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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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칼럼

9월은 매우 분주한 달이었다. 23일과 24일은 유치원의 하루 일과를 IB에 공개하였고, 27일은 처음으로 외부인들에게 숲에서의 놀이를 20분간 공개하며 교육에 대한 질의 응답시간을 가졌다. 그 이후에는 2024 숲 초대 일정이 10월 03일에 있었다. 정신없이 지내느라 나의 머릿속도 복잡해서 글을 쓸 여유가 나지 않았다. 이제야 IB 인터뷰에 응해주신 부모님들, 우리 유치원에 관심을 가지고 방문해주신 예비 학부모님들, 우리 유아들의 숲 초대에 기꺼이 응해주신 부모님들께 마음을 다해 감사 인사를 전한다.

IB 교육을 왜 신청했냐는 질문을 교육 설명회에서 새로운 부모님들께 받았다. IB 실사 팀도 가장 먼저 한 질문이었다. 최근에 내가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기도 한데, 나는 언제 누가 물어봐도 굉장히 단순하고 쉬운 대답을 한다. “내가 그동안 해왔던 교육이 세계적으로 인정하는 교육이며, 최신의 연구 동향을 반영한 교육임을 확인받고 널리 알리고 싶었습니다.” 이것이 나의 답이다.

물론, IB 교육을 통해서 우리 유치원의 원아가 많아지거나, 유명세가 높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다수의 부모님은 IB 교육을 모르기 때문에 기대만큼 효과적인 홍보는 아닐 것임을 안다. 무엇이든 소비자가 아는 만큼 권리를 찾을 수 있고 누릴 수 있다. 식자재도 원산지를 허위로 표기하면 불법으로 처벌을 받는다. 구분하는 방법을 안다면 애초에 속지 않을 것이고 상인들도 속일 생각 자체를 하지 않을 것이다.

교육도 그렇다. 부모가 아는 만큼 교육의 질이 달라진다. 그래서 이번 설명회에서는 교육기관을 대상으로 여러 업체가 보낸 홍보자료를 모두에게 보여주고 공개했다. 유아들에게는 재롱잔치의 폐해가 크지만, 업체와 원장들의 장삿속 때문에 포장되는 것임을 설명했다. 성인의 장삿속을 교육인 양, 잘 포장해서 유아들의 발달을 저해하고 있는 학습지와 방과후 특기가 얼마나 질이 낮은 장사인지 설명했다. 이전까지는 관련 기관이 찾아와 괴롭힐까 봐 침묵했던 나 자신이 비겁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는데 이와 관련된 일련의 사건이 있었기에 이제는 침묵하지 않기로 했다.

언급하기조차 어려운 일이지만 어느 태권도 체육관에서 네 살짜리 어린이가 안타까운 일을 당한 기사를 봤다. 4세 유아가 한 시간 동안 태권도를 했는데 또 하라고 하자 싫다고 떼를 써서 매트에 거꾸로 넣어 놓았다고 한다. 그 기사에 이어 심층 취재 프로그램에서 체육관 관장과 그 주변인들을 인터뷰하는 과정이 방송되었고, 그 방송을 유심히 봤다. 유치원 원장이기 이전에 교육을 전공한 학자로서 상황과 이유가 궁금했고, 단편적인 신문 기사로는 짐작할 수 없었기에 열심히 방청했다. 방청하면서 굉장히 놀랐던 점이 두 가지 있었다. 하나는 그 체육관은 주변에서 부모들에게 인기 있었고 인정받는 체육관이라고 했다. 주변 체육관들은 원생이 80명 정도 안팎을 왔다 갔다 하는 반면에 사고가 난 체육관의 원생은 200명 정도 된다는 것이다. 그 체육관은 부모가 20시, 21시가 넘게 와도 연령 구분하지 않고 다 돌봐주었다고 한다. 유치원이나 학교가 끝나고, 15시~16시쯤부터 부모가 올 때까지 그 체육관에 있었다는 것이다. 인기가 없을 수 없는 이유였다. 또 다른 하나는 관장의 이야기였다. 왜 그런 행동을 했냐는 어머니의 질문에 “잘 하고 싶었습니다. 잘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었습니다.”라고 대답을 하자 어머니는 오열하며 누가 잘하라고 했냐고 했다.

그 관장의 대답이 거짓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단, 부모들의 “고맙다, 잘한다”라는 말이 ‘잘하는 것’이라고 착각했기 때문에 교육당사자인 4세 유아가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보호자가 늦게 오면 떡볶이를 사 먹여가면서 데리고 있는 정말 좋은 사람이라는 체육관 관장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평판은 본질을 벗어난 것이다. 물론 그건 쉬운 일이 아니며, 그렇게 오래 데리고 있어 주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그 사이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조금만 생각해 보았더라면 어린이의 희생도 없었을 것이다.

우리나라가 발전한 만큼 교육이 따라가지 못하는 후진적 행태를 고치려면 교육이라는 포장 안에 행해지는 장삿속과 진정한 교육을 구분하는 수준은 되어야 한다. 태권도를 가르치는 체육관에서 4시간을 보내는 방법이 무엇일지 생각해 보았어야 했다. 그리고 매우 높은 인지력과 운동능력을 요구하는 태권도는 애초에 4세가 할 수 없는 운동이다. 기초적인 발달 특성도 모르는 지도자와 부모의 협동작품으로 비극을 만들었다. 방과후 교사는 정교사 자격이 없어도 된다는 범정부적 논리가 이런 비극을 만드는데 일조했을 것이고, 뭔가 이상하지만 내가 편하니까 눈감은 부모의 직무유기가 일조했을 것이다. 비용을 지불하고 뭐라도 하나 가르치자는 몰상식이 곧 상식이 되어버린 이 사회가 바뀌지 않는 한 충분히 건강하게 돌보는 시스템이 생겨도 잘하는 사교육의 이미지는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교육학박사 임은정의 2024. 10. 10. 교육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