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 네일은 개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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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을 개원하던 시절, 나의 치마와 구두에 유독 관심을 보이는 여아들이 있었다. “선생님 오늘 치마 예뻐요.” “구두 멋있어요.” 그 말은 칭찬이었고, 호기심이었고, 어쩌면 그 나이의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 장면을 보면서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이런 유아들의 반응이 내가 의도한 교육과 다른 사실을 마주했기 때문이다. 나는 나이도 있고, 강의도 가야 하니까 유아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하며 쉽게 바꾸지 않았다. 그동안의 옷차림은 나의 습관이자 정체성이었다. 이 ‘부분만큼은 모른 척하고 눈을 감아도 되지 않을까?’ 타협하고 싶은 갈등이 있었다. 교육 신념을 지키는 일이 늘 모든 영역에서 완벽할 수는 없지 않을까. 그렇게 스스로를 설득해 보려 했다.

하지만 결국 결론은 하나였다. 나는 교육자로서 그 메시지를 외면할 수 없었다. 여아들이 치마라는 ‘옷 자체’에 관심을 보이는 순간, 나는 이미 그들에게 하나의 학습 장면을 제공하고 있었다. 무엇이 예쁜지, 무엇이 여성적인지, 무엇이 관심받는지. 그 기준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는 시작점이 될 수 있었다. 영유아기에는 그 영향이 단지 외모의 문제가 아니라 정서 발달과 자기 인식의 문제로 이어진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예쁘지도 않은 레이스 치마를 여아들에게 허용할 수 없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내가 입는 것, 쓰는 것, 사용하는 것까지 바꾸겠다고. 내가 원장으로서 교육을 위해 내려놓을 수 있다면, 유아들이 외모의 기준에 끌려가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아들이 어린 시절부터 치마를 입고 외모를 가꾸는 데 익숙해지는 문화는 단순한 취향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공부하지 않아도, 생각하지 않아도, 외모로 살아갈 수 있음을 학습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따라서 나는 유아의 외모 꾸미기 문제를 미적인 선택이나 개인의 자유로 보지 않는다. 남의 시선에 끌려다니는 인정욕구, 과시욕, 비교 속에서 싹트는 불행한 정서의 시작으로 본다. 이런 이야기는 논문으로 쓰기 어렵다. 통계로 증명하기는 더더욱 힘들다. 그러나 질적 경험과 현장에서의 관찰, 그리고 무엇보다 어린이들의 변화를 통해 나는 확신하게 되었다. 나와 함께 외모의 압박을 벗어버린 이후 어린이들은 훨씬 자유로워졌고, 관계는 편안해졌다. 외모로 평가받지 않는 환경 속에서 어린이들은 자신을 설명하는 다른 언어를 조금씩 만들어 갔다.

교육은 포장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겉모습만 바꾼 채 생각은 그대로인 상태에서 아동과 학생에게 다른 삶을 말할 수는 없다. 내가 바뀌지 않으면 교육은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다. 그저 흉내 내는 수준에 머무를 뿐이다. 이런 이야기가 일부 여아와 어머니들에게 거부감으로 다가온다는 사실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얼마 전 한 여아가 손톱에 젤을 하고 등원한 적이 있었다. 담임교사는 유치원에 올 때 지우고 오도록 안내했다. 그날 보호자에게 전화가 왔다. “젤이나 외모는 개성인데, 너무 침해하는 것이 아니냐”라는 취지였다. 평소에도 분홍색과 예쁜 물건에 집착하던 유아였기 때문에 젤 네일이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 유아는 끝내 자퇴했다. 어떤 보호자는 “치마 입히고 싶다.” “엄마도 멋 부리고 싶다.”는 이유를 자퇴 사유에 적어내기도 했다. 나는 그 마음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다. 나도 같은 갈등을 했기 때문이다. 다만 그 갈등을 ‘조금만 참으면 될 것’을 참지 못하는 방식으로 풀어낼 때, 그 선택이 결국 유아의 정서와 발달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아들이 “예뻐야 한다”라는 메시지를 일상적으로 경험하고, 여성 교사, 어머니, 연예인 등이 외모로 평가받는 장면을 반복해서 목격할 때, 사유와 학습보다 외모 관리가 중요하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학습한다. AI와 SNS의 시대에 이 분위기는 과거와는 전혀 다르게 전개된다. 이전에는 비교를 하더라도 현실과 거리가 있는 ‘이상’으로 남거나 ‘포기’가 가능했다. 그러나 지금은 손에 잡힐 듯 가까운 세계가 매일 펼쳐진다. 잡을 수 있어야 존재감을 느끼는 현실로 받아들이게 된다. 모두 그런 것 같고 나도 해야만 존재감을 느끼는 현실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특히 대한민국의 청소년 행복지수와 자살률을 부추기는 현실이 이런 사회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 나의 신념이다.

화장하는 초등학생, 어른과 똑같이 이성 교제를 하는 13세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결과물이 아니다. 유아기 이전부터 차근차근 쌓아온 인식과 학습의 결과다. 이런 상황을 맞이하는 청소년기 자녀도 괜찮다고 생각한다면, 유아기부터 어머니와 외모 꾸미기를 즐기고 개성을 쌓아주어도 좋다. 하지만 건전하고 성실한 정서를 지지한다면, 적어도 인성이 형성되는 생후 8년간은 모든 사회가 조심조심 지켜주어야 한다. 특히 부모는 그래야 하는 책임이 있다.

교육학박사 임은정의 2026.01. 16. 교육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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