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성숲유치원은 모든 결정을 유아중심으로 한다고 교직원과 부모에게 강조한다. 얼마 전 멀찌감치 서서 유아들의 자가 하원을 지켜보고 있었다. 문을 두드릴 수도 있는데 유아나 교사에게 방해가 될까봐 현관 밖에 서서 교사와 눈이 마주치기를 조용히 기다려 주는 부모들을 보면서 감사했다. 이것이 바로 유아중심이다. 문 앞에 인터폰이나 벨을 다는 것은 매우 간단한 일이지만 내가 절대 하지 않는 이유는 부모와 교사의 편의를 위해서 유아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부속유치원 원장 보직을 맡았을 때 전임 원장 교수에게 무례하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인터폰을 없애도록 했었다. “딩동” 벨이 울리면 놀이하던 모든 유아들이 동작을 멈추고 문이나 화면을 본다. ‘우리 엄마’ 일까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유아들이 매번 기대를 하는 것도 마음 아팠고, 놀이를 방해하는 것은 수업을 방해하는 것인데 두고 볼 수 없었다. 유아들에게 놀이 시간은 학생들의 수업시간과도 같으므로 맥락을 모르는 사람이 방해하면 안된다. 유치원은 유아들을 위한 공간이므로 부모나 교사는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유아에게 맞추어야 한다.
석성숲유치원 부모님들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면 조퇴를 하지 않는다. 이제는 “저 금방 가니까 준비 좀 시켜주세요.” 라고 전화하는 부모님들도 없다. 보호자 도착 전에 유아를 먼저 준비시키고 앉아 있게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 모두 인식하였기 때문이다. 조퇴하는 친구의 귀가준비를 지켜보는 사이에 다른 유아들의 활동은 방해 받을 수 밖에 없다. 또 조퇴하는 유아도 미리 준비하고 부모님을 기다리려면 아무것도 못하고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야 한다. 유아들이 조금이라도 더 안정적인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 유아중심이다.
운영과 정책차원에서도 유아중심적 결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지입차량을 사용하면 소속차량보다 운영비를 훨씬 줄일 수 있기 때문에 공립, 사립유치원들이 거의 지입차량을 사용한다. 그러나 유아들이 시간에 쫒기지 않고 기사님, 교사, 보호자가 조금씩 양보하면서 유아전용으로 안전하게 운영하기 위해서는 유치원 소속차량이 필요하다. 유아중심으로 생각하지 않았다면 석성숲유치원도 지입차량을 운영했을 것이다.
유아들의 급식을 정책과 운영의 편리성, 단가에 맞추는 것은 유아중심이 아니다. 몇 년 전에 풀무원 초코케잌으로 2200명이 식중독이 났다는 기사로 떠들썩했었다. 그때 영양사들의 커뮤니티에 “이제 무슨 케익을 공급 받나요”라는 글들이 오갔다. 반성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기관의 급식에 여전히 달디 단 빵을 사다 먹이려 하는 것이 이상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유아, 학생들의 급식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서 낮은 급식단가로 가능한 빵을 넣는다고 했다. 석성숲유치원이 유아들의 만족도만 생각했다면 사립 최초의 상근 영양사, 일차 가공이 없는 식재료사용을 고집하지 않았을 것이다. 전처리를 해야 하기 때문에 평균의 3배 이상 되는 조리인력이 필요하고, 공장 식품단가보다 훨씬 높은 원재료 단가를 감당하는 것은 유아중심 사고 때문이다. 급식 영업책자를 보면 스파게티, 소시지, 햄, 어묵 등 유아들이 좋아하고 맵지도 않은 식단을 급식단가에 딱 맞추어 공급하겠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유아들의 기호보다 평생 건강한 식습관 형성에 집중하는 것이 유아중심이다. 특히 36개월 이상이 되면 더 이상 기호만 고려하여 식단을 짜거나 편식을 하도록 하는 것은 건강한 식습관 형성에 방해가 된다. 어린이집 급식 염도를 0.4로 맞추고, 고춧가루도 사용하지 않고, 김치도 손톱보다 작게 잘라진 것이 온다고 한다. 영아는 그렇다고 해도 36개월 이상 되면 거의 성인과 같이 식사를 정상적으로 해야 한다. 뇌 발달에 저작운동이 필요한데, 씹을 필요성이 없는 무른 음식만 주는 것은 유아중심이 아니다.
우리나라 유치원은 일제강점기 일본인 자녀를 위한 유치원, 기독교전파 목적의 1914년 사립유치원이 설립되어 명맥을 이어왔다. 1980년까지 유치원은 일부 계층만 다니는 교육기관으로 전체 유아의 2% 이하가 유치원에 다녔다. 이후 여성인력의 확충을 위해서 학원, 새마을유아원, 놀이방, 어린이집으로 이어지는 환경이 확산되었다. 그 목적이 유아들을 위해서가 아니었기 때문에 유아중심의 교육이 퇴색되었고, 선거에서 표를 의식하여 유아가 아닌 성인중심의 정책이 더 발전했다. 그러나 유아들이 다니는 모든 교육기관의 의사결정은 부모, 교사, 정치인의 이해득실이 아니라 유아들의 권익에 맞춰야 한다. 수없이 많은 사례가 있겠지만 유치원의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유아중심의 사례를 소개했다. 유아중심은 유아의 욕구를 모두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유아의 미래에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지도하는 것이다. 유아의 미래는 현재 유아들의 하루하루가 누적되어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교사, 부모 모두 기억하길 바란다. 유아의 안정적인 발달을 선순위에 두고 성인의 입장을 후순위에 둔 의사결정으로 유아중심을 실천하길바란다.
교육학박사 임은정의 2022. 03. 31. 교육이야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