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려다 보니 얼마 전 한 유아의 아버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나서 혼자 피식 웃었다. “유치원에서 뭐 했니?”라고 하면 “놀았지.”라고 대답을 한다는 것이다. “나가서 놀고, 교실에서도 놀고, 계속 놀기만 했다.”고 말을 한다고 하셨다. 그리고 선생님은 컴퓨터로 일을 한다고 말했다고 하였다. 이제 곧 학교도 가야 하는데 무엇을 하고 노는 것인지 궁금하다고 하셨다. 그래서 “역시 그 선생님은 최고의 수업을 하는 선생님이 확실하네요.”라고 말씀을 드렸다. 유아가 유치원에서 놀기만 했다고 기억한다는 것은 모든 수업에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잘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에 기분이 좋았다. 수업내용, 메모 등이 모두 노트북에 있으니 교실에서는 노트북을 자주 만질 수밖에 없어서 유아가 선생님이 컴퓨터로 일을 한다고 한 것도 맞는 말이다. 그 선생님이 밖에서는 아래의 일화기록처럼 놀고 있다.
숲 활동 시간, 똘이가 교사가 판매하는 물건을 보고 있다.
똘이: 우와! 딸기도 팔아요?? 딸기? 먹어도 되는 거예요?/ 교사: 네~ 그럼요~
똘이: 우와!! 돈 모아야겠다!! 돈!! (똘이가 돌멩이를 몇 개 모아서 교사에게 온다.)
똘이: 이 딸기는 얼마에요?/ 교사: 52숲입니다~~
똘이: 와!! 진짜 비싸! 몇 개 없어서 비싼 거예요?
교사: 네네~ 많이 있는 물건이 아니기 때문에 비쌉니다~
똘이: 52숲! (돌멩이를 하나씩 꺼내며) 1, 2, 3, 4, 5, 6…….20, 22.
교사: 그다음~ 23, 24. (교사와 함께 숫자를 세며 52숲을 완성하여 딸기를 산다.)
똘이: 딸기 감사합니다~
교사: 네~~ 꼭 씻어서 드세요!
똘이: 네!(딸기를 들고 수돗가에 가서 씻어 먹으며 교사에게 온다.)
똘이: 선생님! 딸기 진~~~짜 맛있어요!! 다음에 팔면 또 갈게요!!
위의 일화에서 놀이가 가지고 있는 교육적인 힘의 일부를 설명할 수 있다. 우리 뜰에 여기저기 조금씩 자라고 있는 딸기는 다른 자연물보다 귀하다. 교사가 딸기 가격을 높게 책정한 이유를 똘이는 그동안의 가게 놀이에서 깨달은 경제원리로 이해하고 대화로 확인을 시도한다. 귀하니까 비싸다는 것. 그리고 평소에 22를 넘기는 숫자 세기를 버거워했던 똘이가 딸기를 사기 위해서 교사의 도움을 받아 52까지 끝까지 세었다. 아마 첫 번째 돌을 주워 올 때는 조금만 주워 왔을 것이다. 귀한 물건을 사기 위해서 지불해야 하는 돌의 숫자가 많고 번거로워도 열심히 움직이며 돌을 줍는 수고를 했을 것이다. 이것이 모두 놀이였기 때문에 재밌는 과정이고 지루하지 않은 공부가 된다. 똘이가 얻은 교육결과로 당장 좋은 대학에 가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똘이가 나중에 수학을 할 때 숫자가 지겨운 것이 아니라는 수에 대한 긍정적인 감정이 조금 쌓였을 것이다. 경제를 공부할 때 ‘아, 맞아. 내가 딸기 사려고 엄청 많이 돌아다니며 돌을 주웠었지?’라고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교사와 좋은 감정으로 예쁘게 대화하며 놀이한 것이 사회관계의 즐거운 경험을 쌓으며 세상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하나 더 추가하게 되었을 것이다.
만약 이 모든 것을 책을 펴놓고 책상에 앉아서 판에 박힌 공부를 했다면 어떨까? 귀한 것은 비싸다고 아무리 설명해도 마음에 와 닿지도 않았을 것이고 관심도 갖지 못했을 것이다. 숫자를 22까지 세는 똘이에게 억지로 52까지 세어 보도록 했을 때 똘이의 표정과 감정을 느껴보면 분명히 지루하고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보였을 것이다. 지루해하는 똘이를 보는 교사는 “조금만 참고 세어보자.”라고 말을 하더라도 시간이 갈수록 슬슬 화가 나기 시작할 것이다. 교사가 유아들의 발달적 특성을 모르거나,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매스컴에서 접하는 비상식적인 모습을 보이게 되는 것이다.
책상에 앉아 있어야 한다는 것 자체가 유아들의 발달과 전혀 맞지 않는 활동이며 도움도 되지 않는 방법이다. 학교에 다니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진 산업혁명 이후에 통제가 가능한 연령(한국은 만 6세)을 정하여 입학시켰고, 그때부터는 교수자가 지시하고 피교육자는 받아들이는 학습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유아교육이 필요하다는 세계적인 요구에 의해서 그보다 낮은 연령, 낮은 발달단계에 있는 유아들이 기관에서 교육을 받게 되었다. 당연히 교육방법이 달라야 하겠지만 우리나라는 연령과 기대수준만 낮추었을 뿐 새로운 방법을 적용하지 못했다. 춤추고 노래 부르면서 암기한다고 해서 놀이식 교육이 아닌데 그나마 유아들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런 방법을 적용하는 것으로 안다. 다음에는 ‘놀이’라고 할 수 있는 조건과 각 학계의 놀이해석을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는 어른들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야겠다.
교육학박사 임은정의 2021. 05. 27. 교육이야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