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신과 의사의 개인방송에서 한 어머니가 상담하는 사례를 보았다. 이 어머니는 자녀 양육에 최선을 다했고, 남편도 가정적이라서 함께 열심히 도왔다고 한다. 지금은 고등학교 2학년이 된 아들과 고등학교 1학년이 된 딸이 공부를 하지 않고, 집에 오면 스마트폰만 들여다봐서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안 할 수 없게 만든다고 했다. 자녀들과의 사이가 소원해지고 키운 노력과 기대가 무너져서 너무 허망하고 우울하다는 것이 이 어머니의 주된 고민이었다.
이 어머니는 자녀가 어릴 때 직접 재밌고 즐겁게 공부하도록 노력하고 공부는 즐거운 것이라는 인식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했다고 한다. 스트레스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주말에는 온 가족이 거의 캠핑장에서 생활하였고 행복한 유년기를 만들어 주기 위해 친구같은 부모가 되어주었다고 한다. 놀이 계획도 세워주면 영리하게 잘 이해했기 때문에 기대가 컸지만,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시험을 보게 되자, 계획을 세워주고 함께 하자고 해도 안 하려고 하고 부딪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머리가 나쁘지도 않은 것 같은데 자녀들이 지금 왜 공부를 안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고민을 털어놓았다. 지금은 좋은 대학을 가라는 것도 아니고 그저 학생답게 공부에 관심을 기울이고 7등급인 성적이 조금이라도 향상되길 바라는 것인데 이 정도도 들어주지 않는 것이 문제이고 화가 난다는 것이다. 공부하기 싫으면 책이라도 읽으라고 하는데 그것도 안 하는 것이 참을 수 없이 화가 난다고 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정신과 의사는 현재의 해결책을 의사답게 이야기했다. 늦었지만 그래도 지금이 빠른 때라고 생각하고 절대 자녀의 생활이나 학업에 대해서 언급을 하지 말라고 했다. 더불어 성적이 어떻게 나오더라도 신경 쓰지 말하고 했다. 그러다 보면 부모님과의 관계가 어느 정도 회복이 될 것이고 본인의 인생에 대한 걱정을 스스로 하게 될 것이니 서른이 넘어서 대학을 가더라도 그러려니 하는 것이 최선책이라고 했다. 나는 이 의사의 이야기에 충분히 공감하고 정확한 진단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말 그렇게 실천할 수 있는 부모가 있을지는 의구심이 들었다.
이 정신과 의사가 처방에 대해 부연 설명하는 것이 더 많이 공감되었다. 이 학생들은 어머니의 노력으로 즐겁게 공부를 시작했을지는 모르지만, 스스로 계획하고 참으면서 공부하는 즐거움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 참고 공부할 수가 없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어릴 때부터 자신의 일을 스스로 계획해 본 경험이 없고 자신의 미래나 할 일을 걱정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스스로 미래를 대비하는 연습이 전혀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니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스스로 대비하고 계획하는 습관이 생기도록 내버려 둬야 한다고 했다. 어머니가 모든 것을 해주어야 한다는 책임감에서 벗어나야 어머니도 행복할 수 있다고 했다. 상담하는 어머니에게 직접적인 언급을 하지 않았지만, 이 모든 사태가 어머니의 잘못된 양육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었다.
지금 자녀들에게 행복한 유년기를 선물하는 것을 목표로 친구 같은 부모를 지향하는 경우나 유아기부터 의대 대비 학원에 보내는 부모들 모두에게 말하고자 하는 이슈가 이 상담 내용에 담겨있다. 학원을 보내서 어떻게든지 지식을 주입하여 행복과 불행을 느낄 시간도 안 주는 방법이든, 부모님의 떠 받들음으로 행복한 유년기를 보내게 짜 맞추는 것이든 둘 다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고민하고 계획하는 법을 터득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아기가 아장아장 걸을 때 넘어지면 크게 다치지 않는다. 그러나 체중이 증가하고 컸는데 자신의 몸을 가누지 못하고 아기처럼 넘어지면 크게 다칠 수 있다. 이와 같이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내용을 스스로 배울 기회가 필요하다. 필요할 때마다 훈육으로 가르침을 주는 것이 부모가 할 일이다. 부모는 친구가 아니라 길을 알려주는 사람이다.
주말마다 캠핑장에서 놀면 재밌을 것이다. 하지만 스스로 심심한 집에서 무엇을 할지 고민하다가 책을 볼 기회는 없어진다. 자녀가 심심해한다고 해서 부모의 책임이 아니다. 늘 재밌게 해주는 것이 부모가 아니다. 심심한 시간은 창의성을 만든다. 놀이의 대가 바네의 최근 연구는 학교 밖 놀이가 부정적인 결과만 만든다고 했다. 동네 친구는 미래에 어떤 도움도 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현재에 도움도 되지 않는다.
영국 전체가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런던과 외곽의 대학지역에서 자녀를 기른 부모의 경험에 따르면 학기 중 여행으로 결석을 하려면 과징금을 내야 한다고 들었다. 여행비용이 적게 든다고 자녀들의 학업 기간에 여행을 가는 것도 심각한 문제라는 나의 생각과 같은 맥락이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놀아도 된다는 의식을 가르치는 것이다. 최근 한국은 개근상도 없애고 가족여행은 현장학습이라고 인정하는데 이것은 결코 선진적인 의식이 아니다. 고등학생을 상담한 어머니처럼 환경적으로 학업 의지를 꺾지 않으려면 매일의 일상이 규칙적이어야 하며 스스로 심심하여 책을 읽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행복하게 앎을 이어가려면 유년기부터 부모의 계획하에 움직이지 않고 스스로 자신의 시간을 계획하도록 심심한 시간과 안정적이고 규칙적인 가정환경이 되어야 한다.
교육학박사 임은정의 2024. 05. 06 교육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