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아동들에게 세계에서 가장 긴 지식 주입 시간, 가장 낮은 삶의 만족도, 가장 높은 자살률이라는 불행을 안겨준 나라이다. 이런 현실은 OECD 회원국 중 유일하게 합계출산율이 1.0명이 안 되는 결과로 나타난다. 정부는 저출산을 극복하기 위해 2006년부터 15년간 225조 원을 쏟아 부었지만, 한 해도 빠짐없이 합계출산율이 역대 최저치를 경신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30년 뒤에는 지방자치단체의 40%가 소멸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더군다나 코로나19로 제한된 상호작용을 해야 하는 코로나 세대 아동들은 다른 세대보다도 40%나 높은 심리·정서적 어려움을 겪는다는 통계도 있다. 또 다른 대한민국의 악재는 2021년 유니세프에서 ‘기후변화로 인한 위험, 충격, 스트레스 지수’가 가장 높은 국가 중 하나로 분류했다는 것이다. 아동들에게 너무 힘든 환경만 나열하게 되어서 유감스럽지만, 이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국가가 모든 환경을 통제할 수 있는 단순한 세상이 아니기에 저출산이 간단하게 해결될 문제는 아니지만, 실제 성과를 거둔 독일의 쾰른시와 프랑스의 아동 친화 제도에 관심을 기울여 봄 직하다. 아동 친화 사회란 아동의 출생부터 모든 발달 과정에서 마주하게 되는 이해관계자들이 구축하는 환경, 법체계, 안전망, 정책, 제품과 서비스, 일터 환경 등 모든 것이 아동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사회이다. 이런 사회를 구축한다면 자녀를 양육하는 것에 자신이 생기고 출산에 대한 두려움도 덜하게 될 것이다. 사회 구성원이 아동 친화 제도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아동들의 권리에 대한 이해가 확립되어야 한다.
세계 아동들의 권리에 대한 인식은 1989년 11월 20일 채택된 유엔아동권리협약(Convention on the Rights of the Child)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할 정도로 아동 권리 향상에 분수령이 되었다. 우리나라도 1991년 11월 20일 아동권리협약을 비준하였으며 전 세계 196개국(2021년 1월 기준) 가장 많은 비준 국가를 보유한 국제인권법이다. 아동의 권리는 크게 4가지로 나누어서 서술된다. 적절한 생활수준을 누릴 생존권, 모든 형태의 학대와 해로운 것으로부터 보호받을 보호권, 잠재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기 위한 교육, 여가, 문화, 정보, 생각과 양심,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는 발달권, 자신의 생활에 영향을 주는 일에 대하여 의견을 말하고 존중받을 참여권으로 나눈다. 제42조. ‘모든 아동과 성인은 본 협약의 권리들을 알아야만 한다.’라는 내용을 마지막으로 하는 조항 중에서 대한민국 아동에게 고려되어야 하는 조문 몇 가지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대한민국 아동은 발달권이 보장되지 못하고 참여권 또한 왜곡되고 있다. 이 협약에서 아동은 만 18세 이하의 모든 사람들을 포함하기 때문에 성장, 발달에 따라서 적절하게 조성되어야 하는데 그 일부는 적절하게 적용되지 못한다. 많은 권리가 교육과 연결되어 있지만 특히 제3조. ‘아동에 관한 모든 결정은 아동의 최상의 이익이 우선되어야 한다.’ 제5조. ‘부모를 비롯한 아동을 보호하는 성인들은 아동의 잠재력을 키워주는 방법으로 적절한 감독과 지도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이 두 조항은 대한민국 아동들이 보고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 두 가지가 대한민국 아동들을 불행으로 몰고 가는 실마리라는 것이 필자의 의견이다.
어릴 때부터 들어왔던 “공부는 너를 위해서 하라는 거야.”라는 말과 밤늦게까지 시달리는 주입식 교육 환경이 아동의 이익을 최상위에 둔 최선의 방법인가를 따져야 한다. 학부모의 편리함, 상업화된 교육의 이권, 획일화를 위한 공교육, 모두 아동들을 위함이라고 포장하고 있다. 아니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제5조의 내용이 잘 설명해 주고 있다. 현실의 교육은 아동의 잠재력을 키워주는 방법으로 적절하게 지도되고 있지 않은 것이다. 대한민국이 아동 친화 사회가 되기 위해선 무조건 아동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아동의 이익을 최상위에 둘 수 있는 성인들의 판단이 필요하다. 부모에게 아동학대를 당하는 아동들도 대부분 부모에게 돌아가고 싶어 한다. 이는 아동들의 의견을 모두 수용하는 것이 아동의 이익을 최우선에 둔 결정이 아닐 수 있음을 보여준다. 아동의 의견은 존중되고 진지하게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제12조에서 밝히듯이 아동들의 의견을 듣되 분석적인 이해력을 바탕으로 성인이 판단해야 한다.
친구들이 가니까 함께 놀고 싶어서 “나도 00 학원 보내주세요.”라고 한다면 수용해야 하는 것일까? “정말 열심히 할 거지!”라며 약속하고 보내주는 것이 아동의 이익을 최상위에 둔 결정일까? 이 사회가 결정하는 많은 의견이 이처럼 아동 권리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필요로 한다. “나 유치원 가기 싫어요.”라고 할 때, 그 이유가 무엇인지 파악이 안 된 채로 무조건 수용하는 것이 아동 이익을 최상위에 둔 것일까? 만약 신체, 사회 발달이 늦어서 유치원에 가고 싶지 않는 것이라면 이를 수용함으로써 결정적 시기를 놓치게 될 수도 있다. 무시무시한 범죄에서 아동 권리는 보호되는 수준이더라도 이런 조항들을 들여다보면 우리 사회 아동 권리는 아직도 많은 숙제를 안고 있다.
교육학박사 임은정의 2022. 11. 24 교육이야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