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적 작업과 자발성 그리고 여유

링크가 복사되었습니다!
칼럼칼럼

우리 유치원의 표지판과 현판의 글자들은 그동안 모두 기성품으로 사용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이사장님께서 원목으로 일일이 깎아서 반 표지판을 하나씩 바꾸고, 유치원 현판을 만들어서 걸었다. 기계로 한 것처럼 매끈하지 않고, 각각의 모양이 조금씩 다른 것이 오히려 정감도 있고 여유가 느껴졌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조금씩 고쳐가면서 사용하면 시간이 주는 멋이 더 생길 수도 있을 것 같다.

주말에 바뀐 표지판을 우리 어린이들이 단번에 알아보았다. 우리 어린이들은 감수성과 관찰력이 뛰어나기도 할 뿐더러 의미를 부여하고 자신에게 의미 있는 이야기가 담긴 작품들을 많이 만들어 보아서 그럴 것이다. 마음의 여유를 갖는 것이 어른들에게 뿐만 아니라 유아들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수공으로 만든 나무 표지판을 보면서 곱씹어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 유치원은 초기 5년 바쁘게 달려왔다. 이사장님은 당장 필요한 것들을 만들고 맞추고 채우는 것에 급급했었다. 눈앞에 보이는 꼭 필요한 것들이 끊임없이 생겼다. 유아들의 신발에서 너무 흙이 많이 떨어져 숲 신발을 따로 보관하는 장소가 필요했다. 닭, 토끼, 공작 등 식구들이 늘어날 때 마다 집을 지어주어야 했다. 뿐만 아니라 유아들이 놀이할 공간을 꾸미는 것이 늘 우선되었다. 꼭 필요한 것을 우선해서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급한 것은 아니지만 의미를 부여하고 애정이 담긴 섬세한 일을 하는 것은 여유를 가질 수 있어야 가능하다. 시간적인 여유는 마음의 여유를 만들고 마음의 여유는 창의성과 자발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한다.

나 역시도 처음 유치원 교육과정을 새롭게 모두 만들어 내야 하는 상황에서는 다른 일보다 교육과정을 생각하는 것에 급급할 수 밖에 없었다. 유치원의 규칙과 체계를 수정하고, 교사연수를 하는 것이 유아들의 교육에 가장 당면한 과제였던 시기가 있었다. 그런 시기가 지나서야 연구도 이어가고, 부모님들과 생각을 공유하기 위해서 ‘교육이야기’도 쓰게 되었다. 이제는 유아들과 부모님들의 정신건강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 새로운 공부도 할 여유가 생겼다. 그동안 쌓여온 교육과정, 시설설비. 운영체계가 받쳐주기 때문에 섬세한 것까지 생각을 할 수 있다.

드물지만 우리 유치원에도 자발성과 창의성 발달 환경이 안타까운 유아들이 있다. 과한 운동을 하는 것은 오히려 신체건강 뿐만 아니라 정신건강에도 해롭다는 연구결과를 보았다. 이 이야기로 시작을 하는 것은 무엇이든 적정선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이다. 유아들의 창의성은 어떤 환경에서 가장 많이 발현이 되는 것일까? 창의성이 최대화되기 위해서는 어떤 환경이 필요할까?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창의적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모두 다른 성향과 창의성을 가지고 태어나는데 ‘사회화’ 라는 명분으로 모두 비슷하게 될 것을 요구받으면서 창의성이 닳아 없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대 사회는 창의성이 정말 중요해졌다. 상상할 수 없는 미래를 대비하면서 사람이 가장 사람다울 수 있어야 기계로 대체할 수 없기 때문에 창의성을 강조하게 된 것이다.

학자들은 “멀쩡한 창의성을 모두 깎아 버리고 나중에 찾으니 경쟁력이 없는 것”이라고 우리나라 교육을 자책한다. 정말 그렇다. 우리 유아들은 창의성이 없어지지 않게 지켜주어야 한다. 기계는 못할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지켜주어야 한다. 어떻게 하면 그것이 될까? 알맞게 자극이 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 되어야 한다.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거대한 환경을 가장 잘 제공해 주는 것이 자연이다. 자연을 보면서 관찰력을 기르고, 자연을 보면서 마음을 넓히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 환경에서 무작정 기다려 주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창의성을 지키고 발전시키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적당한 자극과 도전할 수 있는 생각을 이끌어 주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필요한 조건은 적당히 여유로운(심심한)시간이다. 늘 급하고 늘 해야 할 과제가 주어지면 창의성도 자발성도 점차 사라진다. 경험에 비추어보면 환경의 영향을 빨리 받는 유아도 있고, 조금 천천히 덜 받는 유아도 있지만 지시적이고 꽉 찬 환경에 노출되면 여지없이 창의성과 자발성은 사라지고 만다. 학교, 학원 등 좋은 것을 가르치는 곳이지만 창의성과 자발성을 발휘할 수 있는 여유를 빼앗는다면 아무것도 안하고 집에서 혼자 놀이하는 유아보다도 부정적으로 발달한다. 우리 유치원 표지판을 보면서 어른들이 환경과 적절한 자극과 여유의 가치를 기억하고 유아들의 창의성과 자발성을 지켜주길 바란다. 여유와 사랑이 없으면 수작업은 할 수 없는 일이다. 별것도 아닌 것 같은 작품이 명품으로 인정받는 것은 사람만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며 이런 일은 적당한 자극과 여유에서 나올 수 있다.

교육학박사 임은정의 2019. 11. 30. 교육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