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수업 공개 때 마다 장점과 단점 사이에서 갈등을 한다. 수업을 공개하는 목적은 유치원 수업을 이해하고 가정과 유치원의 활동이 연계되는 것이다. 가정과 유치원의 연계는 교육결과의 수준과 직결된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그날은 수업에 지장을 받는다. 유아들은 당연히 흥분하고 평소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지난 글에서 유아들에게 바람직한 활동 다섯 가지를 제시했었다. 첫째, 발달에 적합하기. 둘째, 미래를 내다보며 교육하기. 셋째, 교육의 목적은 순수하게 유아에게 맞추기. 넷째, 교육의 방법을 시대에 적합하도록 하기. 다섯째, 교육의 결과를 유아들에게 맡기기. 수업공개 전에 수업을 보는 기준을 알리고 함께 고민하자는 의미가 있었다.
그렇다면 학교가 정치에 어떻게 영향을 받는지 생각해 보자. 일기쓰기, 운동회, 조회가 일제강점기에 일본에 의해서 이용되었고, 이를 이어받아서 유신시대에 적극 발전 시켰다고 한 사회학자가 논하였다(허은, 2015). 교육학을 전공한 나는 창피함과 더불어 공감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교육과정과 교과서까지도 정치적 힘을 발휘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기는 학생들의 사상을 규제하였고, 운동회는 군대식의 무조건 복종을 위한 수단이 되었고, 조회를 통해서 정치의 당위성을 알렸으며 애국심 고취를 위해서 수학여행지를 선택했다.
우리 유치원의 정체성은 숲에서 계획 없이 놀이하는 것이 아니다. 유아들이 스스로 사고하고, 가능한 모든 경험을 처음부터 끝까지 총체적인 흐름으로 느끼는 것이다. 즉, 자신만의 지식을 구성하는 것이 우리 유치원의 정체성이다. 최근 뇌 과학이 많이 발전하면서 뇌의 발달 과정에 맞춘 교육 프로그램을 연구하는 신경교육학(neuroeducation)이라는 신생 학문도 생겨났다. 유아들이 직접 참여하고 직접 움직이는 것이 암기보다 중요하다는 것이 뇌 과학으로도 밝혀지고 있다. 유아기는 시냅스가 발달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학습하는 방법, 사고하는 방법의 발달이 가장 중요하다. 이런 시기에 지시적인 활동만 하고 스스로 결정하는 기회가 적으면 수동적이고 사고하기 싫어하는 사람이 되기 쉽다.
그래서 이야기 나누기도 유아들의 참여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참여를 위해서 무작정 질문만 하면 “모르겠어요” 라고 하거나 가만히 있기 마련이다. 각 연령에 맞는 방법과 도구를 준비하는 것은 유아들이 참여하는 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함이다. 봄반은 곤충의 일부만 보고 몸으로 표현하기, 여름반은 스무고개에 맞추어서 앉았다 일어났다 가설검증하기, 가을반은 토론해서 주제망 만들기 등의 참여 방법을 채택했다. 발달에 적합하도록 구성하고 스스로 사고하는 경험을 주기 위해서 발문과 방법에 검증을 거듭한다. 이렇게 활동하면 때론 더디게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오히려 빠른 길이라고 확신한다. 길을 잘못 들어서 돌아가야 하는 일이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가까이는 사춘기에, 좀 멀리는 대학에서 자신의 길을 찾지 못하고 부모님과 갈등하는 사람으로 자라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교육학박사 임은정의 2018. 05. 17. 교육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