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재적 교육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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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칼럼

교육과정의 영문 curriculum은 라틴어의 ‘currere’에서 유래되었으며 currer는 ‘달린다’, ‘뛴다’라는 뜻으로 경주로 혹은 경주하는 그 자체의 과정을 나타내는 것으로 끊어지지 않고 연속되는 것을 강조한다. 우리가 흔히 교육을 떠올리면 국가가 정한 진도, 과정을 강조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대부분의 우리들은 학교라는 제도권의 교육을 받았기에 거의 같은 경험을 가지고 있다.

우리에게 교육과정은 교육내용의 성격이 강하다. 교육내용은 교육을 통해서 이루고자 하는 교육의 목적을 정하는 것이 우선된다. 학습자가 제도권 안에서 배우기를 바라는 국가와 사회의 목적이 교육내용으로써 교육과정에 녹아있다. 교과서는 교육의 목적에 맞추어서 만들어지고 평가의 기준이 된다. 국가 주도적 교과서 내용을 무비판적으로 맹신하는 것이 학생들에게 좋은 성적을 올리는데 유리한 절대적 지식이 된다. 이런 습관으로 학습자는 절대적인 객관적 가치에 압도당한다. 더 이상의 질문과 비판이 필요 없는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상황에서 학교는 교과내용으로 교육과정이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되는 것이 아니며 각각의 경험이 다르다는 것을 연구하고 주장하는 듀이(John Dewey)와 같은 학자도 나왔다. 개개인에 따라 달라지는 경험으로써의 교육과정을 이야기했다.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어도 각 학생의 경험은 다르며 그 결과도 다름을 생각한 것이다. 우리가 같은 교과서로 공부해도 모두 다른 지식수준과 이해도를 갖는 것을 생각하면 옳은 해석이다.

교육과정은 배워야 하는 지식의 순서를 정하는 계획으로써의 성격이 강하며 그 결과 도달해야 하는 지점을 정하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교육과정에 대한 여러 가지 해석과 연구를 거듭하면서 나를 포함한 학자들은 의문들이 생겨났다. 그 의문점들을 제시하고 나의 생각을 밝혀보려 한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나의 생각을 읽기 전에 각자의 답을 해보기 바란다.

첫째, 교육과정을 계획, 내용구성, 목표설정을 교과서대로 하면 학습자들은 모두 같은 결과로 학습할 것인가? 아니다. 이는 경험상 누구나 알 만한 내용이다. 교과서의 내용을 교사가 아무리 재미있게 가르치려 해도 학습자 모두가 교사의 의도대로 즐겁고 효과적인 학습을 하지 못한다. 우리는 흔히 교사는 가르치고 학습자는 그대로 따라오는 것이 학습이고 교육이라고 착각했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권위적인 국가 수준 교육과정에서 좋은 결과를 얻기에 유리한 방법이기도 했다. 일정 부분 힘의 논리로 교육과정에서 국가적인 의식, 행동 양식을 받아들이는 척했지만 모든 지식을 모두에게 같은 수준으로 넣을 수는 없다. 그렇게 명백한데도 학교도 모자라 학원까지 지식을 주입하려는 이 사회는 참 모순된다.

둘째, 학습자는 학교에서 교사가 가르치는 것만 배울 것인가? 아니다. 학교를 다녀본 누구나 아는 것이다. 교사가 구성한 교과서 내용 이외의 사회, 문화를 배운다. 그것이 긍정적일 수도 있고, 부정적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의도하지 못한 각자의 경험이 만들어지게 된다.

셋째, 학습자는 교사가 가르치지 않으면 배우지 못할까?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학습자는 교사가 직접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할 수 있는 힘을 준다면 더 긍정적으로 자신만의 지식을 구성해 낼 수 있다. 이상의 질문들을 통틀어서 잠재적 교육과정이라고 한다.

국가 수준 교육과정은 강압적인 환경에서 큰 힘을 갖는 것이 사실이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 식민의 정당화, 산업화 시기에는 그에 맞는 순종적인 인간이 담겼다. 강압적인 내용은 인권과 행복에 위배 되며 실상은 교사가 의도한 것보다 학습자 스스로 경험하고 구성하는 잠재적 교육과정이 더 큰 힘을 발휘한다. 학습자를 둘러싼 인적, 물적 환경의 중요성과 교육과정이 철저히 학습자 중심으로 구성되어야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이를 실천하는 방법은 아직 우리나라는 해답을 제시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우리나라의 교육과정은 행정, 지도의 편의성 때문에 국가, 지역, 학교, 학급을 하나의 덩어리로 보고 개인은 없는 행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남들이 하는 대로 하는 것이 평탄한 길일 것 같지만 같은 길에 우르르 몰려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달리는 것은 이미 주도권을 잃은 경주임을 알아야 한다.

혹자는 나에게 모두 공교육을 이탈하라고 주장하는 것이냐고 질문을 하기도 한다. 만약 정말 훌륭한 잠재적 교육과정을 만들어 내는 곳이 있다면 그곳을 선택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런 교육기관과 교육과정을 찾지 못했다면 적어도 문제의식을 가지고, 달리고 있는 경주로를 똑바로 직시하자고 주장하고 싶다.

누구나 스마트폰을 사용하니까 사용해야 하고, 누구나 게임과 캐릭터에 몰입하니까 덩달아 한다면 그것이 잠재적 교육과정이 되어서 결과를 만든다. 교육과정은 끊어지지 않는 순환이다. 환경으로 인한 교육과정은 어떤 식으로든 결과에 영향을 미치면서 순환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잠재적 교육과정을 고려하여 좋은 경주로를 선택하는 부모가 되길 바란다.

교육학박사 임은정의 2024. 07. 11 교육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