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푸른색 리트머스 종이가 빨갛게 변한 걸 다시 염기성에 넣으면 색깔이 돌아오지 않을까요?” 순간 교실에는 정적이 흘렀다. 이제 막 유치원 과정을 마친 어린이가 ‘가역성’이라는 과학적 원리를 스스로 유추해 낸 것이다. 산성과 염기성의 개념을 처음 접한 상태에서 물질의 변화가 일방향이 아닐 수 있다는 의문을 품었다는 사실은 실로 놀랍다. 현장에 있던 교사들조차 무릎을 쳤다. 사실 지시약은 소모품이라는 인식이 강해 한 번 쓰고 버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학생은 “지시약은 한 번 쓰면 끝”이라는 어른들의 고정관념을 단숨에 깨뜨렸다.
필자는 주저하지 않고 답했다. “선생님도 그건 해보지 않았어요. 우리 한 번 같이 확인해 보자!” 그 즉시 붉게 변했던 종이를 다시 염기성 용액에 담그는 2차 실험이 시작되었다. 지켜보던 다른 어린이들도 숨을 죽였다. 이내 종이가 다시 푸른빛을 띠기 시작하자 교실은 박수 소리와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 아이들에게 이 과정은 단순한 과학 실험이 아니었다. 자신의 질문이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내고, 그것이 증명되는 희열을 맛보는 ‘살아있는 교육’의 현장이었다.
교사가 미리 정답을 설계하고 지식을 ‘배달’하는 방식은 어린이의 사고를 수동적으로 만든다. 반면, 스스로 관찰하여 결핍과 의문을 찾아내고 질문을 던지는 방식은 지식의 주권을 어린이에게 돌려준다. 이 에피소드는 교육자가 어린이의 질문을 대하는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금 일깨워준다. 어린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논리적이고 입체적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그들의 엉뚱해 보이는 질문 속에 숨겨진 본질을 포착하고, 그것을 함께 탐구하는 과정이야말로 진정한 교육의 가치가 있다. 내가 발견한 듯한 성취감은 학습에 대한 태도를 바꾼다. “어렵다”는 거부감 대신 “내가 질문해서 알아냈다”라는 효능감이 자리를 잡는다. 구성주의적 관점에서 지식은 외부에서 주입되는 것이 아니라, 학습자가 자신의 경험과 질문을 통해 능동적으로 구성해 나가는 결과물이다.
새로운 지식에 대한 자극은 이토록 강렬해야 한다. 모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이것은 왜 그렇지?”라고 묻는 용기, 그리고 관찰을 통해 발견의 희열을 느끼는 경험. 이 단단한 경험들이 쌓여 우리 어린이들은 세상이라는 더 넓은 무대에서 당당하게 탐구하는 학습자로 자라나게 될 것이다. 이제 갓 유치원 울타리를 벗어난 어린이들에게 새로운 지식은 거대한 파도와 같다. 이 시기 어린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정보의 습득이 아니다. 새로운 것을 알았다는 순수한 희열, 그리고 그 앎에 도달하기 위해 스스로 사유하고 노력해야 한다는 깨달음이다. 이러한 경험이 반복될 때 어린이는 비로소 IB 학습자 상이 추구하는 ‘도전자(Risk-taker)’이자 ‘탐구자(Inquirer)’로 성장할 동력을 얻는다.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는 학생들에게 지적 자극이 없는 평이한 학습과 교육과정에 의한 반복된 주입은 폭력이라고 생각한다. 조금 어려워도 산재된 정보와 지식이 자신의 것으로 흡수되어 학습될 때 진정한 학습자로 미래에 적합한 인간상을 갖게 된다. 같은 시간이어도 개개인이 얻는 학습의 양과 내용은 모두 다름을 이해하고 기다려주는 것이 최고의 효율을 낳는다. 진도가 없어야 하며 비교하지 않아야 놀라운 질문과 효용성이 나온다.
교육학박사 임은정의 2026.04. 01. 교육이야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