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와 직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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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칼럼

얼마 전 교육설명회를 하면서 질문을 받았다. 그중에서 교사들의 근속연수를 묻는 어머니가 있었다. 나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근속연수가 중요한가요? 현재에 안주하려는 성향의 교사들이 있었다면 IB교육 도전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겁니다. 지금 저와 함께하는 교사들은 공부하기를 즐기고 자기발전에 자긍심이 있는 교사들입니다. 그렇지 못한 사람은 떠나게 될 수 밖에 없는 유치원입니다.”

정보공시 제도가 10년 전쯤 생기면서 유치원 교사들의 처우를 높이고자 정보공시 항목에 근속연수가 포함되었다. 노동력 착취를 한다거나 부정적인 교육환경 때문에 유치원을 떠나는 교사들이 많다는 잠재적 합의가 있는 것이다. 그 어머니의 질문도 그런 생각이 깔려있음이 느껴졌다. 그 당시에는 나도 교사들의 처우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공감했었기 때문에 정보공시 항목에 교사의 근속연수가 포함되는 것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처우가 좋아진다는 것과 근속연수가 일치한다고 볼 수는 없는데 아직도 그것을 공시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서 으뜸가는 모 기업이 근속연수가 다른 기업보다 훨씬 더 높지는 않다. 박사 후 과정에서 대학생들의 진로지도 담당연구원으로 잠시 근무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다.

규정이 잘 지켜진다면 현재 유치원 교사들의 급여는 우려할 수준이 아니다. 교사들의 근속연수는 급여뿐만 아니라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본인의 철학이나 성향과 잘 맞는 것이 중요하다. 본인이 수업 준비 안 하고, 환경 구성이나 단순 돌보기가 좋은 교사에게 만족스런 유치원은 강사들이 교재를 가지고 오는 주먹구구식 유치원일 것이다. 본인이 이론적으로 좋은 수업을 하고 유아들을 지도하는 과정에 보람을 느끼는 교사에게는 수업을 연구하고 발전하는 것을 중시하는 유치원이 적합할 것이다. 각자 잘 맞는 유치원을 선택했다면 근속연수가 길 것이다.

근속 연수로 따지면 공무원이 최고다. 근속연수가 긴 공립유치원을 선택하지 않고 사립유치원을 선택한 이유와 굳이 사립에서 근속연수를 묻는 이유는 맞지 않는다. 경기도 교육청으로부터 2018년 유치원 정상화 방안에 대한 연구의뢰를 받아서 연구했었는데 그때 나도 알지 못했던 부모들의 입장을 들었다. 연구 과정에 참여한 공립유치원 부모들의 입장은 대부분 공교육에 비용이 들어가지 않고 하원 시간이 이르기 때문에 비용 아껴서 학원을 하나라도 더 보내겠다는 것이었다. 사립유치원을 선택하는 부모들의 입장은 학원 보낼 필요 없이 유치원에서 강사 불러다 특기교육과 학습지를 시키고 안전하게 긴 시간 돌보니까 오히려 가성비가 좋다는 것이었다. 이 두 가지 생각 모두 유아교육의 기본적인 것을 지키지 않은 결괏값이라고 생각한다.

위의 두 입장이라면 공립유치원은 어차피 교육에 큰 기대가 없고, 사립유치원은 강사의 숫자가 중요하다는 것이므로 교원의 근속연수는 공립유치원이나 사립유치원 모두 중요하지 않다. 교육설명회에서 한 어머니의 질문이 이렇게 뇌리에 남는 것은 지금 IB 교원연수를 하고 있는 교사들 때문이다. 석성숲유치원이 국내 최초로 IB 교육을 도입하지 않았다면 하지 않아도 될 공부를 하고 있는 교사들에게 감사하고 미안한 마음이다. 숙제를 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그만큼의 시간을 공부에 할애해야 한다. 전 세계 국가의 교사들과 함께 온라인에 숙제를 올리고 연구하고 서로의 자료에 댓글을 달아야 하는 과정이다.

교사로서 안주하려 했다면 당연히 석성숲유치원을 떠났을 것이다. 자기발전과 자긍심이 있어야 남는 유치원이다. 이런 교육을 하는 것이 버거워서 혹은 능력이 안 되는 것이 들켜서 떠나는 교사들이 석성숲유치원과 한숲은 아이들을 데리고 교육을 실험하고 있다고 부모들에게 이야기한 경우도 있다. 맞는 말이다. 창의성의 한 영역으로 “모호함에 대한 참을성”이라는 항목이 있다. 사람은 누구나 새롭게 지식을 정립하기 전까지는 참고 고민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이것을 참아내는 사람이 창의적인 사람이다. 교육은 인류의 오랜 숙제를 안고 발전되어 왔다. 학교가 대중화되면서 오히려 퇴행했던 교육문화를 IB, OECD의 그룹이 학자들의 연구를 받아들여서 발전시키고 있다.

교육은 실험을 멈추면 안 된다. 정답이 없이 교사와 학생이 함께 좌충우돌 발전해 나가야 한다. 이것이 IB이기도 하다. 각국의 IB 교장들과 대화할 때는 가끔 아직도 획일화된 사고를 느낄 때가 있지만, 교장연수나 교사연수를 이끄는 교수들의 사고와 교육 진행방식은 확실히 진취적이고 열려있다. 석성숲유치원 교사들이 국내 최초로 IB교원 연수를 마친 교사가 될 것이다. 그 모호함을 잘 참아내어서 더 창의적이고 열린 마음의 교사가 되길 기원한다.

교육학박사 임은정의 2024. 11. 10. 교육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