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부모님들이 영유아 양육 교육을 이수하면 지원금을 지급한다는 뉴스를 보았다. 서초구에서 실시하는 기초단체 수준의 정책이지만 매우 반가운 소식이었다. 영아기에 가정에서 성인들과 밀접하게 지내는 것이 가장 좋은 교육환경이기 때문이다. 비고츠키(구성주의 이론을 연구한 러시아 학자)가 말한 성인 또는 유능한 또래에 의해서 발달이 촉진된다는 이론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만 3세 이전에는 성인의 세심한 보살핌이 필요한 시기라는 것은 누구나 공감하는 사실이다. 36개월 이전은 특히 성인의 세심한 보살핌이 중요한 시기이다. 이 시기 영아들에게 성인은 개별적인 보살핌과 따뜻하고 많은 말을 해 주어야 한다.
말을 배워야 하는 시기의 영아들은 또래에게 배울 수 없다. 대부분의 36개월 이전 영아들은 유창한 언어를 구사하기 어렵기 때문에 유능한 또래의 영향은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사회성도 마찬가지이다. 36개월 이전의 영아들은 친구가 곁에 있는 것을 좋아하지만 함께 놀이하는 것은 아니다. 각자의 장난감으로 각자 놀면서 옆에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이 정도의 발달단계를 가진 영아들은 유능한 또래가 아닌 영아만 돌봐줄 수 있는 친근한 성인의 역할이 강조된다. 영아와 함께 있는 성인이 일상에서 상황에 적합한 언어를 다양하게 표현해 주는 것이 언어발달에 가장 좋은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앞서 말한 조부모에게 수당을 주는 양육정책이 바람직한 대안이라는 것이다. 36개월까지는 부모님이 돌보기 어려운 경우 친조부모가 아니더라도 교육받은 가정에서 돌볼 수 있도록 제도가 마련되길 바란다. 이미 이런 정책을 시행하는 교육선진국도 있다.
36개월 이후에는 성인, 유능한 또래와의 관계가 많이 작용한다는 사실이 학문의 발달로 밝혀졌다. 내가 유치원 교사를 시작하던 시기에 배운 지식은 유아들은 일찍 귀가해서 쉬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후 적기교육의 중요성이 연구되기 시작했다. 36개월 이후 유아들에게 유능한 또래는 매번 달라진다. 함께 놀면서 어떤 친구에게서는 정리하는 방법을 배우고, 어떤 친구에게서는 삽질하는 방법을 배우며 어떤 친구에게서는 대화하는 방법을 배운다. 그래서 나는 교사들에게 한 친구하고만 놀려고 하는 유아를 관찰하고 이런 행동을 지양하도록 지도하라고 한다. 상황마다 친구와 협력하고 스스럼없이 배울 수 있는 것은 높은 자존감을 바탕으로 하므로 자존감도 키울 수 있다. 더불어 유아에게 성인(유치원 교사를 포함한)은 친근함을 바탕으로 하는 일상이 교육이 되어야 한다.
유치원을 개원하고 얼마간은 습관적으로 부모님 모두 일을 하시는 경우에만 방과 후 교육을 신청하도록 했다. 그러나 관찰하고 상담한 결과 부모님이 유능한 성인의 역할을 하기 어려울 수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스마트폰을 주면 안 된다고 알지만 주게 된다거나, 놀고 있으면 뭐라도 가르쳐야 할 것 같은 불안함이 있다는 부모님들이 많았다. 그런 경우라면 차라리 유치원에서 교사, 친구들과 놀이하는 것이 오히려 발달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을 하였다. 단, 유아 발달에 도움이 되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전제조건이다. 주입식 교육, 학습지 등 공부를 핑계 삼아 놀이 시간을 허비하지 않아야 한다. 자신의 발달에 맞추어서 놀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준다면 가정에서 스마트기기를 제공하거나 주입식 교육을 하는 것보다 유치원에서의 놀이가 발달에 도움이 된다.
어제 유아들에게 주입식 교육, 학습지 등은 진정한 공부가 될 수 없으며 방법이 달라야 한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아동학대 뉴스를 보았다. 한 영어학원에서 만 3세 여아를 의자에서 밀치고 넘어뜨리는 영상이 나왔다. 유아의 아버지가 인터뷰까지 했고 학원 측은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겠다고 했다. 기자는 이 사태를 학원 교사가 아동학대 교육을 한 시간밖에 받지 않았기 때문이며, 보육교사 자격조차 없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표면적으로는 교사의 자격 문제나 아동학대에 대한 인식, 교사의 인성이 문제일 수 있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다르다. 몇 년 전 유아교육을 전공한 유치원 교사들이 60명 넘는 유아들을 체벌하고 의자에 묶었다는 기사에 대해서는 무엇이라고 해석하겠는가? 가장 큰 문제는 유아들과 교사가 이런 관계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만 3세 여아가 책상에 앉아있어야 하는 상황, 부모님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재롱잔치를 연습해야 하는 상황에서 아동학대 원인을 찾아야 한다. 만 3세를 앉혀놓고 하루 종일 영어를 가르치면 무언가 얻는 것이 있으리라 생각하는 부모와 그런 학원을 운영하는 자영업자, 예쁘게 공연하는 것에 만족하는 부모와 영리를 위해 유아의 희생을 이용하는 유치원을 만들어낸 사회의 책임이다. 이런 상황에서 유아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이해하더라도 유아 입장을 지켜주지 못하는 교사는 이성을 잃을 것이다. 유아의 발달 특성에 맞는 교육인지 판단하는 부모님들과 유아들의 특성을 반영한 교육을 알고 실천하는 사회가 되기를 기대하며 한 해의 마지막 이야기를 마무리 지어본다.
교육학박사 임은정의 2022. 02. 11. 교육이야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