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flective : 롤스는 내가 발표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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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철이가 1주일 가량을 아파서 결석했었다. 나의 학생들은 스스로 자료를 찾아서 서로 설명을 하는 형식으로 지식을 나누고 토론을 하는데 1주일을 빠졌으니 요즘 진행되고 있는 철학 사상을 1주일 만큼 못 하고 넘어간 것이다. 나는 우철이에게 철학은 한번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고 나중에 토론을 다시 할 기회가 많이 있을 것이니 그 때 보충하면 될 것이라고 이야기 해주었다. 그런데 그날 시간이 조금씩 날 때마다 친구들이 우철이 옆에서 뭔가를 열심히 이야기 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다음, 롤스 발표한 사람이 누구야?” 라고 찬비가 말하니까, “나야, 롤스는 분배를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차별적 분배에 대해서~~”라고 하면서 규리가 발표한 내용을 다시 한번 열심히 우철이에게 설명을 해주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다른 친구들도 우철이가 못하고 넘어간 학자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었던 것 같다. 친구가 함께 못하고 넘어간 지식을 열심히 공유하려는 모습이 사랑스러웠고, 협동하여 함께 이끌어 가려는 마음이 대견했다.

유아기부터 “이기고 지는 것은 중요하지 않아. 각자 할 수 있는 만큼 즐겁게 하는 것이 중요해”라고 상생과 자기주도성을 강조한 덕분에 경쟁심이 정말 없어진 것인지 궁금해졌다. 혹은 내가 모르는 학생들만의 생각이 있는 것인지도 궁금했다. 검정고시 준비를 따로 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출문제를 풀어 보면서 시험에 대한 적응력을 기르는데 이때에도 누가 몇 점인지 관심을 갖기 보다는 100점이 나오는 친구를 모두 함께 진심으로 축하는 모습을 보면 내 학생들은 질투심 같은 것이 없어 보였다. 그 이유가 누구하고도 비교하지 않고, 누구하고도 같은 결과를 요구하지 않은 교육환경 때문이라고 스스로 뿌듯함을 느끼지만 진짜 그런지 학생들의 생각이 듣고 싶었다.

나와 토론을 하는 시간에 질문을 했다. “왜 굳이 시간을 쪼개어 우철이가 결석했을 때 공부한 내용을 설명을 해주려고 했어?” 라고 하자 각자의 생각을 표현해 주었다. 규리는 “이렇게 표현하면 좀 웃긴데, 전우애 같아요.” 전우애 라는 말에 내가 웃으며 “아이고 여기가 전쟁터인가? 선생님이 그렇게 힘들게 했나?”라고 하자 “그런건 아니고 나중에 배울 때 어차피 함께 해야 하는데 같이 알고 가면 더 잘 이해하고 갈 수 있고 같이 재밌으니까 함께 가는 것이 전우 같아요.” 라고 설명해 주었다.

“너희들은 다른 친구가 나보다 모르고 내가 아는 것이 많아지면 우쭐하거나 다행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니? 선생님은 늘 등수에 찌들어야 하는 환경에서 공부하며 살았어. 대놓고는 말은 못했지만 친구들이 공부를 못하는 상황이 되면 내심 안심이 되었거든. 너희는 전혀 그런 생각이 없니?” 라고 이야기 하자 모든 학생들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찬비가 “비교하면 불행할 수 밖에 없잖아요. 친구들도 많이 알고, 나도 많이 알고, 모르는 걸 친구들한테 물어봐서라도 내가 알고 그런 게 행복한 거잖아요.” 라고 이야기했다. 나는 말을 이어갔다. “그렇지, 선생님의 생각은 아니지만 사람들은 학교가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하잖아. 그건 무엇일까?” 규리가 말했다. “그러니까 헐뜯고 물어뜯는 사람들 굉장히 많을 텐데 굳이 이렇게 친하고 같이 공부를 하는 사이에서 경쟁하는 것은 아닌거 같아요. 나누는 것이 오히려 다른 사회에서도 배워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소은이가 말을 이어갔다. “학교는 경쟁이라고 했는데, 경쟁 상대가 친구가 아니라 자기 자신과 싸우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자기가 할 일을 찾고 힘들어도 해내고 하는 자신과의 싸움을 배우는 곳이니까. 저는 친구보다 뭐 못하거나 잘한다고 해서 좀 더 기분이 좋아진다거나 그러지는 않아요.” 전우애라고 하던 규리가 “저도 동의합니다. 저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자신과의 싸움”

나는 더 이상의 대화는 의미가 없게 느껴졌다. 사실 친구들에게 질투도 하고 경쟁심도 생기는 그런 이야기가 듣고 싶었는데 내가 생각하는 그런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경쟁하고 비교하는 것은 언제나 불행하다. 어떤 면에서든 나보다 나은 사람은 있는 것인데 늘 비교하면 늘 불안하고 타인을 이기고 싶어하면 우쭐함 뒤에 패배의식이 함께 생기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던 나의 이야기가 체화되어 있는 것 같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말 뿐만 아니라 교수학습방법에서 친구, 동생, 형님들과 지식이나 진도를 비교하지 않았다. 모두 각자 자신의 속도를 스스로 정하고 스스로 책임감있게 해결하도록 시간을 주었다. 모든 학생들은 각자의 속도로 문제를 해결한다. 지금 2011, 2012, 2013, 2014년생 학생들과 내가 진행하는 지식 나누기는 각자 자습한 내용으로 친구들에게 질문거리를 만들어서 질문하고 답하고 이어가는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스스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지식을 찾아서 자유롭게 문제를 만들고 토론하지만, 기성세대들이 정해주는 내용(교육과정, 교과서)으로 공부하는 것과 비교해도 손색없이 중요한 지식을 찾아내고 공부한다. 석차를 내어야 하고, 경쟁을 하는 공부보다 훨씬 많은 내용의 지식을 훨씬 깊이 있게 공부할 수 있는 방식은 자신의 속도대로 자신의 공부를 하도록 하는 것임을 확신한다.

*IB가 추구하는 학습자상에서 Reflective (성찰하는 사람)자신의 학습 경험과 한계에 대해 깊이 성찰하는 사람입니다. 스스로의 강점과 약점을 인식하고 지속적으로 자신을 발전시킵니다.

교육학박사 임은정의 2025. 03. 28. 교육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