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바지 입은 여아와 머리 묶은 남아

링크가 복사되었습니다!

우리 유치원에 있는 강아지의 모든 물품은 처음부터 간디는 파랑색, 다빈치는 빨강색으로 정했다. 강아지와 처음 노는 유아들은 “간디가 남자예요?”라고 묻는다. 그러면 익숙해진 유아들이 “아냐, 파랑색 간디가 여자야” 라고 알려준다. 우리 유치원 여아들은 분홍색 치마를 입고 싶었을 것이다. 남아들은 로봇 만화가 가득한 옷을 입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점차 관심사가 달라져 간다. 유치원에서까지 놀이주제에 몰입하지 못하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물질에 집착하거나 성역할에 편견을 갖는 것은 사회성, 자존감, 자기조절력 발달 등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모든 교사가 노력한다.

성역할에 대한 편견과 성정체성은 별개의 문제이다. 이제는 사냥을 하는 시대가 아니고 농사조차 기계가 하는 시대에 여자 남자가 아닌 개인의 역할을 찾아야 행복할 수 있다.우리 유치원에서 치마를 환영하지 않고 외형을 강화하지 않는 것은 안전의 문제도 있지만 더 큰 목표는 성역할에 대한 제한적 사고를 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근래에 다국적 기업의 광고에서 ‘여자답다’를 해석하는 방식에 대한 연령별 차이를 보여주었는데 10세 이하의 여아들은 성의 개념을 넘어 적극성을 보여준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여자 유아들도 장 의존적 사고를 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내가 성역할 편견을 갖지 않도록 노력하고 검사를 하는 것은 창의성, 인지, 언어 발달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가 많기 때문이었는데, 새롭게 자존감과의 관계를 발견하고 있다. 자세한 것은 연구를 해야 알겠지만 현상적으로는 확실히 느껴진다.

“선생님 저는 못하겠어요.” “저는 원래 못해요” 이런 말을 하는 유아들이 몇 명 있다. 이런 말을 했다고 선생님이 고민을 써 놓으면 나는 ‘이 유아의 성역할 검사결과와 자기조절력 검사결과는 어떤가요?’ 라고 질문한다. 백발백중 낮은 성향이었다. 타인의 시선에 연연하는 자존심 높은 여아들은 성 평등 인식이 낮다는 것을 발견했다. 유아들이 정말 못해서 ‘못하겠다’고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다른 친구들 보다 내가 못할까봐 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친구보다 못하는 것이 두려운 것은 자존심이 강하기 때문이다. 자존심은 비교대상을 두거나 타인의 시선에 맞추어 높아지고 싶은 마음이다. 자존심은 자신의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더불어 자신이 행복할 수도 없다. 반면에 자존감은 타인의 시선이나 경쟁 없이 스스로 소중한 사람이라는 믿음이다. 자신의 감정과 능력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자존감이다. 자존심이 높은 유아들은 자존감이 낮을 수 밖에 없다. 유아기는 성향이 결정되는 중요한 시기이기에 자존심이 아닌 자존감이 가득 형성되어야 한다. 자존감은 성장하면서 어려운 상황을 겪어도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거름이 되어준다.

성인들이 알게 모르게 하는 말과 사고가 유아들의 자존감을 좌우한다. “와 잘했다. 넌 역시 최고야.” 이 어린이는 잘해야 한다. 그래야 최고가 되고 사랑을 받을 가치 있는 어린이이다. “야 예쁘다. 공주 같은 딸이네. 얌전하기도 하네” 이 어린이는 예뻐야 하고 그림처럼 얌전할 때 가치 있는 어린이가 된다. 그러나 모든 유아들은 어른의 눈에 적절하지 않아도 사랑받아야하고 가치 있는 존재이다.

유아가 실수를 할 때 “다치지 않았니? 누구나 실수할 수 있어.” 와 “거봐 엄마가 하지 말랬지!!”하는 말 중에서 더 효과적인 훈육이 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미 일어난 일을 가지고 유아들을 일벌백계하는 것은 아무 의미도 없이 감정만 상하고 자존감을 낮출 뿐이다. “네가 아무리 실수를 해도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은 변함이 없어.” 라고 말해주어야 한다. 그렇다면 성평등 인식을 높이려면 어떤 환경이 필요할까? 일단 어머니와 아버지의 역할 협동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내 딸이 곱게 있다가 시집만 잘 가면 되고, 내 아들이 가정에서 권위를 보여주기를 바라지 않는다면 딸이 예쁘기만을 바라거나 아들이 공부만 잘하면 모두 용서되어서는 안된다. 어머니가 드라이버를 들고 아버지가 행주를 들어보는 것도 좋겠다. 어머니는 장 의존적이고 아버지는 권위적인 모습은 성역할, 자존감, 사회관계, 창의성 발달에 도움이 안 된다. ‘여자가’ ‘남자가’ ‘예쁘게’ ‘씩씩하게’ 이런 언어는 성평등 인식을 방해하여 자존감을 낮추는 가장 대표적 단어들이다. 색깔에 대한 고정된 사고도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유아들에게는 영향을 미친다.

자존감이 높아야 무엇이든 도전한다. 도전하다 실패해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자존감이 높아야 자신의 능력과 상관없이 자신을 사랑한다. 자신을 사랑해야 친구들도 주위사람도 돌아보는 여유가 생긴다.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서는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버리는 것이 필요하다.

교육학박사 임은정의 2016. 05. 11. 교육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