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와 수업 대한 이야기를 부모수업으로 준비하면서 새로운 연구들을 찾게 되었다. 아직 입학도 하지 않은 유아의 부모님들을 대상으로 왜 굳이 학교와 수업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지 먼저 설명할 필요가 있겠다. 유아들이 다니고 있는 유치원은 ‘처음학교’라고 유아교육학자들은 주장한다. ‘일정한 목적ㆍ교과 과정ㆍ설비ㆍ제도 및 법규에 의하여 계속적으로 학생에게 교육을 실시하는 기관’이 학교이니 유치원은 처음 학교가 맞다. 무엇이든 시작 반이라고 할 만큼 시작이 중요하므로 유치원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학교이다.
유치원의 목적, 유치원의 교육과정, 유치원의 환경이 어떠해야 하는지 이해하기 위한 첫 번째로 학교전반의 중요성과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학교를 주제로 수업을 준비했다. 학교의 목적이 정치적, 사회적, 개인적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어머 어마한 힘을 발휘한다. 서울대 김종서 교수의 1976년 글에서 놀라운 힘을 발휘하는 신앙심과 학교를 비교한 것을 이번에 처음 접하면서 나도 놀라웠다. 초등학교 6년 약7,200시간을, 중학교 졸업까지는 약 10,800시간을 학교에서 보내게 되는데 일요일 빠짐없이 신앙생활을 하는 것으로 계산하면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160년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고, 중학교를 졸업하면 200년 신앙생활을 하는 것과 맞먹는 시간이라는 것이다. 학교가 만약 어떤 의도를 가지고 학생들을 변화시키고자 한다면 놀라운 힘을 발휘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빗대어 강조한 것이다. 그래서 내가 유치원의 시간을 계산해보니 3년간 약 3500시간을 보내는 것이 정규과정시간이고 방과후까지 한다면 초등학교 6년과 맞먹는 7000시간정도가 된다. 그런데 유아기의 발달특성으로 보면 초등학교나 중학교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유치원은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다. 유아기는 성향을 형성하는 시기이고, 선생님의 말과 행동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기 때문에 단순비교가 안 된다.
그렇다면 학교가 정치에 어떻게 영향을 받는지 생각해 보자. 일기쓰기, 운동회, 조회가 일제강점기에 일본에 의해서 이용되었고, 이를 이어받아서 유신시대에 적극 발전 시켰다고 한 사회학자가 논하였다(허은, 2015). 교육학을 전공한 나는 창피함과 더불어 공감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교육과정과 교과서까지도 정치적 힘을 발휘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기는 학생들의 사상을 규제하였고, 운동회는 군대식의 무조건 복종을 위한 수단이 되었고, 조회를 통해서 정치의 당위성을 알렸으며 애국심 고취를 위해서 수학여행지를 선택했다.
지금 우리와는 상관이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왜 답습하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지금은 각 활동의 목표가 무엇인가? 매우 소외된 계층이 아니라면 여행을 늘상하는데 왜 현장학습은 꼭 가야하는가? 일기 검사가 아니면 인성교육을 시킬 수 있는 방법 아니 일기 검사가 인성교육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인가? 운동회를 하면서 학생들이 직접 운동을 하는 시간은 길어야 20분인데 하루 종일 운동장에서 무엇을 얻고자 하는 것일까?
사회적 관점에서 학교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일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는 경제적 기능이다. 그 다음은 선발의 기능이다. 이미 학교의 이런 기능은 모두 상실된 시대에 살고 있다. 선발을 위해서 경쟁을 부추기고 개인의 행복은 아랑곳 하지 않고 살았으나 고학력 실업자의 불행함이 가득한 이유는 무엇일까? 자신의 학부 전공을 살려서 살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15%정도라는 통계가 있다. 그렇다면 85%는 대학까지 공부한 시간을 다른 곳에 썼다면 어땠을까?
그래서 세계는 이제 개인 내적인 학교기능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고 대부분의 선진국(우리가 알만한 나라)들은 학교와 교육의 변화를 이미 하고 있든지 적어도 노력하고 있다. 우리의 학교체제를 만든 일본조차도 변화를 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리 늦는 것일까? 그 원인을 지나친 교육열에서 찾을 수 있다. 일제강점기, 빠른 산업화를 거치면서 학력만이 살길이라고 배웠던 세대의 생각이 고착되었다. 한 사회의 의식이 바뀌는 것이 가장 힘든 일이라는 것이 HRD(인적자원개발)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생각이다. 자신의 방식을 후세대에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 원인은 돈벌이에 학생들을 이용하는 모든 세력들의 음모 때문이다. 혼신을 다해 포장하고 설득하고 사기를 친다.
이제 부모님들이 각자 아이들을 지켜야 한다. 부모님만큼 내 아이를 사랑하는 사람은 없다. 모든 교육을 할 때 적어도 아래의 다섯 가지를 생각하고 결정해 주어야 한다. 아이들은 결정을 할 수 없는 미성년자이기 때문이다. 첫째, 발달에 적합한가? 둘째, 내 아이가 지금도 미래도 행복할 수 있는 교육인가? 셋째, 교육의 목적이 순수하게 내 아이를 위한 것인가? 넷째, 교육의 방법이 새 시대에 적합한가? 다섯째, 교육의 결과가 열려있는가? 이렇게 다섯 가지를 위해서 좋은 수업, 좋은 교육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다음에 생각해 보기로 한다.
교육학박사 임은정의 2018. 05. 03. 교육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