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 유아들의 놀이는 진화해야 한다.

링크가 복사되었습니다!

비가 거의 한 달간 오지 않아서 우리 옥수수를 모두 태워버리더니 이제 정말 신나게 비가 내린다. 비 피해를 입은 곳이 있다면 너무 죄송한 말이지만 우리 유아들은 자연에 동화되어간다. 비가 오면 오는 대로 재밌는 놀이를 찾아가는 유아들을 보면서 감사함과 자연에 대한 경외심이 생긴다. 난 자연의 소중함을 모르는 사람이었는데 자연의 소리는 시끄러워도 거슬리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야 느낀다. 유아들의 이야기가 정말 예뻐서 기록해본다.

선생님 빗소리 좀 들어봐요. 투두두두두두두두 너무 아름다워요/ 두두두두두 (손으로 손바닥을 치면서)/ 쉬잇/ 두두두두두/ 똑똑똑/ 이이이이이이잉/ 쿠다다다당/ 톡톡톡톡톡/ 토도도도

아래의 글은 한 선생님(남자)의 기록이 아름다워서 소개해본다.

유아들과 같이 빗소리를 듣기 위해서 오전간식을 먹고 바로 숲에 나갔다. 아무도 없는 시간에 우리반만 있는 숲 놀이터에서 유아들과 함께 빗소리를 감상해보았다. 아뜰리에 밑에서 비가 아뜰리에를 두드리는 소리와, 모래놀이터에서 비가 나무와 모래를 두드리는 소리들을 비교해보면서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숲에서 내려오는 물길과 같이 놀이를 하다 보니 물길이 어디서 오는지 궁금하다고 하여 유아들과 같이 물길을 따라 올라가보기도 하였다. 넓은 숲 놀이터에 우리반 밖에 없다보니 자연을 독점한 기분이 들었다. 오늘 하루만큼은 친구, 언니, 오빠, 동생들과의 상호작용 대신 자연과의 상호작용이 좀 더 강화된 하루였다.

똑같이 물길 만들기를 하여도 봄, 여름, 가을 반은 다르다. 봄 반은 선생님의 도움을 청하고 막연하게 물길 만드는 것만으로도 신이 난다. 그래야 건강하고 자발성이 높은 유아이다.

00 : 제가 아까 봤는데 2층에서부터 내려와요! (국자를 들며) 우리 물길 더 만들어 봐요. 선생님이랑 나랑!

교사 : 무슨 물길을 만들면 좋을까요?

00 : (물이 흐르지 않는 땅을 가리키며) 물이 안 흐르는 쪽에서 만들어요

가을반이 되면 스스로 힘을 모은다. 협동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동안 알게 된 지식들을 동원하여 재밌는 놀이를 만들어 내는 능력이 더 많이 발휘된다. 이것이 인지적 자발성이다.

00: 와! 물 엄청 많아! 우리 물길 만들자!

&&: 와! (물이 하수구로 흐르는 모습을 보며) 물이 여기로 다 사라지고 있어!

##: 그러면 필요한 물은 두고 안 필요한 물 여기로 빠지게 물길을 만들자!

(땅을 파는 유아, 판 땅에서 나온 진흙을 옮기는 유아, 물을 하수구 쪽으로 보내는 유아가 역할을 나누어 함께 놀이한다. 모든 어린이들이 물길 만들기에 참여하며 업무 분담을 하는 모습을 보였다.)

놀이가 강조되면서 부모님들에게 오개념이 생기는 듯하다. 연령이 어떻든지 무작정 뛰어놀기만 하면 좋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신 듯하다. 놀이를 하는 것은 정말 중요한 유아들의 삶이고 앎이지만 발달단계에 따라서 다르게 지원되어야 하며 놀이의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 가장 우선되어야 하는 놀이는 신체적 자발성이지만 이를 밑거름으로 사회적 자발성이 발휘되어야 하고 가을 반 쯤 되면 인지적 자발성이 생기도록 지도해야 한다. 모든 단계에서 필요한 것은 즐거움이다. 교사가 제공하는 모든 활동들이 놀이가 될 수 있음을 최근 연구에서 알게 되었다.

교사가 제안하는 활동들이 유아가 직접 생각하고, 실행할 수 있도록 제시되고 유아들의 의견을 적극 수용하는 교사의 자세가 유아들의 놀이성을 발달시킨다. 요즘 가을반이 초기국가를 하고 있는데 유아들의 놀이가 풍성해졌다. 유아들과 교사가 이야기 나누기하는 내용은 사실여부 보다는 추론을 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지식과 사실은 나중에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고, 수정할 수 있지만 유아기의 추론 능력은 나중에 발달시킬 수 없는 소중한 자산이 된다.

    • 왕이 없는 건 사람들이 서로 돕고 좋은 물건도 나누어 쓰고 공평하게 하려고 그런게 아닐까?
    • 기름진 땅? 사람들이 농사를 지을 때 좋은 땅이 필요하니까… 기름을 넣었나?
    • 그게 아니지~ 땅을 잘 관리하는 그런거지 / 그래~ 맨날 땅을 관리한거야.
    • 민며느리제? / 남자가 여자를 왜 데려가지? / 여자가 얼마 없었나? 남자들은 결혼 하고 싶은데 여자들은 하기 싫은 거야. 그래서 그런 것 아닐까?
    • 저 아까 밥 먹다가 생각했는데~ 그 높은 사람이 죽으면 그 집에 같이 사는 사람이 다 죽었잖아요! 순장 이유를 알겠어요. 하늘나라 가서 모두 다시 만나서 다시 행복하라고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런데 우리 유치원에서 아무리 노력을 기울여도 즐거움과 자발성의 변화가 더딘 유아들이 있다. 가정에서 우리 유치원의 교육철학을 받아들이기 힘들면 유아들도 변화하기가 힘들다. 정말 안타깝다. 원장으로서 최선을 다해 정확한 정보와 이론을 알리려고 노력을 하는데도 나의 노력이 부족한가 싶다.

교육학박사 임은정의 2018. 08. 30. 교육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