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누구나 한 교실에서 한 가지 내용으로 수업을 했다. 그러나 그것은 옳지 못하다. 누구에게나 똑같은 내용이 같은 속도로 학습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절대 없을 것이다. 나는 어떤 사람이 말했듯이 학생들 데리고 실험하는 사람이다. 교육은 늘 내 학생에 맞추어서 도전하고 실험하며 방법을 찾아가야 한다. “여기부터 저기까지 끝내야 해! 딴짓하지 마라. 우리 반은 진도가 제일 느리다!” 학생들이 전 단계를 이해했는지,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는 관심사가 아니었다. 진도 자체가 목표였다. 이런 수업 방식은 교수자 중심이다. 교사가 자신의 할 일에 집중하는 것이다.
나는 학생들에게 구구단을 암기하도록 하지 않는다. 구구단을 암기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하는 교육과정도 있고, 실물로 만지면서 찾아가는 교육과정도 있을 수 있다. 그저 우리는 이 나라에 태어나서 암기 먼저 한 것이다. 실물로 하면 오래 걸리지만, 덧셈의 개념과 함께 익혀가니까 결국에는 늦지 않게 된다. 오히려 빠르고 손을 움직이면서 사고과정을 겪어내므로 수를 내면화한다. 이렇게 누군가는 느리다고 말하는 방식으로 11세 학생들과 고등학교Ⅰ수준의 과학을 끝냈다. 선행학습을 하려던 것은 아니지만 함께 강의를 듣고 정리하면서 오다 보니 여기까지 왔고, 그중에서 가장 기본이 된다고 생각하는 화학원소를 그리고 만들고 동생들과 돌을 놓으면서 같은 내용이지만 다른 방법으로 여러 번 반복하였더니 화학 반응식은 어려움 없이 스스로 이해해 갔다.
고등학교 교실이었다면 하루 이틀이면 끝낼 내용이었겠지만, 나와 학생들은 시간이 많으니 하고 또 하면서 머리와 마음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이렇게 스스로 생각하면서 하는 습관을 유아기부터 만들어 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유아기에 교사가 지시적으로 가르치고 학습시켰다면 절대 이렇게 탄탄한 기초로 지식을 습득할 수 없었을 것을 확신한다. 원소 주기율표를 몸으로 느끼고 머리로 이해하도록 활동을 제안만 하고 돕지는 않았다. 전자껍질, 원자핵, 중성자 등의 용어와 친해지고 의미를 설명하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또한 많은 독서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학교와 학원에서 시키는 것만 따라야 하고, 늘 진도에 쫓기면 책을 읽을 수가 없다.
주기율표의 전자껍질을 일일이 손으로 그리게 하고, 그림으로 표현하게 하고, 나아가 야외 활동에서 자연물로 그려보도록 하는 것이다. 돌멩이를 활용해서 “이게 산소, 이건 수소, 그리고 이건 헬륨!” 다 각도로 원소를 배우며 학생들은 스스로 “아, 이게 이런 원리구나!” 하고 깨닫게 된다. 이후에는 개별 학습자의 상태에 따라 다음 단계로 나아간다. 주기율표를 잘 이해한 학생들은 화학 반응식으로 넘어가고, 서로 도와서 시도하며 다시 학습을 연결한다. 중요한 건, 같은 내용을 다양한 방법으로 접근하거나, 같은 방법을 통해 새로운 내용을 가르치는 학제 간 다양성을 실현하는 것이다. 원소 주기율표는 그저 외우는 것이 아니다. 처음에는 용어에 익숙해지고, 손으로 그리고, 자연물을 활용하고, 서로 의견을 나누며 적극적으로 탐구하게 할 때 비로소 그 지식은 생명력을 얻는다. 그리고 그 과정 안에서 배우는 것은 단순한 과학적 지식뿐 아니라, 스스로 탐구하고 이해하며 성장하는 법이다. 그러나 아직 대중의 의식은 갈 길이 멀다.
내 책 강연회에서 한 어린이집 원장이 자신을 소개하며 질문을 던졌다. “책을 보니 여자아이들에게 치마를 못 입게 한다던데요. 여성성을 드러내는 걸 얼마나 좋아하는데, 그걸 못하게 하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저희 어린이집에서는 한 달에 한 번씩 아이들이 마음껏 뽐낼 수 있는 날을 만들었어요. 정말 예쁘게 꾸미고 와서 자신을 표현하도록 하고 있어요. 그래야 하지 않나요?”
그 말을 듣고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혔다. 하지만 차분하게 대답을 이어갔다. “성인이 된 여성이 상황에 따라 여성스러운 옷을 입는 것과, 유아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외형을 꾸미도록 가르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입니다. 어릴 때부터 남의 눈을 의식하는 태도를 배우면 자기 내면의 성장에 방해가 될 수 있어요. 더 나아가 성 평등 의식이 악화될 위험도 있습니다.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자신을 특정한 틀에 가두거나, ‘나는 예뻐야 하니까 힘든 일은 하지 않아도 돼’라는 사고방식이 생겨서는 안 됩니다.”
이 설명을 하며 마음 한편으로는 너무 속상했다. 영유아들에게 이런 사고방식을 심어주는 원장의 교육 철학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고민해 보았다. 어쩌면 그 원장은 본인이 살아온 환경과 배워온 가치관에 깊이 영향을 받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배경에서는 자신의 관점을 바꾸는 일이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교육자는 더 나아가야 한다. 만약 내가 잘못된 방식으로 교육을 받았다면, 최소한 내가 가르치는 미래 세대만큼은 새로운 시대와 미래에 적합한 방식으로 교육하겠다는 진취적인 사고가 있어야 한다. 진취적이고 기존에 시도되지 않은 길을 열어가는 것, 이것이 진정한 교육의 목표다. 그리고 학생들에게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며, 남의 시선이 아닌 자기 내면의 힘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 진도에 쫓기지 않고, 학생들에게 충분한 여유를 주는 것이 학습과 배움의 참모습이다.
교육학박사 임은정의 2024. 12. 03. 교육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