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고생했지만, 제가 한 거니까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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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초대 UOI를 마무리하며 교사들과 성찰 회의를 했다. “사진을 보며 마무리하는 시간에 선생님, 이거 제가 다 붙였어요. 진짜 힘들었어요. 라며 나비가 뿌듯해했습니다. 몇 번이고 떨어져 다시 붙이고, 종이가 구겨질 때마다 한숨을 쉬던(Risk-taker) 그 시간들이 한꺼번에 떠오르는 듯했습니다.” 가을 학년 교사가 말을 했다. 그 모든 과정을 스스로 해냈다는 사실이 나비에게는 힘들지만 깊은 깨달음(Reflective)이 있었을 것이다. 교육과정 속에 이런 뿌듯함이 살아있어야 한다. 정해진 교과서와 답안 속에서 ‘내가 만든 의미’는 설 자리가 없다. 나비는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내가 해낸 것’의 가치를 온몸으로 배웠다. 이런 경험이 아니라 교과서 한 줄로 정리된 지식이었다면 자신의 것이 될 수 없었다.

숲초대 UOI 속에서 나비는 탐구자이자 의사소통자(Communicator)였다. “이 도토리는 왜 이런 색이 됐을까?”, “도토리마다 비교하면 다름이 보여요.” 질문(Thinker) 속에서 나비는 스스로 답을 찾아내고, 부모님께도 당당히 설명한다. 청소하며 친구들과 협력할 때는 ‘비판적 사고’가 몸으로 드러난다. 왜 이런 쓰레기가 우리 숲에 버려져 있는 것인지 생각하고 성토한다. 부모님 앞에서 자신의 생각을 조리 있게 말할 때는 ‘의사소통자’로 성장한 모습이었다. 숲초대를 위한 준비 6주 동안 원칙(Principled)을 지키며 계획을 세우고, 서로 도우며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갔다.

나비는 “처음에는 힘들었는데요, 나중에는 제가 한 게 다 보이니까 기분이 이상했어요. 그냥 기뻤어요.” 그 ‘이상한 기분’ 속에는 자부심과 성찰이 함께 있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행사가 아니라, 자신이 걸어온 과정을 되돌아보는 진짜 배움의 순간이다. 성찰 시간에 아쉽게 ‘꼬마야 꼬마야’ 놀이를 실패한 친구를 위해서 “다음에는 다 같이 성공하게 또 하면 좋겠어요.”라며 진심 어린 위로와 재도전의 의지를 보인다. 이 유아들은 이미 공동체의 의미를 알고 있다. 누군가의 성공이 곧 나의 기쁨이 되는 마음(Caring),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지향하는 교육의 본질이다.

나비는 이제 무엇이든 쉽게 말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이 직접 느낀 것을 오래 곱씹은 뒤, 조용히 꺼내놓는다. “선생님, 그때 진짜 고생했지만, 제가 한 거니까 좋았어요.” 이 짧은 한마디에 배움의 본질이 담겨 있다. 어린이가 주도할 때, 배움은 감동이 되고, 기억이 된다. 같은 차원에서 오늘 나는 학생들에게 46개의 염색체를 그려보도록 할 생각이다. 사진을 보며 설명하고 인간의 핵 안에 46개의 염색체가 있음을 기억하면 되는 것이 능률적이고 간단한 주입식 방법이다. 하지만 좀 더 귀찮고 복잡하게 활동을 하려 한다. 학생들과 혈액의 순환을 이해하기 위해서 심장을 바닥에 그려놓고 각자가 혈액이 되어 돌아다니는 활동을 했던 것 처럼 몸을 움직이고 힘들게 돌아가며 익힌 지식(Knowledgeable) 속에서 깊이 있는 질문도 나오고 그 질문(Thinker)을 해결하면서 뿌듯함과 탐구(Inquirer)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괄호 안의 영단어들은 IB가 추구하는 학습자 10가지 중의 하나씩을 대응한 것이다. 우리의 모든 학습활동을 이 학습자상이 충실하게 반영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교육학박사 임은정의 2025. 10. 16. 교육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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