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 곧 또 한 번의 졸업식이 있을 것이다. 유치원을 졸업한 후에도 졸업생들이 지금처럼 꾸준히 지적 호기심을 키우고 앎을 즐기길 바란다. 그런데 생각처럼 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아서 안타깝다. 졸업생을 대상으로 대안교육을 하면서 그 궁금증을 해결해 보려 했지만 얼마 전까지는 해답을 찾지 못했다. 유치원 다닐 때하고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던 몇몇 어머니들이 왜 그랬을지 고민하다가 문득 생각이 연결되었다. 유치원을 다니면서 핵심어를 어떤 주제로 풀어나가도 “왜 이렇게 어려운 것을 하나요?”라는 질문을 하는 부모님은 없었다. 사실 유아들이 공부하기에는 쉽지 않아 보이는 핵심어들도 많았지만, 누구도 유치원 교육이 어렵다고 불만을 가진 적은 없었다.
핵심어를 정하는 기준은 간단하다. 유아들이 쉽게 접할 수 있으며 지속해서 관찰하거나 탐구할 가치가 있는 것들이다. 핵심어를 따로 정하는 이유는 유아들을 위해 멀고 추상적인 주제가 아닌 유아들과 가깝고 친숙히 느껴지는 한 단어를 선택하는 것이다. 짱이의 사례를 통해서 지적 호기심을 잃게 되는 이야기를 풀어보려 한다. 짱이는 3세부터 유치원을 다니면서 유치원에서 하는 핵심어에 관심을 기울이고 거미, 개미, 버섯, 고인돌 등의 주제에 대해 몰입하고 책도 많이 보았다. 짱이 어머니는 점점 대화의 수준이 높아진다며 만족도가 매우 높았다. 짱이 어머니는 늘 놀이를 통해 많은 것을 학습하는 것이 만족스럽다고 이야기하였고, 유아들의 학습 수준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데 짱이가 유치원을 졸업하고 대안교육을 시작하면서 점차 어머니의 태도가 달라졌다. “수학책에 오류가 있다.”,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중학교 교육과정에나 나오는 식물의 분류를 왜 배우는지 모르겠다.”, “구구단을 19단까지 하자.”, “영어에 체계가 없다.”등의 불만을 꾸준히 제기했다. 그러는 사이에 짱이는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어려워했고, 핵심어와 활동에 흥미를 보이기보다는 정답, 친구의 진도를 신경쓰며 단순히 암기를 하는 것에만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짱이 어머니는 불만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결국 자퇴하였다. 유치원생이 아닌 학생이 되자 무엇에 쫓기듯 조급하고 어렵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중등 과정을 언급했던 것처럼 학년별로 배우는 진도가 정해져 있고,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지식습득에 문제가 생긴다는 고정관념 때문인 것 같다. 부모 세대가 배웠던 그 틀로 자녀들도 교과서와 진도에 각자의 발달을 꿰맞추게 되는 것이다. 유치원까지는 교과서가 없으니 새롭게 많은 것을 습득하게 되는 것을 기특하게 생각하다가 초등과정에서 내 아이가 1등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불만스러웠다.
박사과정 첫 학기 수업에 인지 학습론을 수강했었다. 지금은 많이 알려진 교수님이고 백발의 모습이지만 그 당시 그 교수님 역시 유학 후 첫 학기 초임 교수님이었다. 수업 중 “아무리 어려운 내용이라도 학습자의 수준에 맞추어서 방법을 달리하면 이해할 수 있다.”라고 하셨다. 나는 경험상 이해가 어려웠다. 그런데 관련 논문들을 읽으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학습자의 발달을 이해하고 상황에 맞추어 학습 방법을 달리하면 지식의 순서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즉 종속과목강문계 식물, 동물 분류는 어려운 내용이지만 산에 사는 학생들이 산에서 마주하는 식물들을 분류하고 실제를 바탕으로 학문적 분류와 비교하면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뿐더러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시험과 경쟁을 위한 암기가 아니라, 놀이를 통해 자연히 암기가 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이렇게 느긋하게 할 수 있으면 좀 복잡한 지식도 스트레스 없이 즐기게 된다. 그런데 다른 친구들보다 먼저, 정확하게 암기하는 것이 공부의 목적이고 시험을 치러야 한다면 그때부터는 앎을 즐길 수 없게 된다. 난 학생들에게 “여러분에게 이런 활동을 알려주는 것은 나중에라도 이런 지식체계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찾아서 활용하도록 하기 위함이다.”라고 말해주고 있다. 석성숲유치원이나 한숲 교사들은 수업 준비를 위해서 유아, 초등수준의 자료를 찾지 않는다. 적어도 중등 이상의 정확하고 논리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즐겁고 효과적인 접근방법을 사용하여 정확한 개념을 유아들의 필요에 맞춘다. 그러면 유아들은 어려워도 흥미로운 학습을 경험한다.
공부가 즐겁지 못한 것은 시험 때문이다, 궁극적으로는 수능이 문제이다. 시험공부의 시대를 버리고 학습을 즐기고 자연히 암기 되는 느긋한 교육과정이 운영 되어야 한다. 일찍부터 암기하고 경쟁하는 똑같은 교육은 이제 버려야 한다. 알아야 할 것이 아니라 알고 싶은 것을 찾아서 학습하는 아동 중심 사회가 되면 출산율도 증가할 것이다. 유치원을 졸업하더라도 앎을 즐기고 느긋하게 탐구하는 졸업생들이 되기를 기원하며, 그래야 행복하고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다고 믿는다.
교육학박사 임은정의 2023. 02. 08 교육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