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전 우리나라 어느 고등학교에서 건강검진을 하는데 10번 이상 채혈을 실패하자 한 학생이 쓰러져서 119에 실려 갔고, 2주째 전신 경련 발작을 일으키고 있다는 뉴스를 보았다. 이 뉴스는 무엇을 전하고자 했는지 모르지만 그 원인과는 상관없이 고등학생이나 되었는데 왜 10번이나 그렇게 참고 있었는지 답답했다. 세월호가 우리 교육에 주는 시사점에 대해서 연구모임도 하고 학교 정책에 대한 회의도 많이 했었는데 시정이 되지 않고 같은 맥락의 사고가 난 것이다. 학교에서 시키면 무조건 들어야 하는 강압적인 환경이 아직 존재한다면 참 우려스럽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다. 요즘 헬리콥터 맘이 흔하다고 한다. 대학 수강신청을 어머니가 해주고 원하는 과목을 신청하지 못했다며 항의 전화를 하는 것도 보았다. 인지발달 뿐만 아니라 세상을 살면서 늘 문제에 봉착한다. 그 때마다 스스로 해결하고 책임지는 것도 결국 창의성의 일부인 문제해결력이다.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독창적으로 하다가 실수도 하겠지만 그 과정에서 진화할 수 있다. 이런 기회를 어머니가 대신하는 것도 학습기회를 박탈하는 강압이다.
오늘 대학원 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매 1학기는 ‘창의성 발달’과목을 수업한다. 오늘은 창의성발달을 위해서 교사로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논문을 읽고, 문제를 제기하고 그 문제의 해법을 토론으로 찾아보는 수업이었다. 대학원생들은 원장, 교사들이다. 한학기가 거의 다 지났는데 “학교가면 어차피 잘 앉아서 시키는 것을 해야 하는데 훈련을 시켜야 하지 않을까요?”라는 문제를 제기하는 학생이 있었다. “학습자와 관계없이 지시적인 수업을 하는 교사는 이 시대에 적합한 교사상이 아니다.”라고 조금 강하게 반응했다. 오늘 수업은 이 질문의 문제를 찾고 해결하는 것으로 방향이 바뀌었다. 유아기에 독창성과 문제해결력을 기른다면 다소 지시적인 수업에서도 스스로 즐거움을 찾고 잘 앉아 있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이 결론이었다.
창의성을 구성하는 하위요인은 학자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어떤 학자도 예외 없이 독창성과 문제해결력은 포함한다. 독창성과 문제해결력이 있어야 창의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독창성을 키우기 위해서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 같은 생각을 말해보자.”고 격려해주고 그 의견을 수용하는 교사가 되어야 한다. 문제해결력을 위해서는 문제를 먼저 발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누군가 주는 문제를 풀기만 하는 것이 문제해결력이 아니기에 관찰과 애정이 선행되어야 문제를 발견하게 된다. 관찰과 애정은 자유와 여유에서 나온다. 급하게 교사가 준비한 수업을 진행하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관찰력이 높아지는 조건은 놀이의 조건과 유사하다. 누가 시키면 안 되고 자발적이어야 놀이이다. 언제든 그만둘 수 있어야 놀이이다. 진도나 결과가 없어야 놀이이다. 재밌게 ‘놀이 식’으로 수업하니까 괜찮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놀이 식 수업도 무엇인가를 지시하고 결과를 원하기 때문에 놀이의 조건에 부합되지 않는다. 유아기의 모든 학습활동은 ‘놀이식’이 아니라 ‘놀이’여야 한다. 독창성과 문제해결력은 이제 생존이다. 따라서 생존을 위해서도 유아들은 놀이만 해야 한다.
교육학박사 임은정의 2016. 06. 03. 교육이야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