시간씩 걸어 다니며 공부에 매달린 거야. 그 차이가 뭔지 알아? 끝까지 해내는 저력이 있는 거야. 그런 사람들은 자살하지 않아. 마음에 병이 들지는 않는 거야.”
너무 과학적이지 못하다고 빠득빠득 들이대는 제자에게 지도 교수님이 사석에서 해주신 이야기였다. 내가 스스로 불안하고 경쟁적인 정서를 가졌다고 생각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내가 경험하지 못한 가치가 궁금해져서 연구를 이어갔다. 자연에서의 놀이가 주는 가장 큰 장점은 정서적 안정과 만족감이 맞았다. 최근 급성장한 뇌 과학에서 자연에서의 성장이 뇌 발달을 촉진하고 정서적 안정을 찾는다는 연구 결과들이 다수 있었다. 그러나 이 연구 결과만 의존하여 숲에서 생태교육을 한다는 명분으로 결과를 종용하는 지식주입을 하거나 목적과 목표도 없이 마냥 방임하는 것은 교육이 아님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여러 연구결과를 통해서 석성숲유치원 졸업생들은 먼 훗날 성인이 되었을 때 석성숲유치원에 다녔던 3년이 세상을 살아가는 큰 힘이 되어 줄 것을 확신한다. 그러나 숲에서의 놀이가 교육적 가치를 가지려면 이렇게 감성적인 설명보다 과학적이고 이성적인 이해를 해야 한다는 것이 연구초기의 내 생각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모든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하지 못하는 한계를 인정하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예를 들어 숲에서 놀이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유아도 있으며 차츰 적응하는 과정을 연구로 밝혀내었다. 그런데 확실한 믿음과 도움을 주지 않는 부모님의 자녀는 끝내 적응하지 못한 채 “우리 아이는 숲하고 안 맞나 봐요.”라며 유치원을 떠나기도 한다. 이런 사례는 부모님에 대한 연구와 사회관계망 까지 연구해야 분석이 가능할 것이다. 엄청난 연구여건이 필요하기 때문에 실제로 연구하는 것은 어렵다.
결석이 많은 유아는 대부분 발달이 늦어지고 있다는 것을 교사들은 알지만 왜 그런지, 무엇 때문이지 명확하게 연구가 되지 않았기에 인과 관계를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확실한 인과 관계를 알기 때문에 조언을 드려도 고치지 못하고 기분대로 양육하는 부모님들도 계시다. 많은 사례를 접하는 임상의사가 이런 기분일까 생각해 보았다. 이론을 실제에 적용하면서 사례와 맞춰 가면 한 걸음 더 나아가 확신을 하게 된다. 부모님들이 부디 많은 사례를 경험하고 이론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는 교사들을 전문가로서 신뢰하고 교육에 상승효과(synergy)를 거두었으면 좋겠다. 이 사회의 많은 교사가 의사처럼 늘 공부하고 임상과 이론을 맞추어가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석성숲유치원 교사들은 최선을 다해 이론적이고 논리적인 접근을 하고 있으며 수없이 많은 사례를 연구하고 있다. 한 둘 키워본 이 나라 대중의 논리에 맞추기 위해서 전문적인 조언을 무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의사를 믿지 않고 옆집 아주머니 말을 믿게 되는 것은 아닐지 돌아보았으면 좋겠다. 믿을 수 있는 의사를 찾는 눈이 필요하듯 믿을 수 있는 교사를 찾는 것도 부모로서 중요한 과제이다.
교육학박사 임은정의 2022. 01. 07. 교육이야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