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유치원에 가을반으로 전학을 와서 1년밖에 못 다니고 졸업을 하게 된 한 어린이의 학부모님이 상담을 다녀가셨다. 대화 과정에서 부모님이 잘 못 이해한 발달의 특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머니는 전문직을 가지고 계셔서 어린이가 영아기부터 우리 유치원에 오기 전까지 신체적 놀이가 거의 없는 교육기관을 다녔다고 한다. 자라면 신체놀이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셨다고 한다.
그런데 그 졸업생은 지금도 신체놀이가 많이 부족해 보인다. 지난 교육이야기에서 놀이성에 대한 예를 들었었다. 유아들은 신체놀이가 충분해야 무리 없이 신체놀이, 사회관계놀이가 함께 발전하고, 신체놀이, 사회관계놀이가 충분해야 인지놀이와 혼자 몰입하기가 함께 발전된다. 전에 설명한 발달의 누적성이 놀이에도 해당된다. 실컷 채우지 못한 놀이성의 발달단계는 언제인가 발달에 지장을 초래하고 드러나게 된다. 그래서 실컷 놀아야 한다. 신체놀이를 충분히 해야 하는 시기, 신체놀이와 사회놀이를 함께 연결해야 하는 시기, 신체놀이, 사회놀이가 충분하고 인지놀이와 연결되는 시기가 있는데 이 과정을 무시하고 학습을 하면 즐겁게 몰입할 수가 없다.
그 졸업생 어머니는 신체운동이 부족한 듯해서 축구를 일주일에 두 번씩 배우도록 했다고 한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이렇게 무엇인가 배우는 것은 놀이가 아니다. 운동은 되겠지만,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과제를 해야 하기 때문에 놀이가 아니다. 그래서 아직도 신체놀이가 부족한 모습이 문득문득 보인다. 봄 반처럼 나뭇가지로 놀이하기, 인지적이지 않은 단순한 움직임하기 등.
이 졸업생이 아직도 글자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 이유도 알게 되었다. 놀이가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6세 쯤에 어느 날 한글에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스스로도 학습지를 하겠다고 해서 학습지를 시켰더니 한 달 만에 한글에 대한 관심이 없어졌다고 한다. 그 후 한글에 관심을 보이지 않고 애써 외면했다고 한다.
처음 관심을 보인 것은 내가 필요한 글자를 알고 싶은 자발적인 사고였을 것이다. 그런데 막상 학습지를 해보니 발달단계에 맞지도 않고 관심과는 전혀 상관없는 글자공부를 주입 당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고 나니 한글은 ‘재미없는 공부’가 되었고 자신감이 없어져서 애써 외면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학습지나 주입되는 지식에 무리 없이 순응하는 유아들이 좋은 것은 아니다. 이렇게 순응을 하다가 수동적인 학습자로 남게 될 것이고, 결코 청출어람(靑出於藍)은 불가능한 학습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유아들이 실컷 놀이한다는 것은 인적, 물적 강압이 없어야 하는 것을 말한다. 인적 강압이란 거부할 수 없는 힘을 가진 누군가에 의한 무언의 압력도 포함된다. 어머니일수도 있고, 교사일수도 있고, 친구일수도 있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그리고 경쟁하기 위해서 놀이 아닌 놀이를 하게 되는 것도 진정한 놀이를 방해받는 것이다. 물적 강압이란 장난감, 선호하는 공간 등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무엇을 만들고 무엇을 관찰하고 놀 것인지 결정할 수 없는 물리적 환경은 놀이에 방해가 된다. 아끼는 장난감을 보면서 놀거나 만지는 것이 진정한 사고의 자극을 가져올지 잘 관찰할 필요가 있다.
결론적으로 정말 자유롭게 놀이를 해야 한다, 36개월까지는 성인과 많이 대화하면서 자유롭게 놀이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사실 36개월 이전의 사회관계는 또래보다 성인의 도움이 있어야 한다. 그 이상이 되면 또래와 놀이할 수 있는 다양한 사회관계경험이 필요하다. 일부러 다양한 상황을 만들거나 협동하는 놀이상황이 생기도록 해야 한다. 그 이후가 되면 인지적 자극이 더해지도록 상황들을 경험해야 한다. 이렇게 자유로움 속에 놀이가 확장되고 사고를 자극할 수 있는 교육기관이 되어야 하고, 가정에서는 혼자 놀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줄 필요가 있다. 놀이성이 진정 잘 발달한 유아들은 혼자 놀이도 잘 할 수 있다. 충분한 놀이성의 발달이 행복하고 균형 있는 학습자로 성장하는 관건이다.
교육학박사 임은정의 2018. 06. 08. 교육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