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놀이를 하는 것은 자발적이어야 한다. 이것은 놀이의 정의, 놀이의 의미를 모두 포함하는 진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정의에 사로잡혀서 놓치는 것이 하나 있다. 누구도 개입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놀이를 사회관계기술로 정의한 파튼에 따르면 지켜보기, 혼자놀이, 병행놀이, 협동놀이, 연합놀이의 순으로 발전해 간다고 하였다. 그 당시의 유아 발달과 지금 유아들의 발달을 비교해도 이런 과정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법칙이 아니라 이론이기 때문이다. 절대 변할 리가 없는 것이 법칙인 반면 조금씩 달라질 가능성이 있는 것이 이론이다.
파튼의 이론은 내가 30여년의 관찰로 그 순서는 법칙에 가까워 보인다. 단지 그가 정의한 발달 연령은 점점 빨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어떠하든 유아들의 놀이는 신체발달과 사회관계기술의 발달에 따라서 조금씩 달라지며 도움도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 법칙이라고 생각한다. 아래의 사례는 파튼의 놀이단계에 따르면 겨우 병행놀이를 해야 하는 연령의 우리 여름반 유아들이 규칙을 따르고, 함께 협동놀이를 하는 사례이다.
자유놀이 시간에 유아1, 유아2, 유아3, 유아4가 함께 윷놀이를 하고 있다.
유아1: (콘플 윷을 던지고 한 개만 뒤집어진다.) 어! 한 개 뒤집어졌다. 한 칸!
유아2: 한 칸은 도라고 하는거야.
유아3: (콘플 윷을 던지고 하나도 뒤집어지지 않는다.)
유아1: 음, 하나도 안 뒤집어지면 뭐지?
유아2: 하나도 안 뒤집어졌으니까 모! 다섯 칸 가는 거야!
이렇게 규칙을 이해하고 지키는 것은 꾸준히 자발적인 경험을 제공하고 놀이의 종류를 다양하게 함께 고민하는 교사, 부모님과 같은 성인의 몫인 것이다.
교육학박사 임은정의 2019. 10. 06. 교육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