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을 희망하시는 부모님들의 질문을 받아보면서 오 개념의 범주를 많이 알게 되었다. 그중에 하나가 “특기 교육이 왜 없나요?”, “교재는 무엇을 쓰나요?”이다. 나 역시도 예전에는 위계와 체계가 있는 지식을 배웠고 그대로 믿었다. 교과서는 체계적인 학습의 수단으로 의심 없이 받아들였고 체계적인 내용의 학습이 편했다. 이 내용을 보다 더 간략하게 정리한 학습지는 그것을 강점으로 영업을 한다. 그러나 바꾸어 생각해보면 이만큼 무모하고 무서운 것도 없다. 학습자는 체계적으로 정리된 내용을 그대로 따라가서 뇌의 사용범위를 최대로 절약하게 되므로 새로운 지식을 스스로 체계화하는 것보다 훨씬 쉽고 편하다.
얼마 전 각 분야에 최고 경지까지 오른 사람들의 삶을 조사한 연구가 네이처지에 실렸다. 최고가 되기까지 엔트로피(무질서의 정도)가 매우 높은 공통점이 있다고 보고하였다. 즉, 쉬운 길이 아니라 개방 체제(open system)에서 혼란을 겪으며 새로운 것을 이루는 사람들이 성공하는 시대라는 것이다. 이렇게 장황하게 교육체제를 이야기하는 것은 유아기부터 체계적이고 구조화되어 있는 학습을 시키는 것이 얼마나 무모하고 무지한 행동인지 말하고 싶어서이다.
성인이 아닌 유아들은 특히 이것저것 무질서한 지식과 사고과정을 섞어서 자신이 결합하고 새롭게 창작하는 즐거움을 알아가야 한다.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이라도 다른 사람이 만들어 놓은 것을 사용하면 교사의 역량은 반감된다. 책을 가지고 질서정연하게 학습하면 유아에게는 교육이 아니라 노동이다. 그래서 석성숲유치원은 학습지나 교재는 사용하지 않는다. 또한 교재와 프로그램을 들고 오는 특기강사의 수업도 하지 않는다. 석성숲유치원은 유아들이 잔뜩 혼란한 과정을 거치고 나름대로 정리를 해가는 교육을 선택한다.
수학을 포기하는 시기가 3학년 2학기부터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했다. 수학은 천천히 자신의 느낌대로 이런저런 경험을 하면서 사고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그런데 현재 한국은 유아기부터 너무 친절하게 정답 찾기를 알려주었기 때문에 사고의 과정을 발전시킬 기회를 빼앗겼다. 수학을 재밌게 할 수도 잘할 수도 없다. 이것이 체계적이라고 생각하는 교육의 민낯이다.
교육학박사 임은정의 2021. 11. 04. 교육이야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