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적인 양육자나 교육자가 되기 위해 모든 상황에서 장황한 설명으로 설득하려는 광경을 마주하곤 한다. 선택권을 존중하고 주도성을 길러주려는 시도는 분명 유효하다. 하지만 이러한 자율성이 영역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적용될 때, 교육은 방향을 잃고 방황하게 된다. 우리가 직시해야 할 사실은 자유를 허용해야 할 영역과 준엄한 준거를 가르쳐야 할 영역이 엄격히 구분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진정한 의미의 자유는 선택의 영역에서 빛을 발한다. 무엇에 호기심을 느낄지, 자신의 사유를 어떤 방식으로 표현할지는 전적으로 사람의 몫이다. 공원에서 개미의 움직임을 관찰하던 유아가 그것을 그림으로 그릴지, 돋보기로 들여다볼지, 혹은 관련 서적을 찾아볼지를 결정하는 과정은 간섭 없이 자유로워야 한다. 유아기에 스스로 놀이의 규칙을 설계하고 몰입하는 경험은 사고의 지평을 넓히는 자양분이 된다. 스스로 선택한 길에서 마주하는 ‘앎의 기쁨’은 평생을 지탱할 자기 주도성의 뿌리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삶의 태도와 도덕적 가치, 안전과 공동체의 규칙은 결코 선택이나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식탁에서 제자리에 앉아 식사를 마치는 것은 타협할 수 없는 기본이다. 글자를 쓸 때 제멋대로 휘갈기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획순을 지켜나가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이러한 사소해 보이는 원칙들은 사람이 스스로 판단할 때까지 막연히 기다려줄 사안이 아니라, 성인이 책임지고 명확한 ‘준거’로서 제시해야 한다. 위험한 행동을 절제하고 타인의 존엄을 해치지 않는 태도는 설명과 설득의 차원을 넘어선 ‘당연한 원칙’으로 내면화되어야 한다. 기분을 맞추려 하거나 갈등을 피하기 위해 마땅히 세워야 할 기둥을 허물어뜨리는 행위는 결국 학습자를 기준 없는 혼란 속에 방치하는 것과 다름없다.
원칙을 벗어난 자유는 성장이 아닌 불안을 낳는다. 울타리가 없는 끝없는 벌판에 홀로 서 있는 사람은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 막막할 뿐이다. 사람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무한한 방임이 아니라, 단단한 기준 위에서 향유하는 질서 있는 자유다. 토대가 견고해야 그 위에서 사유가 비로소 방향성을 갖고 확장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우리가 지향하는 IB 학습자상의 가치는 더욱 선명해진다. 탐구하는 사람, 사고하는 사람, 성찰하는 사람은 결코 무질서 속에서 태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책임과 존중이라는 확고한 기반 위에서만 그 잠재력이 꽃피울 수 있다.
‘원칙(Principled)을 지키는 사람’이라는 토대 위에 나머지 학습자상들이 비로소 채워질 수 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도 정직을 택하고, 작은 규칙 하나를 무겁게 여기는 마음이 실력의 바탕이 된다. ‘작은 원칙이 큰 실력을 만든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원칙이 결여된 탐구는 길을 잃고 기준 없는 자율성은 성장을 멈추게 한다. 이제 양육자와 교육자는 스스로에게 준엄하게 물어야 한다. 배움의 주체인 학습자에게 자유를 줄 영역과 원칙을 가르칠 영역을 명확히 구분하고 있는가. 이 본질적인 구분 없이는 어떠한 교육 철학도 실현될 수 없다. 물론 성장함에 따라 채워야 하는 원칙의 깊이는 다르지만, 적어도 36개월 이후에는 이러한 준거들이 하나하나 채워져야 올곧은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흔들리지 않는 가치의 토대 위에서만 비로소 사람은 자신의 미래를 향해 올곧게 뻗어 나갈 수 있다.
교육학박사 임은정의 2026.03. 19. 교육이야기
