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즘 “IB 학교 학교장의 성찰문”을 읽으며 IB스러운 학습이 무엇인가에 대해 성찰한다.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논제는 내용이 아니라 방향과 방법이라는 사실 때문에 내가 IB를 좋아하게 되었다. 무엇을 가르치는가 보다 어떻게 가르치는가에 대한 분명한 가이드라인이 있다는 점, 교육의 철학이 단단하게 서 있고 그 철학이 방법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 끌렸다. 탄생에서 학령기까지 학습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과업이다. 그 학습은 신체, 언어, 인지, 정서, 사회관계 전 영역을 포함하는 전인적 성장이다. 이 시기를 허투루 보내서는 안 된다.
나는 묻고 싶다. 그 학습을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시키고 있는가. 일제강점기와 다름없는 주입식으로(테블릿, 놀이로 하는 방식도 포함) 강요하거나, 그 방식이 폭력적이라고 느끼는 부모들은 아예 학습에 대한 기대를 놓아버린다. 그러다가 지식이 필요해지면 95%는 주입식 방법으로 통일한다. 정답을 빠르게 알려주고, 틀리지 않게 관리하고, 앞서가게 만드는 방식, 그리고는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그런 방식으로는 스스로 질문하고 탐구하는 사람(Inquirers)을 만들 수 없다.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적응하며 살아남는 사람을 만들 수 없는 것이다. IB스러운 학습은 스스로 질문을 만들고 탐구하며 찾아가도록 돕는 것이다.
IB 월드스쿨 심사를 준비하며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는 ‘평생 학습자’였다. 이 한 단어가 모든 것을 설명한다. 앞으로 살아남는 사람은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라 배우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다. 사회가 어떻게 변하든 기술이 어떻게 바뀌든 “나는 오늘 어제 몰랐던 것을 하나 배웠다”는 기쁨을 아는 사람만이 지속적으로 성장한다. 그래서 나는 주입식 교육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무조건적인 ‘학습방임’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즐겁다는 이유로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그로 인해 불행해진다. 백치미를 자랑하는 무지의 평온은 불행이다.
진짜 교육목표는 스스로 배우는 즐거움을 아는 사람으로 키우는 것. 그것이 IB스러운 교육이다. 95%가 스마트폰에 노출되어 있고 95%가 주입식 교육을 하면서 “모두 다 그러니까 괜찮다”라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깨어 있는 5%가 존재한다. 그들은 자녀를 스마트폰에게 맡기지 않는다. 그들은 결과보다 태도를 본다. 그들은 “오늘 배운 것이 즐거웠다”고 생각하도록 가르친다. 모두가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옳은 기준이 되지는 않는다. 다수가 선택한 길이 항상 옳은 길은 아니다. 배움을 소비하는 사람이 아니라 배움을 창조하는 사람을 키워야 한다. IB스러운 교육은 질문하는 태도이며 배우는 방식이며 삶을 대하는 방향이다. 그리고 그 방향을 선택하는 순간 교육은 결과 경쟁이 아니라 성장의 여정이 된다.
교육학박사 임은정의 2026.02. 23. 교육이야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