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부 음악회가 무사히 끝나고 바로 2학기 학부모 상담이 있었다. 교사들이 나에게 상담할 내용을 많이 질문했던 한 주간이었다. 그 과정에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거의 모든 상담 내용이 규칙을 지켜야 할 때와 존중해야 할 때를 성인들이 구분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성인이 이를 구분하지 못하면 유아들이 헷갈려서 정서와 사회성 발달을 필두로 모든 영역의 발달에 방해받게 된다. 우리 사회는 부모님의 말씀은 무조건 따라야 하는 유교적 가치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졌었다. 그 과정에서 자녀를 체벌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엄하게 기르는 가정들이 있었다. 일제강점기, 산업화를 거치면서 인권이 강조되고 학교의 체벌도 전면 금지되면서 이런 분위기는 나쁜 것으로 정착된 것 같다.
우리 사회의 빠른 변화가 당연한 규칙과 자유를 판단하는 가치관을 흔들어 놓았고, 착한 엄마 강박·좋은 부모 강박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가치관이나 인식 역시 다른 발달이나 마찬가지로 성장기의 환경으로 좌우되는데, 어릴 때 긍정적인 양육 경험을 해보지 못한 부모 세대는 무조건 오냐오냐 받아주고, 가능한 많은 것을 해달라는 대로 해주고, 무례한 자녀도 잘 참는 부모가 좋은 부모라고 생각하는 것이 유아들의 발달을 방해하는 주범이 된다.
때리는 것, 상처 주는 것, 힘을 행사하는 것은 안되는 것이 맞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으로서 부정적인 행동을 할 때도 가르침을 주지 않는 것은 좋은 부모가 아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짧은 카피로 인해서 칭찬의 교육적 효과가 잘못 해석되었듯이 “안 돼”를 많이 하는 엄마는 자녀의 기를 죽이고 위축되게 한다는 생각이 팽배해졌다.
처음 유아교육과에 입학했을 때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지 말고 자유를 주어야 한다’, ‘때리면 안 되고 생각하는 의자에 앉아서 스스로 생각할 시간을 주어라’ 등의 내용을 배웠었다. 벌써 30년이 훌쩍 지난 시기라서 그랬겠지만 지금 생각하면 상황에 따라서 교사로서의 판단을 하도록 가치관을 배웠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가 산업화, 인권, 교육이 생각할 시간 없이 짧은 시간에 급격히 변화하면서 가치관이 충돌하는 세대를 겪어서인지 부모들도 혼란을 겪는 것이 보인다. 물론 모두 다 그런 것은 아니고 특히 석성숲유치원을 선택한 부모들은 이 사회의 유행보다 이성과 지성으로 양육하려 애쓰는 집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습이 필요하다.
반드시 지켜야 하는 행동인지 유아의 의견을 존중해 주어도 되는 상황인지 판단을 하는 것은 전적으로 성인이 해야 할 일이다. 이 부분에서는 가치관이 드러날 수 있으므로 부모의 가치관 정립과 도덕적 역량이 요구된다. 나의 자리에서도 무조건 따라가지 않고 판단을 해야 하는 순간이 많다. 이 나라의 학교급식은 차아염소산나트륨으로 식재료를 씻도록 한다. 얼마 전 교육청에서 나온 급식관리팀장이 사용 여부를 물었다. “우리나라만 식재료에 허용되는 그 화학물은 저는 사용하지 않을 것입니다. 당장 세균에 의한 식중독이 무서워서 유아들의 몸에 쌓일지도 모르는 락스로 씻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로 인해서 제가 책임질 일이 생기면 책임지겠지만 따르지 않을 겁니다. 가습기 살균제의 악몽을 벌써 잊었나요? 외국계 회사가 우리나라에서만 만들어 팔았던 창피한 사건을 반복하네요”라고 말했더니 자신들은 공무원이라서 꾸준히 지적하겠다고 하고 갔다.
여자 어린이들이 분홍색과 치마, 치장하기를 멈추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내가 내렸던 결정만큼 부모님의 결단이 필요한 순간임을 느낀다. 이런 부모들은 이 사회가 다 그렇게 양육하니까 괜찮다고 생각한다면, 학교급식은 모두 다 사용하니까 나도 락스로 채소를 씻어 먹여도 괜찮다는 논리와 같다. 그 부모들은 자녀들이 원하니까 다 해주는 것일까? 아니면 부모님의 과시욕 때문에 그렇게 기르는 것일까? 사실 직선적으로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은데 차마 그렇게 할 뻔뻔함이 내게 없어서 못 본 척한다.
교사들이 도전하지 않고, 의존적이고, 소극적인 학습 태도에 대해서 상담하는 여아들은 모두 공주병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여아들이다. 교사들이 정말 이렇게 관계가 있냐고 놀라기도 한다. 여자 어린이들의 공주 치마가 발달에 부정적이라는 부모님의 가치관이 확고하다면 협상의 여지 없이 “송이의 발달에 바람직하지 않고, 놀이에 방해가 되니까 편한 옷을 사야 해.”라고 말해 주어야 한다. 유아기에 축구를 하는 것이 발달에 어떤 영향이 있는지 전문적인 자신이 없다면 4세에 태권도를 시키는 것과 같은 상술에 넘어간 과시욕의 충족이다. 부모의 모든 결정은 단호한 기준이 있어야 하며, 그 기준들을 유아들이 알아가면서 부모와 자녀의 가치관이 조화를 이루게 되고 갈등 상황에서도 슬기롭게 정리해 갈 수 있다. 부모의 과시욕도 자녀에게 전염되고, 부모의 슬기로운 결정도 자녀에게 전염된다.
교육학박사 임은정의 2024. 11. 02. 교육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