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숲 학생 슬기가 하교 차량 탑승시간 5분을 남겨 두고 급하게 다시 책을 펴서 수학 문제를 풀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행동의 이유가 정말 궁금했지만, 방해가 될까 봐 그날은 그렇게 하교를 할 때까지 수학을 풀다가 급하게 책을 들고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다음날 “슬기야? 어제 선생님이 봤는데 새롭게 알게 된 것을 정리하는 시간에 다 정리해서 가방을 쌌다가 다시 급하게 수학책을 꺼내서 무엇인가를 푸는 걸 봤거든. 선생님이 정말 궁금해서 그러는데 왜 갑자기 5분밖에 안 남았는데 수학책을 다시 열어서 문제를 푼 거야?”라고 물었다. 슬기는 “아 그게요, 제가 아침부터 안 풀리던 문제가 있었는데요. 갑자기 생각이 났어요. 근데 그게 제가 생각한 대로 하면 풀어지는지 너무 궁금한 거예요. 그래서 급하지만 ,얼른 풀어 봤어요.”라고 대답했다.
“아, 그랬구나! 그래서 잘 풀렸어?”라고 물었더니, “네. 아침부터 안 풀려서 답답했는데 생각난 대로 해봤더니. 됐어요.”라며 슬기는 다시 상기된 표정으로 신나게 대답하였다. 대화를 시작했으니 슬기의 마음을 더 알고 싶어서 이어서 물어보았다. “슬기야, 네가 꼭 풀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없고, 네가 시험을 보아야 하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종일 생각하고 조각 시간까지 활용해서 문제를 풀었어?” “그렇게 풀리면 기분이 좋잖아요. 재밌어서 하는 거지요.”라고 슬기는 우문에 현답을 했다.
내가 늘 강조했던 學而時習之不亦說乎를 보여주는 모습에 감동했다. 이런 습관이 만들어진 교육에 대해서 앞으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좋은 선생님은 가장 적게 말하고 어린이들이 많이 생각하도록 수업을 준비하여 교육적 효과를 극대화 시키는 선생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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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면에 보이는 숫자를 영어로 발음해 보세요. (알파벳 보고 발음을 유추해본 후, 하나씩 발음해 주세요.)
- 20, 30, 40, 50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를 쭉 보여준 후) 이 단어들의 공통점을 이야기해보세요. (모두 TY가 있다는 것/ TY: 10의 배수/ 60은 정각이라 0분으로 해석되어 읽지 않지만 스스로 발견하여 질문 할 때까지 말하지 마세요.)
- 바닥에 종이를 무작위로 둔 후) 선생님이 이야기하는 숫자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를 찾은 후, 발음해 보세요.
위 내용은 가을 학년 교사의 다문화 활동 계획안이다. 내가 좋은 수업이라고 생각하는 하나의 예시가 된다. 영어 단어를 아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 내용을 재료 삼아 스스로 발견해내는 기쁨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교사의 발문은 같은 내용을 수업하는 것 같지만, 전혀 다른 방향으로 학생들을 길러낼 수 있는 것이다.
슬기는 유아기에 수 놀이를 숲에서 했다. 구구단을 암기한 적도 없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수학 수업은 어린 시기일수록 실물로 많이 접하고 세고, 더하고, 빼고, 묶고, 나누어 보는 활동을 충분히 하는 것이다. “5 곱하기 12는?”이라고 질문할 수 있다. 그러나 유아들이 하기에는 터무니없이 어려워 보인다. “돌이 5개씩 12개가 있으면 모두 몇 개인가요?”라고 질문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역시 돌을 가지고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막막할 수 있다.
이런 질문보다는 “돌을 60개 주워 오세요. 60개를 5개씩 묶어보세요. 60개를 5개씩 묶으면 모두 몇 묶음이 되는지 세어보세요.”라고 할 수도 있고, “돌을 5개씩 12번 주워 오세요. 그리고 세어보세요. 이번에는 5개씩 묶어서 놓아 보세요.”라고 할 수도 있다. 같은 내용을 여러 가지 다른 방법으로 활동을 하면서 스스로 깨달으면 즐거움을 알게 된다.
처음에는 60개를 주워 오는 것도 힘들 수 있다. 그러나 하면서 수의 질서를 느끼며 “힘들지만 계속할래요.”라고 이야기하면서 성장한다. 한 교실에 있는 유아들이 모두 같은 발달과 같은 관심을 가지고 있을 수는 없다. 그래서 교사는 같은 결과나 같은 속도를 고집하면 안 된다. 교사는 그저 여러 가지 예시를 보여주고 지켜보며 도움이 필요할 때만 약간의 조언을 하면 된다. 그 안에서 규칙을 찾거나 생각을 이어가는 것은 학습자 개개인의 몫으로 남겨 두어야 한다.
국가수준교육과정이나 교과서는 모든 학생에게 폭력적이다. 학습자 각자의 관심과 상관없는 지식을 요구하고, 기성세대가 정한 것이니 따라야 함을 강요한다. 기성세대가 정한 것에 순응하여 잘 암기하면 훌륭한 학생이고 그렇지 못하면 소외되어야 하는 것이다. 옆 친구가 무엇을 풀든 내가 할 수 있고 재밌게 도전할 수 있는 과제를 받을 수 있어야 하루하루가 즐겁고 발전할 수 있다. 교사나 부모의 마음에 자리 잡은 비교의식과 평가는 고스란히 학습자에게 전염된다. 그런 생각에 오염되지 않도록 마음의 방역을 굳건히 해야 한다.
나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즐거움과 생각하는 즐거움을 아는 사람으로 성장하길 바라며 수업방식을 혁신했다. 이런 성향은 유아기부터 이어져야 한다. 일제강점기부터 이어온 수업방식을 거부하고 최신의 연구를 바탕으로 학습자 중심이고 비구조적인 활동을 이어왔다. 이제 그 결과를 보여주는 나의 학생들에게 감사하다. 그리고 그 어려운 사고의 전환을 잘 따라와 준 교사들에게도 감사와 존경을 보낸다.
*IB가 추구하는 학습자상에서 Inquirers (탐구자)는 호기심을 가지고 질문하며, 독립적으로 학습하는 능력을 개발하는 것. 학습에 대한 열정을 갖고 평생 학습자로 성장하는 것이다.
교육학박사 임은정의 2025. 03. 19. 교육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