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들의 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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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칼럼

감자는 고라니가 좋아하지 않는 잎이라서 그런지 고라니의 방해가 없다. 감자는 우리 유치원에서 비교적 수확이 잘 되는 작물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하지가 조금 지나 유아들이 하지 감자를 캤다. 감자를 사다가 밭에다 뿌려두고 감자를 수확하라고 하는 유치원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는데 놀면서 땅에서 감자를 줍는 것 이상의 의미는 없는 활동이다. 그 유아들이 우리 유치원 유아들만큼 기뻐하고 만족했을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 유아들은 자신들이 3개월 전에 심은 감자를 수확하면서 자신이 했던 일의 결과에 의미를 부여한다. 3개월 전에 감자를 심을 때에도 어른들이 모두 준비해 둔 씨감자를 심는 척만 한 것이 아니다. 씨감자가 오면 유아들과 교사가 싹이 날 부분(감자 눈)을 살피고 직접 잘라서 심을 수 있도록 준비한다. 그다음 싹이 위로 올라올 수 있도록 직접 판 구멍에 잘 넣고 흙을 덮는다. 그 과정에서 교사와 했던 이야기를 기억하지 못하고 실수하면 지적도 당한다. 그리고 숲에 갈 때마다 중간중간 작물들이 잘 자라고 있는지 확인하고 자라는 과정을 관찰한다.

그런 과정을 거쳐서 드디어 오늘 수확을 했다. 유아들 식단에 나올 수 있도록 미리 조리실에 가져다준 감자를 오늘 갈비찜에 넣어서 요리했다. “이거 오늘 우리가 캔 감자지요? 와 벌써 나왔어요? 감자 더 찾아 주세요.”라며 모두 즐거워한다. 정말 흔하게 먹는 식재료이지만 유아들에게 이 감자는 의미와 이야기가 담기게 된 것이다. 이런 과정이 통합적인 홀리스틱 과정이다. 이렇게 작지만 반복되고 나의 일상과 함께하는 경험이 유아들을 깊이 있고 사려있는 사람으로 자라도록 한다. 지난 가게놀이를 통해 느끼고 배운 것과 더불어 유아들의 만족지연과 경험의 과정을 느끼게 하는 것이 농사이고 먹거리 경험이라는 사실을 나 역시 이렇게 교육을 실천하면서 확신하게 되었다.

유아들에게 유치원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잣대이다. 우리 유아들이 먹어도 좋은 음식을 찾아서 기쁘게 먹을 수 있도록 지도하는 것도 유치원 교육과정에서 매우 큰 부분임을 확신한다. 우리나라에도 그런 사례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내가 아직 찾지 못했기 때문에 스웨덴의 부러운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스웨덴의 어느 학교는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가 한 곳인데, 모두 함께 농사를 짓는다. 중학생 때부터는 직접 농사지은 재료로 조리도 함께 돕는 모습을 학교 홈페이지에서 영상으로 보았다. 내가 이런 경험에 확신이 없을 때는 ‘이게 그렇게 중요한가? 무슨 의미로 이렇게 소개하는 것일까?’ 생각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그런 환경이 사람의 행복에 영향이 크다는 것에 반론의 여지가 없다.

작년부터 우리가 담그는 김치 종류에 깻잎 김치를 넣었었는데 유아들이 무척 좋아하고 잘 먹었다. 계절 음식이기도 해서 올해는 이사장님이 깻잎을 심어 주셨다. 그 깻잎을 수확해서 어제 김치를 담갔다. 유통과정을 많이 거친 깻잎보다 향이 훨씬 짙고 조금 작았는데 맛이 어떨지 나도 기대가 된다. 미국은 급식 단가를 맞추기 위해서 중앙주방으로 외부에서 완성된 음식을 급식이라고 주는 경우도 많이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완제품을 가열하는 수준으로 급식을 제공하는 사례를 많이 보는데, 급식을 교육이라는 차원에서 접근하지 않는 행태로 보인다. 급식은 그저 세균이 검출되지 않는 환경이면 된다는 식의 사회적 의식 수준이며, 어쩌다 그마저도 지켜지지 않아서 외부 회사의 음식으로 인해 식중독이 발생하면 교육기관은 책임지지 않는다.

교육기관에서 허용하고 제공하는 음식은 익숙하고 안전하다고 인식할 것을 고려한다면 먹거리는 그리 쉽게 생각할 일이 아니다. 모든 교육이 과정 중심적이고 과정에서의 적합성을 강조하고 있는 우리 유치원의 농군들이 먹거리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만큼 이타적이고 지구를 생각하는 인류애도 갖게 될 것을 확신한다. 모든 과정을 스스로 경험하는 교육은 당장 힘들어도 목표한 것을 위해 참을 수 있는 만족지연능력이 생기도록 훈련시킬 것이다. 더불어 스스로 한 일에 대해서 인정하고 만족할 수 있는 자율적이고 자존감 높은 사람으로 만들 것이다. 그런 교육 덕분에 아래와 같이 기특한 생각을 지닌 어린이가 된다.

나뭇잎 리스 만들기를 하고 있다.

솔비: 나뭇잎 몇 개 더 만들까요?

교사: 솔비 원하는 만큼 최선을 다해서 하면 돼요.

솔비: 이거는 나란히맥이고, 이거는 그물맥이에요. 다 했어요. 진짜 힘들었다.

(한참을 그린 뒤)

교사: 완성한 나뭇잎은 도화지에 붙여주세요.

솔비: 아 진짜 힘들었는데 드디어 완성했네. 제 마음에 들어요.

(모두 붙인 뒤 웃는다)

교육학박사 임은정의 2024. 06. 26 교육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